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다니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베다니'는 '가난한 이들의 땅'이란 뜻입니다. 이상하게도 여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과 아주 가까운 동네인데 가난했습니다.
  마치 영등포에 있는 쪽방촌처럼 말입니다. 한 쪽에는 높은 빌딩이 줄지어 서있는데, 맞은 편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부자동네 옆에 붙은 가난한 동네, 베다니입니다.



  이 베다니에는 삼남매가 살고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님께 기름 붓고 머리로 그 발을 닦았던 바로 그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주여, 당신의 친구가 연약한 걸 보십시오."


  이 말을 들으면 요한복음의 세번째 표적이었던 베데스다 연못의 지체 장애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그의 연약함을 보시고 그에게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과 친한 나사로가 연약하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나사로에게 내려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연약함은 죽음을 향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뚜렷을 위해 있다, 이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뚜렷히 되기 위함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 또 요한복음의 다섯번째 표적이 생각납니다. 날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제자들은 서로 옥신각신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가 많아서 이렇게 되었냐느니, 이 사람의 부모가 죄가 많아서 이렇게 되었냐느니 싸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이 시각 장애인인 것은 "하나님의 뚜렷을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연약한 것은, 하나님의 뚜렷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하나님의 뚜렷이 어떻게 드러날까요?


  연약한 나사로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이틀을 고의적으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유대로 다시 가자!"


  그러나 우리가 다섯번째 표적에서 보았듯이, 안식일마다 병자들을 고쳐주는 예수님을 유대인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모세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당장이라도 예수를 돌로 쳐서 죽일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로 가려면,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로 넘치는 예루살렘 근처로 가야합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말했습니다.

  "랍비여, 지금 유대인들이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니요?"

  그런데 예수님은 또 알쏭달쏭한 말로 답하셨습니다.
 
  "열 두 시간이 한 낮에 속하지 않느냐? 누군가 그 낮에 걷는다면,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코스모스의 빛을 그가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밤에 걷는다면, 그는 넘어진다, 왜냐하면 그 빛이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요? 낮에 걷는 사람과 밤에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낮에 걷는 사람은 걱정없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그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자신이 그 빛이라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빛과 함께라면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니,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저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럼 넘어진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요?


2.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길을 떠난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잠들었다면, 구원 받겠지요."


  이 "구원 받다"라는 말은 죽어서 어디 간다는 뜻이 아니에요. 본래 '일어나서 산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든 것이라면 일어나 사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라고 말한 거에요. 그런데 만일 나사로가 죽어버렸다면 제자들은 무엇이라 말할까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말,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길을 떠난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 이 말들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은 "내가 길을 떠난다"에요. 제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알고 계셔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아주 고통스럽게 죽임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진술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제자들은 그이가 잠의 휴식에 관해 말씀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대놓고 말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연약할 때, 자신이 그 옆에 없었던 것이 기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지금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 때문에 기쁘다고 하세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사로 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사로는 계속 아팠고, 그 나사로가 계속 아팠기 때문에 이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실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르는 여행을 떠나십니다. 제자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그에게로 가자!"


  그러나 이 예수님의 맘을 모르는 제자들은 이 여행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도마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가자 그이와 함께 죽으러!"


  비꼬면서 했던 말이었겠지만, 나중에는 그도 알게 됩니다. 저 말이 참 옳은 말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 빛과 함께 하는 길이요, 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요. 일단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렇게 베다니로 예루살렘 쪽으로 떠났습니다.


3.


  그리고 우리는 이 여섯번째 표적 이야기를 여기서 잠깐 멈추고,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길 떠남"에 대해서 얘기를 해봅시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인 베다니로 가는 여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떠난다"


마태복음 20:17~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붙잡혀서 사형 선고 받고 로마에 의해서 십자가 처형을 당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은 죽으러가는 여행이에요. 그럼 예수님은 왜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나실까요?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심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고생고생하고 있을 때, 그들은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직접 찾아오셨어요.


출애굽기 3:7,8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오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것을 뭘 보고 알 수 있죠? 이스라엘의 텐트 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텐트, 성막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은 나중에 가나안 땅을 정복 한 이후에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나중에 이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박살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기나긴 포로기가 시작돼요. 이때 이스라엘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출애굽 때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이제 떠나셨다.


2) 하나님의 귀환에 대한 예언들


  이스라엘은 정말 낙담했을 거에요.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이 떠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언자들이 나타났거든요. 그들의 예언을 여러분들이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24:23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35:4,5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이사야 52:8~10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스가랴 8:3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말라기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께서 홀연히 그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예언입니다. 돌아오시는 장소도 예언되었죠. 바로 예루살렘(시온)으로.


3) 심판을 위해 돌아오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 예언들은 돌아오시는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고, 눌렸던 자에게 자유를 주며,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신다고, 금 같이 은 같이 그 구해낸 사람들을 연단해서 다시 하나님께 드릴만한 것들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 예수 : 이스라엘에 돌아오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하나님'으로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보며, 이 내용을 떠올려봅시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길을 떠난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

  그런데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말했다.


  돌아오시는 하나님으로서 길을 떠나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돌아오신 왕이 죽임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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