사도행전 2:36~41


[1]

그러니 이스라엘 온 집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가온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찌 해야 합니까?"


[2]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바꾸어,

여러분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들의 비뚤어짐으로부터 벗어나세요.

그리하면 거룩한 숨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모든 멀리 있는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여러 말로 입증하며, 곁에서 권하며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굽어버린 세대로부터 구출을 받으세요!"


[3]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이 날 호흡하는 이들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과, 공동생활과, 빵 찢음과 기도에 온통 힘을 기울였다.

그러자 모든 호흡하는 이들에게 경외심이 생겼고,

많은 기이한 일들과 표적이 사도들을 통해 있었다.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를 향해 있어, 모든 것을 같이 갖고, 

돈과 물건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며,

날마다 성전 안에서 한 숨 내쉬는데 가온을 쏟고, 

가정에서부터 빵을 찢으며,

즐거움과 속임 없는 가온으로 음식을 바꾸어 먹고,

하나님을 높이며, 온 국민을 향한 섬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께서 보존되는 사람들을 날마다 이 '하나'에 더해주셨다.


1. "예수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그리스도 아니었습니까? 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마이클 더글라스'처럼 이름과 성을 붙여서 부르는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는 글자가 어찌 박혀 있습니까? "예수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마리아라는 여자의 아들입니다. 33세까지 살다가 요절한 비운의 청년입니다. 마치 파장동에서 태어난 윤재덕, 김명희 권사님의 아들 윤재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주셨는데, 예수라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참 이름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만큼 제 이름도 좋습니다. '이 땅에 덕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름의 뜻이 좋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이름대로만 산다면 이 땅이 이렇게 시끄러울리 없을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다른 말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이 부어진 사람입니다. 거룩한 숨결이 부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께 임무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임무를 받은 것입니다. 임무만 받은게 아닙니다.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도 받았습니다. 바로 '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이 정신을 타고 들어옵니다. 생각이 분명해지고, 살 길이 뚜렷해집니다. 그 숨에 따라 몸을 움직여 그 뜻을 이뤄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숨으로 태우는 하나님의 제물입니다. 


  그 제물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숨결을 따라 이루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이 이제까지 베드로가 설명한 바로 그 일입니다. 우선 이것부터 얘기합시다. 그가 부활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이 그를 묶어놓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죽음보다 센 분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숨결은 옳은 자를 살려내는 인공호흡입니다. 자신의 뜻따라 살던 아들 예수가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실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는 하늘로 가셨습니다. 하늘로 가셨다는 말은 어디 멀리 가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차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지언정,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그럼 예수는 왜 그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셨습니까? 우리에게 숨을 보내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시고, 또한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다 이 하늘로 가셔서 우리에게 숨 보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숨을 받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2. 부활 앞에서 가온이 찔려,


  이 말을 했더니, 이 말을 듣던 사람들의 속이 찔렸습니다. 왜 입니까? 이 예수를 죽이는데 동조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핍박한 것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티뷔를 보다가 기가 막힌 사연을 하나 접했습니다. 어느 은행 직원이 있었습니다. 23년간 성실하게 은행에서 근무하던 이 사람이 어느 날, 불법으로 대출 받으려는 사람에게 대출을 실수로 승인해주었습니다.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게 된 이 사람이, 윗사람에게 자신이 실수했노라 보고 했습니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이 사람의 실수가 위에 까지 보고 되어, 그 실수에 대한 적절한 처우를 받고서 다시 회사 생활에 임하면 그만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조합장이라는 사람이, 전국 최우수 조합이 되어서 계속 조합장을 해먹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실수했다고 보고 한 것을 감추고, 그 이듬해 이 조합은 1등 조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청천벽력과 같이 이 직원에게 누명을 씌워서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23년간 성실히 일했던 이 사람은, 죄과가 있어서 회사에 짤린 것으로 되었기에 실업수당도 못받고, 이 일을 가족에게도 말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쓰러져서 식물 인간이 되었습니다. 부인이 이 사건의 전모를 알고, 회사 동료들을 만나 진실을 말해달라고 사정했는데, 옛 동료들은 그 부인을 모두 매몰차게 대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말했다간 자신들도 언제 짤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며, 당시 이 식물인간이 된 아저씨와 같은 직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승진을 했습니다. 부인이 이러한 광경을 뻔히 눈으로 보면서 속이 타들어갑니다. 남편은 2살 지능이 되어 아무 것도 모르고 눈만 뜨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죄 없는 사람이 핍박받는 일은, 예수님 시절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294명이 바다에 빠져 죽고, 10명의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하는 중에, 이제 경제 살려야 하니까 그만 하자는 말들이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좀 굶으면 어떻습니까? 좀 못살면 어떻습니까? 억울한 사람 편들어 주는 일이 우선으로 되어야 않습니까? 다 낡은 배를 일본에서 사와다가, 불법으로 개조하고, 과적하는 일을 눈감아 줬던 관료 커넥션들을 처벌할 수도 없고, 진도VTS의 음성기록은 편집된 것만 공개되었지,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투명하게 공개가 되지 않고, 사고가 터진 그 시각 대통령은 7시간동안 아무런 보고도 받지 않고, 그 행적이 묘연하기만 합니다.


  법정으로 갔더니, 그 조합에서 아저씨에게 뒤집어 씌운 혐의는 다 누명임이 밝혀졌고, 해직은 너무 과도한 처우였으므로, 다시 복직시키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조합이라는데에선, 그 아저씨가 식물인간이 되었음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복직명령을 내렸습니다. 복직명령을 내렸는데,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다시 해직이랍니다. 이러한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처사에 눈 감아 주는 이 사람들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들 아닙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들입니다. 진실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사람들은, 언제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진실을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만일 그 식물인간이었던 아저씨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래서 제 발로 걸어서 그 은행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그 깨어난 아저씨를 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가온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찌 해야 합니까?"


  예수가 살아났다는 말은 그러한 말입니다. 진실보다 먹고 사는 문제, 즉 나 하나, 우리 가족이 생존하는 문제 때문에, 진실을 묻어버린 사람 앞에서, 진실이 다시 살아나 눈 앞에 나타난 것이 예수의 부활입니다. 이 사실 앞에서 마음이 찔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들도 그저 여러분 하나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부활한 예수 앞에 어찌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마음이 찔리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3. 오는 시대로의 출애굽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바꾸어,

여러분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들의 뚤어짐으로부터 벗어나세요.

그리하면 거룩한 숨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모든 멀리 있는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여러 말로 입증하며, 곁에서 권하며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굽어버린 세대로부터 구출을 받으세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생각을 어찌 바꿉니까? 예수를 죽이는데 있어서 침묵했던 무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진실과 정의보다 자신의 생존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진실과 정의가 이깁니다. 또한 진실과 정의를 올곧게 추구한 사람의 생존은 보장됩니다. 그것이 부활이 보여주는 진실입니다. 

  실제로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결말을 기대하고 가는 것입니까? 이순신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명량>을 보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아이언맨이 만신창이가 되어 결국 고철 덩어리가 되고 영화가 끝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아이언맨>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현대인은 모두 진실과 정의가 승리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내 생존의 무게보다 무겁냐 가볍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계는 인간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든, 내가 지금부터 그리스도로서 살겠다는 삶의 결단이요, 그러한 사람들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로서 산다는 건, 비뚤어짐의 노예가 비뚤어짐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비뚤어짐은 '죄'입니다. '올'이 꺾여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뚤어짐으로부터 출애굽하여, 올을 바르게 합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리하면', 그리하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곧 "거룩한 숨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들이마시어 힘내어 사셨던 그 숨을 우리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숨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탯줄 끊으면 숨을 쉬는 것입니다. 세례는 탯줄을 끊음이요, 거룩한 숨 받음은 이제 정신의 호흡을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숨을 받는다는 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는 말입니다. 숨이 부어지면 그리스도인데, 우리에게 숨이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진실을 묻어버려 마음에 찔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마음 찔리는 네가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용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은 자에게 하나님은 숨을 부어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셨다고 써있습니다. 올곧게 삽시다. 올곧게 사는 길은 죽음을 이기는 길입니다. 죽음에, 생존에, 저당잡히지 않는 삶입니다. 예수를 따라 부활로 날마다 뚫어내는 삶입니다. 나를 옭아매고, 붙잡고 있는 생각과 환경으로부터 한 길 올곧은 길을 찾아 나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어렵습니다. 시작하더라도 금방 꺾이곤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 자체가 통째로 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사랑, 정의, 공평, 진실... 이러한 것들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패, 불공정, 억울함, 거짓, 폭력. 이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은 망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살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에 보이는 것에 온통 빠져 있습니다. 얼굴을 고치고,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비교하며,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세대 전체가 굽어버린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이 굽어버린 세대로부터 구출을 받으세요!"


  출애굽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로부터 출애굽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제 세대로부터의 출애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멀리 어디론가 떠나자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선 자리는 같아도, 내가 맞는 바람이 다릅니다. 내가 선 자리는 같아도,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다릅니다. 예수로부터 시작된 이 시대의 출애굽은 악한 현시대로부터 벗어나 오는 시대를 이 땅에 가져오는 바로 그러한 출애굽입니다.


  이 출애굽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어찌 반응했는지를 봅시다.


4. 우리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이 날 호흡하는 이들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과, 공동생활과, 빵 찢음과 기도에 온통 힘을 기울였다.

그러자 모든 호흡하는 이들에게 경외심이 생겼고,

많은 기이한 일들과 표적이 사도들을 통해 있었다.


  세례를 받고, 이 날부터 호흡을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무엇을 호흡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숨을 쉬어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바로 그 숨으로 호흡을 시작했습니다. 맑은 정신, 바른 생각을 들이 마쉬어, 자신의 모든 삶으로 내뿜는 이 거룩한 호흡을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하는 구절은 흔히 교회의 네 가지 표지라 불리우는 것들입니다. 공동체는 이 네 가지를 구비하고 있어야 공동체라 부를만한 것입니다. 먼저는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설교입니다. 둘은 공동생활입니다. 셋은 성찬입니다. 넷은 기도입니다. 이 네 가지는 현시대 속에서 오는 시대의 삶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무기들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거룩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극심해질수록, 사람들은 개인화, 파편화됩니다. 저 위의 네 가지 중에 무엇이 가장 위협받겠습니까? 공동생활입니다.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구절을 요새는 '교제'라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제가 아닙니다. 그냥 일주일에 만나서 차 마시는 사이가 아닙니다. '코이노니아' 입니다. 즉 함께 나누어 사는 것입니다. 함께 올바른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만나서 함께 물건을 나누며 먹거리를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가야죠, 직장 가야죠, 집은 쉬는 곳이죠, 그래서 점점 공동생활이 어려워지고, 교회 안에서조차 공동생활다운 공동생활이 없으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공동체라 부르지 않습니까.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할 때입니다. 세상이 할 수 없는, 한 가르침으로, 함께 살며, 살점을 찢으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정말 기도에 전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진짜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사는 이들을 두려워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이 숨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오해하지 않도록, 사도행전은 다시금 부연합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를 향해 있어, 모든 것을 같이 갖고, 

돈과 물건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며,

날마다 성전 안에서 한 숨 내쉬는데 가온을 쏟고, 

가정에서부터 떡을 찢으며,

즐거움과 속임 없는 가온으로 음식을 바꾸어 먹고,

하나님을 높이며, 온 국민을 향한 섬길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께서 보존되는 사람들을 날마다 이 '하나'에 더해주셨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에 다른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모두가 이 하나에 더해져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되는 것입니다! 곧 거룩한 숨결로 살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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