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에클레시아에 보내는 편지(상)

1.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메시아 예수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 이 편지를 보냅니다. 여러분은 각처에서 메시아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메시아 예수 안에서 거룩해졌고, 거룩함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이는 우리뿐 아니라 그들의 주도 되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메시아 주 예수로부터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나는 늘 여러분을 두고, 메시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그이 안에서 모든 것, 곧 온갖 언변과 지식이 풍성해졌습니다. 메시아의 증거가 여러분 안에 세워졌기에, 여러분은 어떤 영적 은사에도 부족함 없이 메시아 우리 주 예수께서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이가 끝까지 여러분을 올바로 세우셔서, 메시아 우리 주 예수의 날에 흠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 아들, 메시아 우리 주 예수와의 '코이노니아'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이제 나는 우리 주 메시아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해야 하고, 여러분 가운데 틈이 없어야 하며, 바로 같은 생각과 같은 지식으로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글로에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분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내게 생생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각각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메시아 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나뉘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렸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외에는, 내가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메시아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으니, 만일 지혜의 말로 한다면 메시아의 십자가는 그 능력을 잃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로고스가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겠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겠다.

  어디에 지혜자가 있습니까? 어디에 문법학자가 있습니까? 어디에 현시대를 대변할 논객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 현시대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을 알지 못합니까? 즉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현시대는 지혜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케리그마의 어리석음으로 신실한 이들 구원하시기를 좋게 생각하십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찾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의 메시아를 전합니다,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그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메시아는 하나님의 힘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의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귀족으로 태어나 출신 배경이 좋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 있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 기준으로 볼 때 힘없고, 출신 배경도 없고, 지혜 없는 이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마치 출애굽 했던 히브리 노예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천하고 멸시받는 이들을 택하셨으니, 힘 있는 자들의 힘을 폐하시려고 심지어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신실한 사람들을 새로이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떠한 피조물도 그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

  나의 가족여러분,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하나님의 미스테리'를 뛰어난 말솜씨나 지혜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대할 때, 나는 메시아 예수, 특히 그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약함 가운데, 그리고 큰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케리그마가 지혜 있는 말의 설득력에 있지 않고, 오히려 숨님 곧 능력 나타남에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신실함이 사람들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능력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시대나, 사라져 가는 현시대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즉 미스테리 가운데 보관해 놓으신 지혜로서, 우리의 영광을 위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신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현시대의 통치자 중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해했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눈도 보지 못했고, 어느 귀도 듣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의 가온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신.'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숨님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은, 숨님은 정녕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 찾아 헤아리시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심은, 사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사람 속에 있는 숨 외에 아무도 모르듯,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숨님이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숨님은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것들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가르침 안에서 지혜로운 이치로 하는 말이 아니라, 숨님의 가르침 안에서 말합니다, 숨님의 일들은 숨님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하나님의 숨으로부터 온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숨으로 분별하는 사실이 어리석어 보이고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숨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분별하지만, 그들 자신은 어느 누구의 분별에도 메이지 않습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그 분을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메시아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3.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숨님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었고, 오히려 살몸 안에 있는 자, 곧 메시아 안에 있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하듯이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주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옛날 방식대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디든 시기와 말다툼이 있다면, 여러분이 한낱 보통 사람으로 행동하면서, 옛날 방식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나는 바울 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아볼로 편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니, 여러분은 한낱 사람인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아볼로가 진정 무엇이라고 여깁니까? 바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님이 맡겨 주신 대로, 여러분 각자를 신실하게 한 섬기는 이들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심는 사람도, 물 주는 사람도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이나 똑같고, 각자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저주심을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처럼 토대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그 위에 어떻게 지을지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미 놓은 것 외에 다른 토대를 놓을 수 없으니, 그 토대는 바로 메시아 예수이십니다!

  만일 누가 이 토대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물을 지으면, 모든 사람이 한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들의 업적을 밝히되, 불 가운데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불은 모든 사람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검증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운 업적이 검증을 이겨내면, 그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업적이 불에 타 버리면, 그들은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구원을 얻겠지만, 마치 불을 통과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바로 여러분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자신이 현시대에 지혜롭다고 여긴다면, 지혜로워지기 위해 어리석어 지십시오. 현시대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들이 제 꾀에 넘어지게 하신다.

  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 어리석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것이니, 바울이든 아볼로든, 게바든, 현시대든 생명이든 죽음이든, 미래든 현재든,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메시아의 것이고, 메시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4.

  우리는 마땅히 메시아의 (노 젓는) 일꾼이요, 하나님의 뮈스테리온을 맡은 주택 관리인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택 관리인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함 뿐입니다. 이것을 말한 것으로 내가 여러분에게든 혹은 사람의 법정에서든 심판 받아야 한다고 해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재판장이 아닐 뿐더러, 나는 사실 거리끼는 일이 조금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에 대한 판결이 이미 끝나버린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를 판결을 이루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는 아무 일에도 가능성을 닫고서 판단을 굳게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어둠에 감춰진 것들을 밝히실 것이고, 가온 속 방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칭찬이 각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있을 것입니다.

  내 가족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나와 아볼로에게 먼저 적용했습니다. 그것은 격언대로, 여러분이 다함께 성경이 말씀한 바를 벗어나지 않는 법을 익혀, 아무도 어떤 사람을 지지하고 다른 사람을 반대하는 것으로 우쭐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체 누가 여러분이 우월하다고 수긍해 주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정말 필요한 음식을 이미 모두 가졌다고 여깁니까? 여러분이 벌써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정말로 여러분이 진작 왕이 되어서, 우리도 여러분 곁에서 왕노릇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처럼 개선행진의 끄트머리에 두셨습니다. 우리는 현시대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똑같이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대로 메시아로 인해 우리는 바보입니다. 여러분은 메시아 안에서 지혜가 있다지요? 우리는 약합니다. 여러분은 강하다지요? 여러분은 칭찬받지만,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지요?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우리는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가혹한 대접을 받고, 우리 소유라 할 만한 집고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밤새 육체노동을 하면서 고되게 일합니다. 욕을 먹으면 우리는 복으로 되돌려 줍니다. 핍박을 받으면 우리는 견딥니다. 중상모략을 당하면 우리는 온유한 말로 대해줍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는 그저 접시에서 쓸려나와 버려지는 현시대의 쓰레기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을 소중한 나의 아이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메시아 안에서 파다고기는 천 명이나 있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해 나는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 곁에서 속삭입니다. 나처럼 되십시오. 이 때문에 내가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이자 주 안에서 신실하니, 그가 여러분에게 기억나게 할 것입니다. 내가 모든 에클레시아에서 가르쳤던 바와 같은 것, 곧 메시아 예수 안에 있는 나의 길(道)을.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서 우쭐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께서 원하시면 나는 여러분에게 속히 갈 것입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렇게 우쭐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실천력이 어떠한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실천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합니까? 내가 회초리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사랑의 숨결과 온화함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까?

5.

  모두가 여러분의 에클레시아 안에서 벌어지는 '포르네이아'에 대해 듣는데, 여러분에게 이러한 포르네이아는 이방인들 중에서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아내와 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우쭐댈 뿐 도리어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서 그런 (없던) 일을 한 자를 내쫓지 않는 것입니까?

  내 자신이 실은 비록 몸은 떠나 있으나, 그래도 숨으로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처럼, 이미 판단을 내렸으되,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한자를 이미 판단했습니다. 여러분과 내 숨이 함께 모일 때, 우리 주 예수의 힘도 함께 있습니다. 이 사람을 사탄에 내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그 살몸을 멸함으로써 주의 날에 그의 숨이 건져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의 자랑은 '온전함'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작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오랜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새로운 반죽, 누룩 없는 반죽이 되십시오. 즉 우리의 유월절, 희생당한 메시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랜 누룩으로가 아닌, 썩고 '포르네이아'한 누룩으로도 아닌, 오직 빛나는 판결과 '참' 안에 있는 누룩없는 빵입니다.

  앞서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에게 포르네이아하는 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썼습니다. 현시대의 넘쳐나는 포르노이아의 사람들, 또는 탐욕스런 사람들, 또는 그림자를 따르는 이들 모두를 뜻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피하려면 현시대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포르네이아하거나, 탐욕스럽거나 그림자를 따르거나, 악담하거나, 뭐에 빠졌거나, 강요하고 빼앗는 동료 기독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 마십시오.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 내가 무엇을 판단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그 악인을 우리로부터 내쫓으십시오.

6.

  여러분 가운데 타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불의한 이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 일이 있다는데, 어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이들이 현시대를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또 만일 현시대가 여러분 안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그 사소한 것들을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별 일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하물며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라니요! 이런데도 여러분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와 관련된 소송이 있을 때면 늘, 에클레시아 안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혀놓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족들 사이에서 판결을 내릴 만한 지혜로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정녕 그러합니까? 그래서 한 형제가 다른 형제와 함께 판단 받습니까? 그것도 믿지 않는 이들 앞에서?

  서로 판단할 일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여러분에게 전적인 실책이 있습니다. 왜 차라리 여러분이 부당한 취급을 받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왜 차라리 여러분이 손해를 감수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여러분 자신이 부당함을 만들고 손해를 끼치며, 그것도 가족들에게 그 짓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부당함을 만드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속지 마십시오! 포르네이아한 자들, 그림자를 따르는 자들, 어떤 유형이든 동성애를 하는 자들, 훔치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뭐에 빠진 자들, 악담하는 자들, 강요하고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전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룩해졌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 메시아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 숨결로.

  "모든 것이 내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내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음식은 위장을 위해 있고, 위장은 음식을 위해 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도 저것도 멸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포르네이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 있고, 주는 몸을 위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주를 일으키셨고, 우리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의 힘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메시아의 팔,다리인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내가 메시아의 팔, 다리를 데려다가 매춘부(포르네스)의 팔,다리로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매춘부에게 붙은 이는 그와 한 몸 되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께 붙은 이는 그이와 한 숨이 됩니다.

  포르네이아를 피하십시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비뚤어짐은 몸 밖에 있습니다. 하지만 포르네이아는 자기 몸을 비뚤게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여러분 몸이 성전이며, 그 성전은 여러분 안에 계신 거룩한 숨결의 성전이고, 그 거룩한 숨결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유하게 된 것이지, 여러분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즉 여러분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뚜렷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여러분의 몸 안에서(으로).

7.

  그러면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들을 살펴봅시다. 사람은 여자와 관계하지 않는 것이 온전합니다. 그러나 포르노이아의 행실들 때문에  각각 남자는 자기 아내를 갖고, 또 각각 여자는 자기 남편을 갖길 바랍니다. 아내에게 남편은 부부의 권리를 줘야 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동일하게 해야 합니다. 여자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권한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못하고, 아내에게 권한이 있습니다. 서로 거부하지 마십시오. 만일 더 많이 기도할 기간을 갖기 위해 합의한 기간 동안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나약한 의지 때문에 사탄이 여러분을 시험하지 않도록, 그 뒤에 다시 합치십시오.

  나는 이것을 조언하는 것이지,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유한 카리스마가 있어서, 이 사람은 한편으로 이러하고, 저 사람은 다른 한편으로 저러합니다. 

  독신자들과 과부들에게 전합니다. 나처럼 머무를 수만 있다면, 여러분에게 온전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자제력이 없다면, 결혼하십시오. 불같이 타오르는 것보다 결혼하는 게 더 낫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께서 말입니다. 여자는 자기 남편으로부터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헤어지면 독신으로 머물거나, 그와 다시 화해해야 하고, 남자도 아내를 떠나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남은 이들에게는 내가 말합니다(주께서가 아니라). 만일 어떤 가족에게 (주께) 신실함 없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가 그와 함께 사는 것을 좋게 여기면, 그는 아내와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여자에게 신실함 없는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그녀와 사는 것을 좋게 여기면,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함 없는 남편이 자기 아내로 거룩해지고, 신실함 없는 아내가 자기 남편으로 거룩해집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깨끗하지 못했을 터인데 지금 그들은 거룩합니다. 그런데 만일 신실함 없는 배우자가 헤어지려 한다면, 헤어지십시오. 형제든 자매든 이런 경우에는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평화로 부르셨습니다. 아내여! 어찌 알겠습니까, 남편을 건져낼지 아닐지. 남편이여! 어찌 알겠습니까, 아내를 건져낼지 아닐지.

  우리는 누구나 주님이 경계 지어주신대로, 하나님이 부르신 자신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모든 에클레시아에게 단호히 말한 바 입니다. 이미 할례받은 이가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마세요. 할례받지 않은 이가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할례 받지 마세요.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고 할례를 받지 않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각각은 자신이 부르심 받았던 그 부르심 안에 머무르십시오. 당신이 노예일적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인이 될 수 있으면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주 안에서 노예로 부르심 받은 사람은 주께 속한 자유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유인일적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메시아의 것입니다. (당신들을 위해) 비싼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부르심 받은 각각은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무르십시오.

  이제 처녀 총각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주의 명령은 없지만, 깨달은 바를 전달하겠습니다, 주에 의해 자비를 입어 신실해진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나는 지금 놓인 아낭케의 기간 동안 이 아래서 버티는 것이 온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있는 것이 사람에게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묶여 있습니까? '풂'을 찾지 마세요. 아내로부터 풀렸습니까? 다른 아내를 찾지 마세요.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면 언제든지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처녀가 결혼을 한다면 언제든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들은 살몸에 죄임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내 말은 이것입니다. 현재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내가 있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것처럼 살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것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고, 현시대에 쓸 것이 있는 사람은 현시대에 쓸 것이 없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왜냐하면 현시대의 스케마가 (과거의 유물로)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에서 놓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게 해드릴지, 주의 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지, 즉 현시대의 일을 염려합니다. 그는 두 방향으로 끌립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은 여자나 처녀도 어떻게 하면 몸과 숨을 모두 거룩하게 할지, 주님의 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지, 즉 현시대의 일을 염려합니다.

  이는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제약을 두려는 게 아닙니다. 내 목적은, 여러분이 합당하게 행동하고 한결같이 주께 몸 드리는 것을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약혼녀에게 부적절하게 처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즉 그 상황이 너무 힘들고,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그렇게 하도록 두십시오.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결혼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남자가 마음을 굳게 먹고, 부득이한 형편도 아니고, 자기 의지를 통제하고 있어서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온전합니다. 그러므로 약혼녀와 결혼한 사람은 온전한 것이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혼 생활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는데,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대로 지내는 것이 더 복됩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받은 사람이라 여기는 내 깨달음에 말입니다.

8.

  우상(그림자)에 바쳐진 고기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모두 지식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부풀게 하는 반면, 사랑은 집 짓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무엇을 '안다' 여긴다면, 그는 아직 마땅히 알아야 하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어떤 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는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이름붙은 신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서도 있어,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이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 아빠
    그분으로부터 만물이 비롯,
    우리는 그 분을 향하며,
    그리고 한 분 주 메시아 예수
    그이를 통하여 만물과
    우리가 그이를 통하여.

  그런데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바로 이러한 '엑수시아'가, 약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이가 지식을 가진 당신이 우상의 신전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면, 약한 이의 양심이 그 우상의 음식을 먹는 쪽으로 집 지어지지 않겠습니까? 즉 약한 사람은 당신의 그 지식으로 망할터인데, 그 형제자매는 메시아 죽음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에게 비뚤게 구는 이들과 그들의 약한 양심을 공격하는 이들은 메시아께 비뚤게 구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만일 음식이 나의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나는 오는시대에 이르도록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나의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한 분 하나님 아빠
    그분으로부터 만물이 비롯,
    우리는 그 분을 향하며.

    그리고 한 분 주 메시아 예수
    그이를 통하여 만물과
    우리가 그이를 통하여.

9.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습니까? 여러분이 주 앞에서 내 '일'이 아닙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분명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내 사도직을 인증하는 직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변호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엑수시아를 갖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도들처럼, 주의 형제들처럼, 게바처럼 그리스도인 아내를 데리고 함께 여행할 엑수시아가 우리에게 없습니까? 혹은 노동에서 벗어날 엑수시아가 바나바와 나에게만 없습니까? 누가 자기 비용을 쓰면서 군대에서 복무하겠습니까?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습니까? 누가 가축을 보살피고 젖을 먹지 않겠습니까?

  내가 사람의 예만 들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도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타작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하나님이 소를 염려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순전히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결실의 소망을 안고 밭을 갈고, 타작하는 사람은 곡물을 얻을 소망을 안고 타작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 숨에 속한 것을 뿌렸다면, 우리가 살몸에 속한 것을 거둔다고 한들 그것이 대수로운 일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엑수시아를 가졌다면, 우리는 더욱 그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성전 음식을 먹고, 또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제단 음식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모릅니까? 마찬가지로 주께서는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계를 이어가도록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이렇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누구도 나의 자랑거리를 뺴앗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낭케가 나에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내가 기꺼이 이 일을 한다면, 내게 보상이 따를 것입니다. 내가 마지못해 이 일을 한다면, 이것은 내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내 보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주었다는 것, 복음을 전하는 데 따르는 내 엑수시아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는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을 얻으려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습니다. 나 자신은 율법 아래 있지 않은데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 없는 사람이 아니라 메시아의 율법아래 있는데도) 율법 없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함께 코이노니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육상 경기장에서 경주할 때 모든 사람이 달려도 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여러분이 상을 받도록 달리십시오. 운동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면에서 절제합니다. 그들은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하지만, 우리는 없어지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목표 없이 달리지 않습니다! 나는 허공을 치는 사람처럼 권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뒤에 나 자신이 실격당하지 않도록, 나는 내 몸을 거칠게 다루고 노예 삼습니다.

10.

   내 가족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이것을 모르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 가운델 지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세와 하나 되어 구름으로 바다로 세례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숨에 속한 같은 음식을 먹었고, 모두 숨에 속한 같은 음료를 마셨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과 동행한 숨에 속한 바위에서 나온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대다수를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들은 광야에 흩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의 본보기가 된 것은, 우리가 악한 일을 열망하는 이들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열망했듯이. 그림자 좇는 이들이 되지 마세요, 그들 중 어떤 이들처럼. 기록된 바와 같이 말입니다. "씨알이 앉아서는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는 애 마냥 놀았다." 우리 포르네이아를 저지르지 맙시다. 그들 중 일부가 포르네이아를 저질러 하루 만에 23,000명이나 멸망당했듯 말입니다. 우리, 주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중 일부가 그분을 시험했다가 뱀에 멸망당했듯 말입니다. 우리 불평하지 맙시다. 그들 중 일부가 불평하여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당했듯 말입니다.

  이런 일들이 본보기로서 그들에게 일어났고, 우리의 경고를 목적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우리를 향해 현시대의 끝이 마주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시험은 여러분에게 닥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데 하나님은 신실하신데, 그분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시험당할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시험과 함께 견딜 수 있게 하는 피할 길을 창조하십니다.

  그러니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림자 좇음으로부터 달아나십시오. 나는 속 깊은 사람 대하듯 말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내 말을 판단하십시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메시아 (흘리신) 피의 코이노니아가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메시아의 몸의 코이노니아가 아닙니까? 즉 빵은 하나, 한 몸, 우리 여럿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덩이로부터 나누기 때문입니다.

  살몸에 따른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그 제단의 코이노니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제사 음식이 있다는 것입니까? 어떤 그림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그들이 제사한 것은 다이몬들에게지,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이 아니며, 나는 여러분들이 다이몬들의 코이노니아들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주의 잔을 다이몬들의 잔과 (함께) 마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의 식탁으로부터 나눌 수 없습니다, 다이몬들의 식탁과 함께. 아니면 우리가 주를 질투하시도록 자극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이보다 더 강한 이들입니까?

  "모든 것이 상관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상관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집 짓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속한 것을 추구하십시오. 시장에서 파는 모든 것은, 양심을 통해 판단하지 말고, 드십시오. 왜냐하면 "땅과 그 안에 넘치는 것들이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실함 없는 이들 중 하나가 여러분을 만찬에 초대했고, 여러분이 가고 싶으면, 여러분 앞에 차려진 모든 것은 양심을 통해 판단하지 말고 드십시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이것은 제단에 바쳐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언제나, 여러분에게 그 말을 해준 그 사람과 양심 때문에 먹지 마십시오. 그런데 내가 말한 양심은 여러분 자기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타인의 양심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내 자유가 타인의 양심에 의해 판단 받는 것입니까? 만일 내가 '감사로' 음식 먹음에 참여한다면, 내가 잘 감사드린 것 때문에 무슨 욕을 먹는단 말입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무엇을 먹고 마시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뚜렷을 위해 하십시오. 유대인과 헬라인과 하나님의 에클레시아 앞에 걸림 없이 서십시오. 내가 모든 것을 모두에게 맞추어 기쁘게 하듯,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유익을 추구하세요, 그들을 건지기 위해.

11.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세요, 내가 메시아를 본받듯이.

  여러분이 내가 메시아를 기억하듯, 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들을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고, 심지어 '이어져 내려온 것들'을 확실히 지키고 있으니,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것을 모르길 원치 않는데, 모든 남자의 머리는 메시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메시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남자는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여자는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여자가 머리를 민 것이나 같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머리를 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이콘, 뚜렷함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뚜렷함입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로부터 있지 않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로부터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통해(때문에) 있지 않고, 여자가 남자를 통해(때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통해 머리 위에 엑수시아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남자와 별개로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와 별개로 남자가 있지 않습니다. 즉 여자가 남자로부터 있듯이, 이제 남자가 여자를 통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심판하십시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은 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정말 적절한 일입니까? 자연 자체가 여러분에게, 남자가 머리가 길면 그에게 수치이지만, 여자가 머리가 길면 그에게 뚜렷함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머리는 여자에게 가리는 것 대신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논쟁하려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전할 말은 칭찬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 여러분은 더 좋게 되지는 못할망정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에클레시아로 함께 모일 때,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말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파당이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승인된 이들이 '드러날'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자리에 함께 모일 때 먹는 것은 주의 만찬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자기 먹을 음식을 가져오는데, 한 사람은 배가 고프고, 다른 사람은 술에 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를 가벼이 여기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하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주로부터 받아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인데, 즉 주 예수께서 배신당하신 그 밤에, 그이는 빵을 드셨고, 잘 감사드리신 뒤, 빵을 떼시며 말씀하시길, "이것은 나의 몸이요,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것을 행하라, 다시 기억하기 위해." 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녁식사 후에 잔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된 새 언약이다. 이것을 행하라, 이 잔을 마실 때면 언제나, 나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 라고 하셨습니다.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그이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이가 오실 때까지.

  그러니 합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빵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시는 누구든지, 주의 몸과 피에 대한 피고인이 될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면밀히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빵으로부터 먹고, 잔으로부터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몸을 판단하지 못하고서 먹고 마시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고, 몇 사람은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심판한다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에 의해 심판받는 우리가 훈육도 받는 것은, 우리가 현시대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내 가족 여러분, 서로 먹기 위해 함께 모인 이들은, 서로를 대접하십시오. 만일 누군가 배가 고프다면, 집에서 먹으십시오. 심판 받으려고 여러분이 함께 모인 것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내가 갔을 때, 제자리로 바로잡겠습니다.

12.

  숨에 속한 일들에 관하여, 내 가족들이여, 여러분들이 모르길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방인이었을 때, 소리도 못내는 그림자들을 좇으며, 그것이 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던 (여러분들의) 과거를 말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숨결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예수는 저주 받으라"라고 할 수 없고, 또 "주 예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거룩한 숨결로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카리스마들의 다양함이 있지만, 같은 숨결입니다. 디아코노스들의 다양함이 있지만, 같은 주입니다. 일하는 것들의 다양함이 있지만 같은 하나님이며, 그분이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일하십니다. 각자에게 숨에 속한 것의 드러남이, 유익을 위해서 주어집니다. 즉 한 사람에게는 숨님을 통해 지혜의 로고스가 주어지며, 다른 이에게는 같은 숨결을 따라 지식(깨달음)의 로고스가 주어지며,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신실함이, 다른 이에게는 병고침의 카리스마들(사건)이 한 숨결 안에서, 다른 이에게는 '수들의 일함들(능력 행함)'이 다른 이에게는 예언이, 다른 이에게는 숨들의 분별이, 다른 이에게는 다른 민족의 말들이, 다른 이에게는 말 해석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 한 분, 곧 같은 숨님이시고, 그의 원하시는(결정하신)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즉 이런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모든 지체가 여럿이어도,
    한 몸이듯,

메시아 역시 그렇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한 숨결 안에 있는 한 몸 속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유대인이든 희랍인이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모두가 한 숨결로 흠뻑 젖도록 마신 바 되었습니다. 실로 몸에는 지체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만일 한 쪽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으로부터 있지 않아"라고 말한들, 몸으로부터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만일 한 쪽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으로부터 있지 않아"라고 말한들, 몸으로부터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몸 전체가 다 눈이라면, 어찌 들음이 (있겠습니까)? 몸 전체가 들음이면, 어찌 냄새 맡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지체들을 배치하셨는데, 그들 하나하나를 그 몸 안에, 그의 뜻하심 따라 (하셨습니다). 만일 모든 것들이 한 (종류)의 지체였다면, 어찌 몸이 (되겠습니까)? 이제, 지체는 여럿, 몸은 하나입니다.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들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몸에는 더 약해 보이는 지체가 훨씬 더 짊어진 것들이 많고, 몸에서 더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지체에게 우리는 더 큰 명예를 선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 불명예스러운 지체가 더 겉보기로는 좋아 뵙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몸을 구성하셨고, 못난 부분에 더 많은 명예로움을 주셨는데, 이는 몸 안에 찢김없이, 모든 지체들이 서로를 위해 같은 것을 갈망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뚜렷해지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메시아의 몸이고, 지체는 개인으로부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고린도 지역의) 에클레시아로 배치하셨는데, 먼저는 사도, 둘째로 예언자, 셋째로 가르치는 이, 다름은 '수들', 다음은 병 고침의 카리스마들, 도움들, 키잡이들, 그리고 여러 민족의 말들을 두셨습니다. 모두가 사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모두가 예언자는 아닙니다. 모두가 가르치는 이는 아닙니다. 모두가 '수'를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병 고침의 카리스마들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른 민족의 말들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방언을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더 큰 카리스마들을 추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훨씬 더 끝내주는 길을 보여주겠습니다.

13.

    만일 내가 사람의 말들, 심지어 천사들의 말을 해도,
    인(仁)을 갖지 않으면, 나는 소리 나는 구리나
    요란한 심벌즈일 뿐입니다.
    또 만일 내가 예언을 갖고,
    모든 뮈스테리아들과 모든 깨달음을 알고,
    또 만일 산을 옮길 신실함을 가졌다 해도,
    인을 갖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만일 내가 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어 먹이고,
    또 만일 자랑하고자 내 몸을 내주더라도,
    인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인은 호흡이 깁니다.
    인은 손내밀며, 시기를 모르며,
    인은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부풀리지 않고, 아름답게 처신하며,
    자신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성을 내거나 악한 것을 계산하지 않고,
    불의함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참과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에 신실하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기다립니다.

    인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은 없어질 것입니다.
    말들도 멈출 것이고,
    깨달음 역시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분으로부터 깨닫고,
    부분으로부터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함이 오면, 부분으로부터 온 것은 없어집니다.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말했고,
    어린아이처럼 이해했고,
    어린아이처럼 이치를 따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나는 어린아이의 것들을 그쳤습니다.

    즉 우리가
    아직은 거울을 통해 어른대는 것을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볼 것입니다.
    아직은 내가 부분으로부터 깨닫지만,
    그때에는 하나님 나를 아시듯 꿰뚫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실함, 바람, 인, 이 세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들 가운데 큰 것은, 인입니다.

14.

  인(仁)을 추구하십시오. 숨에 속한 것들을 열망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 위해 말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도 (이해하며) 들을 수 없는데, 그는 숨을 통해 뮈스테리아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언하는 이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곁에서 속삭여주며, 이야기 곁으로 초대합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집)짓고,  예언하는 사람이 에클레시아를 (집) 짓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러분이 모두 방언으로 말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모두 예언한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예언하는 이가 방언으로 말하는 이보다 더 큽니다, 만일 그가 에클레시아를 (집)짓기 위해 해석 없이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가족 여러분,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방언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간다면, 어찌 여러분을 이롭게 하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에게 내가 계시로, 혹은 깨달음으로, 혹은 예언으로, 혹은 가르침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호흡없는 것들이 소리 내는 것과 같은데, 피리나 하프가 만일 분명한 음을 내지 않으면, 어찌 그 부는 것과 치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즉 만일 나팔이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낸다면, 누가 전투를 위해 준비를 갖추겠습니까?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헤르메스를 통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숨은 기도하는 반면, 나의 '누스'는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엇입니까? 나는 숨으로도 기도하고 누스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숨으로도 노래하고 누스로도 노래하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숨으로 축복한다면,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이 어찌 당신의 기도에 '아멘'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대는 온전하게 감사드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집짓지는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여러분 모두보다 방언을 더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 안에서 나는 다섯 로고스들을 나의 누스로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방언으로 하는 만 개의 로고스보다.

  가족 여러분, 생각하는 데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오히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토라에 기록되기를,

  "외국어로, 낯선 자의 입술로 내가 그 씨알에게 말할 것이나,
  그들은 나에게 그토록 귀 기울이지 않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방언들은 신실한 이들이 아니라, 신실하지 않은 이들에게 표적으로 있습니다. 반면 예언은 신실하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 신실한 이들에게 (표적으로)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온 에클레시아가 거기로 가서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는데, 알지 못하는 자나 신실하지 않은 자가 들어왔다면, 그들은 여러분이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반면, 모두가 예언하는데 알지 못하는 자나 신실하지 않은 자가 들어온다면, 그들은 모두에게 책망 받고, 모두에게 판단 받아, 그들 가온 속 감추인 것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럼 어찌 해야겠습니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 각각 찬송, 가르침, 계시, 방언, 해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집짓기가 되게 하십시오. 누가 방언으로 말하면, 둘 혹은 많아야 셋이 돌아가며 말하고, 그들 중 하나는 해석해야 합니다. 만일 해석하는 이가 없으면 에클레시아 안에서는 잠잠하고, 자신과 하나님께만 말해야 합니다.

  예언에 관해서는,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분별하십시오. 만일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내리거든, 먼저 말한 사람은 잠잠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씩 모두가 예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가르침을 얻고, 모두가 힘입기 위해서 (말입니다). 또한 예언의 영들은 예언하는 사람들 아래 놓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거룩한 에클레시아에서처럼 (말입니다).

[여자들은 에클레시아 안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여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토라에 명시되어 있듯이, 그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 여자들이 더 이해하고 싶거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야 합니다. 여자가 에클레시아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나왔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에게만 임했습니까?

  누구든지 자신이 예언자나 숨에 속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내용이 주의 명령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무시하면 무시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망하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질서대로 되게 하십시오.

15.

  가족 여러분, 내가 전했던 복음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았고,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것을 통해 구원받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메시지를 단단히 붙들고, 헛되게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가 처음에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비뚤어짐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이는 무덤에 매장되셨고, 성경대로 셋째 날에 부활하셨고,
  게바에게 나타나셨고, 그 뒤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뒤에 그이는 단번에 오백명이 넘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나타났는데,
  그들 중 일부는 잠들었지만 대다수는 아직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 뒤에 그이는 야고보에게 나타나셨고,
  그 뒤에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고,
  또 마지막으로 모태에서 조산한 사람인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를 핍박했기 때문에, 사실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렇게 전파하였고, 여러분도 이렇게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만일 메시아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졌기 때문에 선언(케뤽쏘)되셨다면, 어찌 여러분 안에서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이 없다 말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이 없다면, 메시아도 일어나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메시아께서 일어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케리그마도 비었고, 우리의 신실함도 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언자들로 알려집니다, 그 하나님이 메시아를 일으키셨다고 증언했기 때문인데, 만일 죽은 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메시아는 죽은 이들 가운데 일어난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메시아가 일어나지 않으셨으면, 여러분의 신실함은 목적 없고, 여러분의 비뚤어짐도 여전합니다. 게다가 메시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당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삶에서만 메시아 안에서 소망하는 이들이 될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메시아는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로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음이 왔으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부활이 왔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고, 메시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메시아요, 다음에는 그이가 나타나실 때 메시아께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이가 모든 다스림과, 모든 권세와 힘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빠 하나님께 바칠 때입니다. 그이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두실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당할 원수는 죽음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메시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나며, 그들은 대체 어떤 류의 몸으로 온단 말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 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뚜렷함과 땅에 속한 몸들의 뚜렷함이 저마다 다릅니다. 해의 뚜렷함이 다르고, 달의 뚜렷함이 다르고, 별들의 뚜렷함이 다릅니다. 별마다 뚜렷함이 다릅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부끄러운 것으로 심는데, 뚜렷한 것으로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심는데, 숨에 속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본성에 속한 몸이 있으면, 숨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본성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숨결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숨에 속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본성적인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숨에 속한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가족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산으로 받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뮈스테리온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찰나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이김을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비뚤어짐이요, 비뚤어짐의 권세는 토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곧게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를 위한 창조적 노동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일함'이 주로 인해 헛되지 않습니다.

16.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을 위한 모금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도 갈라티아의 에클레시아들에게 내가 바로잡은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안식 후 첫 날, 여러분 각각은 모두 여분으로 얻은 것을 따로 모아두십시오. 내가 갔을 때 모금들을 그때서야 깨닫기 않도록 말입니다. 내가 여러분 곁에 있을 때, 누구든 여러분이 인정한 사람들을, 여러분의 거저 내놓은 것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공식 서한을 쓸 것입니다.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다면,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지날 때면 언제든 여러분에게 가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곁에 잠시 머물거나 혹은 겨울을 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내가 가려는 어디든 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을 잠깐 보길 원치 않기에, 여러분과 오랜 시간 머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허락 하신다면 말입니다. 나는 오순절까지 에페소스에 머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크고 활기찬 문이 내게 열렸기 때문인데, 반대하는 이들 또한 많습니다.

  디모데가 가거든, 그가 여러분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도록 보살펴주십시오. 그도 나처럼 주의 일을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를 없이 여겨선 안됩니다. 그가 내게 올 수 있도록 그를 평화 안에서 보내주십시오. 왜냐하면 여기 가족들과 함께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 아볼로에 대해서 입니다. 나는 그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여러분에게 가도록 곁에서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지금 그가 가는 것이 뜻이 아니었습니다. 적절한 때가 되면 갈 것입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신실함으로 곧게 서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강해지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것이 인(仁)으로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여러분 곁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스테파나스의 집안을 압니다. 그들은 아카이아 지역의 첫 열매였고, 그들은 거룩한 이들을 디아코노스 하기 위해 자기 자신들을 바로 잡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이들과 그들과 함께 일하며 고생하는 모든 이들, 아래 놓여야 합니다. 나는 스테파나스와 포르투나토스와 아카이코스의 '재림'에 기뻤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가난을 넘치게 채워주었습니다. 그들은 내 숨과 여러분의 숨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철저히 알아주십시오.

  아시아의 에클레시아들이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퀼라스와 브리스킬라가, 그 집에서 모이는 에클레시아와 함께 주 안에서 특별히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든 가족이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입맞춤으로 서로 환영하십시오.

  나 바울은 친필로 인사말을 덧붙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우호관계로 여기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마란 아타!

  주 예수의 거저주심이 여러분과 함께.
  나의 인(仁)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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