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

우주 어디나 계시어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아빠 곧 우리 아빠!
우리를 출애굽 하셨으니,
우리가 아빠 이름 깨끗 위해 살겠습니다.
우리가 제사장 나라 되게 하시고,
하늘에서 사탄이 내쫓긴 것처럼,
우리를 통해 땅에서도 내쫓으소서.

우리에게 날마다 먹을 밥 주옵소서.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그날 필요한 만큼만.
(하늘의 새도 땅의 들풀도 아빠가 오늘 먹이고 입히십니다)

주께서 희년을 선언하셔서 우리가 자유 얻었으니,
우리도 다른 이의 진 빚을 없애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다른 이의 진 빚을 없애지 않으면,
주께서도 우리 빚을 없애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얻을 때까지,
현시대에 눌러붙지 않게 하소서.
(우리는 반드시 새 날을 볼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이 아빠께 나라와 힘과 뚜렷이,
현시대로부터 오는시대에 이르도록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0. 지난 이야기

  우리는 요새 주기도문을 보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이란 뜻이고, 이 기도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을 잠깐 복습해봅시다. 우리는 좀 생소한 말을 배웠지요. '희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7년에 한 번 씩 1년 내내 쉬는 안식년을 갖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년이 일곱번 반복된 다음 해, 즉 50년째에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빚졌던 모든 것을 탕감해주었습니다. 이날을 바로 '주님의 은혜의 해',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우리가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해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여기 나오는 '죄'라는 말을 '빚'이라고 고쳐서 읽어야 합니다. 이 기도내용은 희년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우리가 빚 지은 자의 빚을 없애준 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빚도 없애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게 예수 공동체의 사는 방식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은 빚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1. 거짓말은 진실한 말을 빚진 것입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A는 B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어떤 빚입니까? 진실의 빚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빚쟁이가 되는 꼴입니다. 따라서 거짓말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 거짓말을 들려주는 사람에게 진실의 빚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들어야 할 진실을 이 사람에게서 듣지 못하고, 오히려 거짓말을 들었으니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마땅히 이 거짓말쟁이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이 사람의 빚을 없애주는 길이 있습니다. 먼저는 1) 그 사람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이때 우리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2) 만일 이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의 말을 받아들였다면(이 단계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3) 우리는 이 사람이 거짓말 했던 것을 잊어줘야 합니다. 즉 없던 일로 해줘야 합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용서란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없던 일로 한다고 억울해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뉘우치고 진실을 받아들였다면, 더 이상 그는 거짓의 노예가 아니고, 우리는 거짓으로부터 출애굽한 새로운 친구를 얻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끝까지 기억해주어 진실을 끝까지 말해줘야 합니다. 오로지 이 방식으로만, 이 사람이 지고 있는 진실의 빚을 탕감해줄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소록도라는 섬에서 한센병 걸린 사람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던 어르신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에 '여수 순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수 순천의 군부대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두 아들이 어느 반란군인에 의해 하루 아침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반란이 진압되고 그 군인이 자신이 두 아들을 죽였노라고 자백하자, 그 사람을 자기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자기 아들 삼는다니요!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에 놀라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출애굽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역시 출애굽하고 나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거짓으로부터 진실로의 출애굽

  땅을 빚진 사람에게 땅을 돌려주는 일이 기쁜 일이듯, 진실을 빚진 사람에게 진실을 돌려주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진실을 돌려주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면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심지어 진실을 말해준 이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진실. 메시아 예수께서 죽임당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이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셨고, 그 진실 때문에 죽임 당하셨습니다.

  진실을 이 땅에서 말살하고픈 사탄은, 진실의 사람이 죽었을 때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출애굽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의 사람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비로소 우리는 우리 목숨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메시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거짓말쟁이들이 뉘우치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그 진실의 광야로 나아오는 길은 지금도 열려있습니다.

  이 말을 하면, 누군가는 '제가 예수님을 언제 죽였어요!' 라고 되묻겠지만, 예수를 죽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거짓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거짓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서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거짓을 아무 문제도 아니라 생각하는 당신은 메시아 예수의 죽음을 방조했거나 보탠 공범이 분명합니다. 그 자리에서 대체 누가 말렸습니까? 이 사람은 죄가 없으니 죽여선 안된다고 어느 누구 말린 사람이 있습니까? 진실의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고, 거짓에 밥 먹듯 참여하는 온 인류가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거짓을 가볍게 봐선 안됩니다. 거짓은 우리를 빚쟁이로 만들고, 메시아를 찌른 날카로운 창이 바로 거짓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에클레시아의 길입니다.



3. 에클레시아의 길

  어느 마을 이장님께 1억원을 꾸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돈 갚을 날이 되었는데, 이 사람은 1억원이란 큰 돈을 갚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장님 앞에 엎드려서 사정사정했습니다. "이장님, 제게는 처자식도 있고요. 정말 갚을테니 얼마간 더 말미를 주세요." 이 사람을 딱하게 생각한 이장님이 큰 결심을 내렸습니다. "사정이 딱하구나. 그럼 그 1억원은 더 이상 갚지 않아도 되네. 빚을 없애주겠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간 마음 한 구석에 늘 돈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 부담감이 사라지니 정말 몸도 가벼이 느껴졌습니다. 이장님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으니 빌려준 기간 동안에도 손해를 보았고, 빌려준 돈에도 손해를 보았지만, 기뻐하는 저 사내를 보니 그 손해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고,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그 빚졌던 사람은 두 배로 받은 것이나 진배 없었습니다. 본래는 이자도 갚아야 하고, 원금도 갚아야 하지만, 이제는 갚을 것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에클레시아에게 이 말씀을 왜 들려주셨을까요? 이장님이 빚을 없애주었다는 말은, 희년이 선언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빚을 없애주고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빚을 없애주셨습니다. 과정이 있었습니다. 1) 진실을 말해주셨고, 2) 그 진실에 우리가 뉘우쳤을 때, 3)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했던 것을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라고 하면 1), 2) 도 없이 3)만 하려고 합니다. 왜냐 물으면 문제를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1)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실하게 살기 위해 진실하신 한 분이 자기 목숨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이의 피를 발라 위대한 오는시대의 여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선언되었고 자유가 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코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진실이 아닌 거짓의 노예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의'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의'라는 말은 법정 판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재판 결과 당신이 옳다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선언해주시는 것이 '의'입니다. 드라마에서 많이 봤듯이, 법정에 들어가면 오른손을 올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저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오는시대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정 판결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법정 판결에서 이긴 사람들, 옳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로운 에클레시아가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때엔 진실을 말했다가, 어느 때엔 거짓말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법정에서 옳다 판결받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아무에게도 진실의 빚을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진실의 모범을 보이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지나 광야로 나아온 이스라엘 씨알에게 하나님의 토라가 주어졌습니다. 그 토라는 광야 공동체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 내용 중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증거'라는 말을 들으니 법정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 아래 사는 이 법정의 삶 속에서 말해야 할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진실에 진실을 보태서 진실이 없는 사람에게도 진실을 돌려줘야 합니다. 희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진실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4. 경고


  그런데 그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다가, 지난 번 그 사내에게 10만원 꾸어갔던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득달같이 달려가서 그 사람 멱살을 쥐고서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너 내 돈 언제 갚을거야!" 이 소식을 들은 이장님이 그를 다시 불러다 놓고 호통쳤습니다. 무어라 호통쳤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내는 다시금 이장님께 1억원과 이자까지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의 사내는, 희년의 혜택을 입었음에도 오히려 희년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보다 더 잘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 나라임을 기억합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빚을 없애주는 삶을 살지 않으면, 즉 진실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거짓을 없애는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희년의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 다시금 빚을 지게 하실 것입니다. 친절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어린이가 되어주세요. 주기도문이 끝나고 바로 다음 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6:15
왜냐하면 만일 사람에게서 그의 어긋난 발걸음들을 없이하지 않으면 반드시, 너희에게도 너희의 하늘 아빠가 없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에는 남녀노소 선생제자 부모자녀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꼭 말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진실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제게 빚이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실의 빚을 지지 않을 작정입니다. 함께 에클레시아의 길을 갑시다.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에 사로잡힌 자가 그 잘못을 알 때까지 진실을 말해줍시다. 이거 듣기만 해도 피곤하고 힘든 길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줄곧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눈엣 가시 같은 사람이 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 2000년 넘게 하나님도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진실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뉘우치고 나의 아들이 되라고, 딸이 되라고. 그러니 우리도 아빠처럼 하자는 말입니다. 만일 거짓에 사로잡힌 자가 우리가 내는 진실의 소리를 듣고 다시금 돌아온다면, 이렇게 말하며 춤추는 것도 잊지 맙시다.


"잃었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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