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 최희주譯

1.

From. 하나님의 뜻을 통해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과 가족 디모데
To.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와 아카이아 전역에 있는 모든 성도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라는 방법으로 평화라는 결과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인사)

찬양하리라
하나님 즉 우리 주 메시아 예수의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이들의 아버지이자
모든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곁에서 모든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때문에 그리스도가 겪었던 고난들이 넘치듯이, 그리스도로 때문에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도움을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몸으로 겪는것을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여러분, 우리는 여러분들이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우리들의 고통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능력치를 넘어서는 일을 짊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 우리는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들에게 열심내지 않고 오히려 죽은 이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열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셨고 또한 끌어내실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끌어내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에 대해서 기도로 함께 도와주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게 된 은총을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 일로 여기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자부심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자체가 형태가 있는 증거입니다.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대낮에 심판하시는 깨끗함으로 행하고 즉 인간의 차원에서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지만,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부심이듯, 우리가 여러분의 자부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확신 전에 이미 여러분에게 갈 계획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더 기뻐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마케도니아로 가기 위하여, 그리고 다시 마케도니아에서부터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유대로 보내질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계획하는데 내가 가볍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계획한 것들이 내 욕심에 따라 계획을 세우기를, ‘No! No!!’하는 속셈이면서도, ‘Yes, Yes!!’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Yes’하면서 동시에 ‘No’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Yes’도 되셨다가 동시에 ‘No’도 되신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Yes’만 있을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Yes’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Yes”하면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부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시로 도장 찍으셨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 바울은 내 목숨을 걸고서, 증인으로 그 하나님을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여러분을 아끼기에 고린도로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

2.

  그런데 나는 여러분에게 또 다시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여러분에게로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더라도,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은, 내가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이런 편지를 쓴 이유는, 내가 고린도에 갔을 때, 나를 기쁘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기쁨임을, 여러분 모두를 두고 나는 확신하였습니다. 나는 모습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나를 슬프게 했다면, 그가 나를 슬프게 했던것이 아니라, 미꾸라지 한마리가 우물을 흐리듯 여러분 모두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내린 그 처벌이 그 미꾸라지에게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더욱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엄청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그를 사랑으로 위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편지를 쓴 것은, 여러분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지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언가를 용서해주면 나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용서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최후의 심판 때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이 많은 것을 못갖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트로아스에서 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갔을 때, 나는 내가 아끼는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가 시키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자신은 구원 받은 이들과 멸망당하는 이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 바치는 메시아의 향기입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죽음으로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향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삶으로부터 삶으로 향하는 향입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충분한 역량이 됩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저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자들 같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있는 것처럼 메시아 안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 스스로 머리가 되려고 말을 늘어 놓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하는 편지같은 것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나요? 우리의 추천장은 편지가 아니라 여러분들 자신입니다. 그 편지는 우리의 마음에 새겨졌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고 읽히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여러분! 여러분이 우리에 의해 섬김을 받은 메시아의 추천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여러분은 잉크도 아니고 종이도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숨’으로 새겨졌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마음밭에 쓴 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해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계산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의 충분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일을 ‘문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 숨’으로 우리를 충분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호흡, 숨결은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이루어져 율법판을 들고 있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모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죽게하는 ‘문자’로된 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호흡, 숨’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더욱 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문자로 된 율법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잘잘못을 가리는 일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숨결로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 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로 보아 지금까지 문자로 된 것들도 영광으로 빛났지만 이제는 훨씬 더 빛나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문자로된 것은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문자도 빛이 났으니 영원히 있을 호흡은 더욱 빛 속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천을 감쌌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광채는 영원할 것이기 때문에 모세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들은 굳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그들은 그 천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천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영이신 주님을 향해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 천은 반드시 벗겨집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주의 얼굴을 거울보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부활)하여, 점점 더 큰 영광으로 변신되고 있습니다. 마치 지배자이신 주님께서부터 그러한 것 같이.

4.

  이렇게 때문에 우리는 바로 호흡으로 하는 일을 가졌으니 우리가 자비 얻은 것을 힘입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끊었다 말합니다. 우리는 온갖 속임수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가 내 안에서 드러남과 함께 우리를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하나님 얼굴 앞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의 형상과 함께... 그런데 만일 우리의 그 복음마저도 천에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멸망 받은 이들 안에서 가려진 것이며, 그들 안에서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는 예수를 통해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어둠들로부터 빛이 빛추리라”고 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깨달음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것을 토기 그릇들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을 넘어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것이지 우리로부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목을 조여와도 짓이겨있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당황하지 않으며, 추격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아래로 내동댕이 쳐지지만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를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것은 그 예수의 삶이 우리의 몸들로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늘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면서 예수를 통해 넘겨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 예수의 삶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죽음은 나 바울 일행 안에서 일하는 반면, 그 삶은 고린도 교회 여러분 안에서 일합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을 갖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도 말합니다. 다음을 보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을 살려주신 분이 우리 역시 예수님과 같이 살리실 것이며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세우실 것이란 사실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통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 흘러 넘쳤던 ‘거저 주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겉모습은 닳아가고 있고, 오히려 우리의 속모습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짊어지게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들은 땅의 시간에 있지만, 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은 하늘 땅 만큼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만일 현실에 있는 장막의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손으로 짓지 않은 집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아이언맨 슈트처럼 덧입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현실에 있는 장막집에 혼자 갇혀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이고, 덧입었음에도 벌거벗은채로 발견될 사람이 있을겁니다.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 슬퍼하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먹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증으로 성령님을 보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겁이 없고 또한 우리 육체의 몸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주님과 소통하는 영적인 몸은 세상 사람들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에 안보이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겁이 없고 (사실 ‘죽음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육신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세상사람들로부터 벗어나면서 주를 향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 안에 있든지, 세상 사람들 바깥에 있든지 상관없이 영광스러운 명예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집합 같은 자리가 딱 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최후의 심판대(혹은 어떤이 에게는 시상대)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각 사람들이 그의 몸으로 실천했던 것들을, 착한일(시상)이든 나쁜일(심판)이든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 있는 것처럼 나는 여러분의 양심 안에서도 하나님이 드러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인즉슨 우리 자신들을 여러분과 함께 내세우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쥐뿔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있는척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우리에 대한 자부심 가질만한 계기를 주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정신이 나가있고 여러분께는 이성적입니다. 즉 메시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죽게 했습니다. (모두를 살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이 죽음의 목적은 더 이상 본인을 위해 살지 않고, 모두를 위해 죽고 살아나신 예수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 때로부터 어떤 것도 살고있는 몸의 기준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살고있는 몸의 기준으로 메시아를 깨달았다면, 오히려 우리는 지금 어떤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만일 누군가 메시아 안에 있다면, 새 피조물입니다. 옛날에 창조된 것들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 피조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그 화해의 미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계셨고,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그들에게 묻지 않으시며, 그리고 우리 안에서 그 화해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놓았던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시아를 대신하는 사절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죄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6.

  우리가 함께 일하므로 여러분에게 하나 말해둘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저 주심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저 주는 것을 네가 받을만할 때 주었고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거저 주시는 때이자,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 둘의 시간이 공존하는 시대에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이 일이 비난받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지 누구에게나 “쟤 왜저래”라는 느낌이 들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사명과 어려운 일들 속에서], [다치고 감옥에 갇히고 폭동들 속에서], [힘들고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들 속]에 있지만, {순수함으로, 아는것으로, 오래참음과 먼저 손내밈으로},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들을 통해서, 영광과 창피함을 통해서, 비난과 칭찬을 통해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잘못 이끄는 것 같지만 진실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알고 있으며,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계를 받고 있지만 사형선고까지는 받지 않았고, 슬퍼보이지만 항상 기뻐하며, 거지같지만 많은 사람을 풍족하게 하고, 가진 것 없어 보이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속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이 속좁은 겁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말하듯이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로 다른거 필요없고 “여러분의 마음을 넓히세요.”

  여러분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지 마세요(그들이 우리의 잠재력의 걸림돌이 될것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을 이루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사탄이 어떻게 화음을 이루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받을 몫을 무엇이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나와 여러분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셨듯 말입니다.

  “나는 그들 안에 살 것이고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레위기와 예레미아에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들 가운데로부터 나와라 그리고 경계선을 그어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씻기지 않은 것에 들러붙지 말아라.
  바로 내가 너희를 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라고 이사야와 에스겔에서 말씀하셨고)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로 될 것이고,
  그리고 너희들은 나에게 아들들과 딸들로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께서 말씀하신다.”
  (라고 사무엘하와 레위기와 이사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겐 이런 약속들이 있으니, 몸과 마음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깨끗이 합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

  여러분들은 우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세요. 우리는 어떤 나쁜짓도 안했고, 어떤 것도 없애지 않았고, 어떤 것도 뺏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판결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크게 믿고 있으며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모든 우리의 어려움들이 지금은 기쁨으로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도착했을 때에도, 우리의 몸은 조금도 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들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친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서는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디도가 돌아온 것뿐만 아니라, 디도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느낌으로 우리는 또한 위로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또 나를 위해 여러분이 열심히 생활한다는 것을 그가 전해 줄때에, 나는 더욱 더 기뻐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고린도전서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지금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따지고 보면 여러분은 우리로 인해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나의 생각을 바꾸게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써 여러분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바뀌었는지 보십시오. 그 슬픔이 오히려 정당한 변호를, 오히려 마땅한 분함을, 오히려 잘못 된 일에 대한 두려움을, 오히려 건강한 간절함과 열심을, 오히려 의로운 처벌을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 앞에서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한 것은, 남에게 나쁜 일을 한 사람이나, 나쁜 일을 당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환히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안을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위안 위에 디도의 기쁨이 겹쳐서, 우리는 더욱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분 모두로부터 환영을 받고, 마음에 안정을 얻었던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두고 디도에게 자랑한적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그 자랑을 사실로 만들어줘서)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진심을 담아 사실대로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여러분을 두고 디도에게 말한 자랑도 진실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디도는, 여러분 모두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영접하고 순종한 것을 회상하면서, 그 보다 더 많은 애정을 여러분에게 쏟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안에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8.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거저 주심을 깨닫게 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회일까?라고 입증해볼 수 있는 내용 중 3가지를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다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돈이 없어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내가 감히 단언할 수 있는데, 그들은 자기네 능력이 되는데까지 도와주는것 뿐만아니라 오히려 능력보다 오바해서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기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디도에게 청하기를, 디도가 이미 시작한 대로 이 은혜로운 구제 사업을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완성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믿음이나 말솜씨나 아는것이나 열정이나 그리고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로 뛰어납니다. 팔방미인인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여러분의 사랑도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저 주심을 깨닫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때문에 아쉬울거 없는 이가 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의 거지됨으로 여러분을 넘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이것에 관해 한 가지 팁을 말해주자면, 이 일은 여러분에게 이득입니다. 어떤 이들이 이미 이 일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작년부터 그 뜻한 것을 여러분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일을 끝마무리 지으세요. 여러분이 직접 나서서 시작할 때에 보여준 그 열정에 어울리게, 여러분이 나서서 그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 열정이 앞에 놓여서 각자 갖고 있는 것 안에서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지만, 없는 형편에 꾸어서까지 하는 열정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없는 사람들을 입혀서 편안하게 하는 대신에 여러분을 어려운 형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평형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의 시간에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 그들이 여러분의 부족함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상부상조하여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 18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디도의 마음 안에 우리 마음과 같은 열성, 조급함을 주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디도는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 일에 더욱 속도 내어서 자진하여 여러분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더 보냈습니다. 이 형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이 자자한 사람인데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교회가 우리의 여행 동반자로 선출한 사람이며,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이 은혜로운 일을 돕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좋은 뜻을 이루려고 이 일을 합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이 막대함을 두고,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조심합니다.(우리가 구제 사업으로 받은 막대한 현금을 몸에 지니고 나르다보니 혹여나 의심사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앞서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앞에서도 정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둘과 함께 또 형제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또한 모든 일에 열성이 있음을 우리는 여러번 입증했습니다. 지금 그는 여러분을 크게 믿고 있으므로, 더욱더 열심을 내고 있을 것입니다.

  디도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내 동료이며 여러분을 향한 내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간 우리 형제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여러 교회의 심부름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주세요. 그리하면 그들을 보낸 교회들이 그것을 보고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사람들 참 괜찮다고 했는데.. 진짜였네~”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9.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을 두고 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했기에 더 이상 여러분에게 글을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지난해부터 준비가 되어 있어”라고 자랑했고 여러분의 준비됨을 듣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극되어 분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우리가 이 일로 여러분을 자랑한 이야기가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내가 말했던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준비하고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와 함께 마케도니아인들이 여러분에게 갔는데 여러분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입장이 무척 난처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청하여, 나보다 먼저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이 내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준비해 놓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프로젝트는, 마지못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해야하는 포인트는 이렇습니다.

  조심히 뿌리는 이는 조심히 거두고, 좋은 말들로 뿌린 이는 좋은 말들로 거두리라.

  이 프로젝트는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나눠줘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넘치도록 거저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 112편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심을 씨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먹을 음식도 채워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그 씨를 넘치게 해주실 것이며, 여러분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불평등 없는 세상을 향해 열심히 사는 이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열심히 사는 그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서 흘러넘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흘러 넘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뚜렷하게 드러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이나 고린도교회 당신들이나 하나의 하나님 아래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분을 위한 기도로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해 한계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거저주심을 통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네번째 편지 끝!


10.

-다섯번째 편지 시작!

From. 하나님의 뜻을 통해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과 가족 디모데
To.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와 아카이아 전역에 있는 모든 성도들

  나 바울은 메시아 예수가 겸손하고 부드러우셨으니 나도 그를 따라 내 성격을 누르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편지 합니다. 내가 들은바로 나 바울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굽신거리면서, 떨어져 있을 때면 할 말 다한다’고들 합디다. 그런 내가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은, 내가 고린도에 직접 가서 여러분을 대할 때에 진짜로 얼굴 붉히면서 할 말 다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몸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다고 추측하는 어떤 사람들을 향해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몸이 배부르려고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 앞에 우리의 무기들은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견고한 방어막이라도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포텐셜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감으로서 계산적인 것들과 모든 칭송받는 높은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우리의 모든 사상들에 예수님을 끼워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 쯤에는, 우리는 모든 복종하지 않는 자를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겉모양만 보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자기가 그런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주신 권한을 좀 지나치게 자랑했다고 한들, 그 권한은 주님께서 여러분은 깔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존중해주라고 주신 것이므로, 나는 떳떳합니다. 내가 여태 편지를 보낸 이유는 여러분을 겁주려고 한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편지는 바울이 뭔가 있어보이게 만들어 주지만, 바울을 직접 만나보면 그는 약해빠지고 말도 잘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없으면서 편지로 했던 말들을 우리가 거기 직접 있다고 못할 줄 압니까? 우리는 몸만 없을 뿐이지 ‘일’로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육신안에 산다고 해서 육신 안에 국한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종족이 되려고 하지도 않고 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싫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혼자 평가한 다음 지랑 우리랑 비교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처럼 우리가 평가한 것으로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배해주신 그것에 따라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여러분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즉 우리가 여러분을 포기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게 아닙니다. 나는 오히려 여러분에게 변화될 싹이 보이기에 그 싹이 다른 곳에도 필요하기에 떠나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기준으로도 잴 수 없는 이것을 다른 선교사들이 고생하고 있는 곳에서는 내세우지 않았고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가지였습니다. 첫째,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해서 우리의 활동 범위가 여러분들 사이에서 더 넓게 확장되는 것. 둘째, 그 확장된 것이 여러분이 있는 고린도 지역을 넘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하지만 다른 선교사들이 자기네 지역에서 이미 밥상 다 차려놓은것에 숟가락 얻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서 9장 24절에 보면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뜻은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입증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함께 세워주시는 사람이 입증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1.

  여러분은 내가 좀 찌질이처럼 말하더라도 참고 들어보길 바랍니다. 인내심있게 들어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경쓰시는 것만큼 여러분에게 신경씁니다. 나는 (딸을 곱게 키워서 시집보내는 것처럼)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와 맺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뱀이 최선을 다해 하와를 완벽히 속인 것같이, 여러분의 썩어빠진 생각으로 인해 여러분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 이 일을 망쳐 버리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이단들이 와서 우리가 말한 예수가 아닌 전혀 다른 예수를 전했는데 여러분은 잘도 받아주고 있습니다. 그 이상한 예수를 받아들이니 여러분은 이상한 영도 잘 받아들이고, 우리가 보내지도 않은 이상한 소식을 잘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참 잘하는 짓입니다. 나는 나를 저 이단들보다 조금도 모자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저들처럼 말솜씨는 없을지언정 아는 것은 자신있습니다. 이점은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여러분도 충분히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높이기 위해 나 자신을 낮추었고 게다가 선물로 하나님의 복음까지 전했는데 이렇게 한 내가 죄를 지은 걸까요?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해 월급을 다른교회에서 갈취하면서까지 받아냈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지경이었지만 여러분 어느 누구한테도 땡전한푼 받은 적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 당시 마케도니아로부터 온 형제들이 내 빈곤을 해결해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생활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는 진짜 예수가 있기 때문에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프라이드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굳이 돈을 안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에게 아무 빚도 안졌으니 쌩가려는것처럼 보이나요?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오해와 추측이 난무하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있던대로 고집부리겠습니다. 이유는, 우리랑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스스로가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기회를 애초에 잘라버리기 위함입니다. 그런 애들은 거짓 사도이며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사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놀랄 것도 없는게, 사탄도 천사로 사칭하는 세상인데.. 사탄 추종자들이 천사를 쫓는 사람들처럼 가면을 쓰는건 뭐 덜 놀라운 일이지요.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동한 것에 따라 결말이 따라올 것입니다.

  내가 한번 더 이야기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멍청하다 생각하려거든, 멍청한 사람으로 날 생각해서 내가 자랑하는 것도 그냥 놔두십시오. 지금 내가 말하는 방식은 주님을 따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멍청해서 자기 자랑을 뭐라도 된것마냥 이야기 하는 사람을 코스프레해서 하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몸으로한 자기 행실들을 자랑하니, 나도 자랑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똑똑해서 멍청한 사람들을 잘도 참아주시네요. 누군가가 여러분을 노예부리듯해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잡아먹으려해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골탕먹여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얕잡아봐도, 누군가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해빠져서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그 누군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감히 자랑하려고 하니 나도 감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내가 멍청한 말을 해보겠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히브리 사람인가요? 나도 그런데요?
  누군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인가요? 나도 그런데요?
  누군가는 아브라함의 후손인가요? 나도 그런데요?
  누군가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인가요?

  내가 미쳤다치고 나는 더욱 그러니 나를 위해 말해보겠습니다.

  나는 고생도 더 많이 하고
  나는 감방도 더 많이 갔고
  나는 매도 더 많이 맞았고
  죽을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나는 39대씩 5번이나 맞았고
  나는 3번 채찍으로 맞았고
  돌로 맞은건 1번
  배가 뒤집힌 적이 3번이고
  바다 위에서 밤낮 꼬박 하루를 보낸적이 있습니다.

  빈번한 이동하는 시간에는
  강물들의 위험들과,
  쿠데타의 위험들과,
  유대인들로부터의 위험들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들과,
  도시에서의 위험들과,
  사막에서의 위험들과,
  바다에서의 위험들과,
  사기꾼의 위험들 속에 있었고

  고생하고 피곤하고
  밤도 여러번 새고
  배고프고 갈증나고
  여러번 탈진하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지만 1절만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교회를 걱정하는 걱정이 날마다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그 누군가가 약한면도 있을텐데, 그렇다면 나도 약하지 않겠습니까? 그 누군가가 걸려 넘어질 때도 있을텐데, 나도 애간장 타지 않겠습니까? 만일 꼭 자랑해야만 한다면, 나는 그런 연약함 속에 있는 것들을 자랑하겠습니다. 영원히 찬양 받으실 하나님, 즉 주님이신 예수의 아버지가 내가 거짓말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계십니다. 다마스커스에서 지역 총독인 아레타 왕이 나를 체포하려고 다마스커스의 그 도시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서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12.

  자랑이 나에게 좋을 거 하나 없지만 말나온김에 주님께서 (한 사람에게)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나는 14년 전에 낙원에 갔었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낙원에 갔을 때 몸이 간건지 유체이탈을 해서 영이 간건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이 원하는대로 행동했는지 영이 이끄는대로 행동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가 낙원 안으로 붙들려 들어갔을 때,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대신해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것은 내 약점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 먹고 자랑한다 해도 진실만 말할터이니 누구들처럼 현명함 없이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만두렵니다. 누군가 나를 향해 그가 나에게서 보고 들은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지도 모르니까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약점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천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쥐어패서 나를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세번이나 이것이 내 몸을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거저 준 상황들로 넌 이미 충분해.

  내 능력은 연약함 속에서 포텐터지거든..”

  그래서 나는 더욱 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연약함을 통해 메시아의 포텐셜이 내 안에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나는 병걸리거나 모욕과 쪼들리거나 핍박과 곤란한 일들을 겪는 것을 즐깁니다. 내가 연약할 때마다 (강한 하나님과 함께해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멍청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렇게 멍청한 나를 추천해줘야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당신들이 말하는) 그 “위대한 사도들”보다 뒤쳐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멍청이로 만들었지만) 나는 (여러분이 사도라면 기적이나 표적을 보여줘야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서 일일이 참고 견디면서 기적이나 표적을 (다른 사도들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빼면 여러분과 다른 교회들의 차이점이 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재정을 지원받지 않은게 불공평한 것이라 생각되시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보세요. 나는 여러분을 세번째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산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키우기 위해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돈을 쓰는 것에 멈추지 않고,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아예 탕진해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엄청 사랑한다면 내가 여러분께 덜 사랑 받겠습니까?

  어쨌든 뭐, 나는 여러분을 부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속여서 여러분을 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형제들 중에 누구 하나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나는 디도에게 여러분에게로 가라고 권하였는데 디도가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없지 않습니까? 디도와 내가 같은 의도로 행동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단 말입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변명하기 바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에게 말하기 이전에, 메시아 안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여러분을 직접 만나기 전에) 여러분들을 바로 세워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나는 두렵기 때문입니다. 막상 직접 여러분을 만났는데, 여러분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혹은 오히려 내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여러분 안에 싸움, 시기와 분노와 경쟁심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내 하나님께 (자식 잘못 키웠다고)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혹은 전에 죄를 지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더러움과 음란함과 방탕함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내가 슬피 울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13.

  이제 내가 여러분을 세번째로 직접 만나려고 합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나와있듯이 두명~세명 증인들의 입으로 모든 사건은 처리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난번에 두 번째로 여러분을 만났을 때 언급한 적이 있을겁니다. 일전에 범죄한 사람들에 대해서나 또는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이미 말했었지만 지금, 여러분과 떨어져 있을 때 한번 더 말하겠습니다. 내가 이번에 다시 가면, 저런 사람들을 가만 놔두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연약하신게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 안에서 할 수 있는 능력 있으신 분입니다. (연약하지 않아도 됐던) 그분은 연약함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덕분에)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잠재되어 있는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 입니다.(이것이 사탄이나 인간은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할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하고, 연약함에서 강한 힘을 불러냅니다.) 만일 당신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들 스스로를 한번 테스트 해보세요. 여러분은 스스로가 여러분 안에 메시아 예수가 계시다는 사실도 모르나요? 만일 검증해볼 수가 없으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 바울일행이 실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악한 일을 행하지 않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격자라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격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옳은 일을 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일에 반대되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지만, 참된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다면 그걸로 난 만족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 딱 맞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곧 갈꺼면서 이렇게 굳이 편지까지 쓰는 이유는, 내가 가서 주님께서 주신 권한을 가지고 사건들을 처리할 때에, 내가 너무 화가나서 여러분과 불편해지기 전에 교통정리를 미리 해놓으라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 권위는 여러분을 혼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cheer up해주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가족여러분, 기뻐하세요. 기준에 딱 알맞게 되시고 서로를 격려하세요. 그리고 이것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면서 사세요.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세요.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세요.(중동의 인사법) 거룩한 이들 모두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주님이신 메시아 예수의 거저주심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소통하심이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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