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여 : 희랍어 전치사 '휘페르'는 '위하여'라 번역된다. 그런데 '위하여'가 무슨 뜻이지?
사전을 찾아보니, 1. 이롭게 하거나 돕다 2. 물건이나 사람을 소중히 여기다 3.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다 라고 나와있다. 왜 '위하여'라 쓰게 되었는지 어원적 설명은 없다. 희랍어 뜻은 above, over. 아마도 '위하여'는 위(上)에서 온듯하다. 무언가를 나보다 위에 두고, 그것을 돕는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루는 것이다. '위'하여, '휘'페르. 비슷하지 않은가? '위에 두다'에서 '위하다'가 오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웃님이시다. 가장 위에 계신 분이다. 의로운 사람이나 선인을 위에 두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내 속에서 나는 높다. 그러나 예수는 힘을 낼 수 없는 사람, 삐뚤어진 사람을 자신보다 위에 두고 하나님 대하듯 한다. '위하여' 목숨을 내놓도록 섬긴다. 삐뚤어지고 힘겨운 이들을 머리에 이신다. 이러한 사랑이 웃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우리 맘에 하나님 숨결로 부어졌다.
*그때 : 희랍어 '에티' 의 번역. yet, still의 의미로 쓰인다. 개역성경에는 '아직'이라 번역되었다. 나는 '그때에'로 번역했다. 왜냐하면, 사전을 찾아보니 시간적 배경을 강조하는 말이더라.
때로는 예수를 알고난 이후에도 힘을 낼 수 없는 날이 있다. 때로는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선 이후에도 삐뚤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어제의 내가 그러한데. 그러한 날을 '아직'이라 말하며 과거로 몰아넣을만큼 나는 강하지 않으며, 나는 '모든 그러한 때에' 예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 이라 읽지 않고 '그때'로 고쳐 읽었다.
*정해진 때를 따라 : 그래서 뒤의 단어가 의미가 있다. '카타 카이로스'. 이것은 인간의 연대기적 시간을 뚫고 돌입하는 신의 시간이다. 과거-현재-미래 라는 인간 정신 속에나 있는 시간 개념들을 깨뜨리고 들어오는 영원한 지금이다.
물론 예수의 죽으심은 역사적 사실로, 특정 시간에 죽으신 것이나,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미치는 십자가의 효력은 시간에 갇혀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들이닥치는 죄에 대해서 십자가는 식지 않는 용광로, 멈추지 않는 분쇄기와 같다.
*단단히 묶어두셨기 때문에 : '쉰티테미'. 개역성경에는 '확증하셨다'. '함께 두다', '연합시키다'라는 기본 의미를 살려보았다. 우리 맘에 부어진 사랑의 출처는 하나님이요, 정체는 그리스도다. 하나님과 나와 그리스도가 사랑으로 함께 단단히 묶인 것이다.
*죽으셨습니다 : 성경이의 도움으로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번역을 해놓고서 돌려봤는데, '죽으셨습니다'를 '돌아가셨습니다'로 고치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부적인 표현은 '돌아가셨다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죽으시고 곧장 승천하신 어감이 있다. 그는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돌아가셨다.
구글에 얼른 검색을 해보니, '죽으셨다'는 말은 성경 고유의 표현처럼 쓰이더라. 죽으셨다는 말의 주어에는 온통 예수. 그 분은 정말 죽으셨다. 그 분을 낮춰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분은 정말 죽으셨다. 그리고 돌아가셨으니 돌아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