μέτοχος 여기는 히브리서 1:1~5와 마찬가지로 12586일 (만 34년5개월13일) 이다. 내가 쓴 글에 내가 주를 달아서, 달라진 생각을 드러내고 이 글에 '오늘'의 생명력을 불어넣겠다.
1. 공허의 유산
아르타니스 : 셀렌더스! 내 말을 들어라!
셀렌더스! 기사단이여! 아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신경삭을 끊어라!
아몬 : 안돼! 우리는 칼라와 하나다.
셀렌더스 : 칼라가 없으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립니까?
아르타니스 : 자유!
아몬 : 거짓말!
아르타니스 : 믿어라..
스타크래프트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구성되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전한다.(예전에 나는 '군단의 심장'이 발매되었을 때, 저 군단이 거라사 돼지떼 이야기에 나오는 '레기온'이라 말한 바 있다. 여기) 위의 대화가 이해가 잘 안될테니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프로토스는 젤나가라 불리는 신의 최초 창조물이다(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의미의 희랍어). 그리고 프로토스는 아이어라는 고향별을 잃었고, 그 별을 되찾는 것이 프로토스들의 숙원. 프로토스는 '칼라'라는 일종의 정신적 연대를 얻었는데, 뒷통수에 신경삭이라는 것이 있어서, 서로 생각과 감정을 일치시켜준다. 칼라로 연대된 것에 한껏 고무된 그들은 이제 드디어 고향별 아이어를 되찾기 위해 진군한다.
스타크래프트 제작진은 프로토스의 모티프를 이스라엘에서 가져왔음이 분명하다. 가나안 땅을 잃어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그들. 그리고 그 땅을 되찾기 위해 토라라는 정신적 연대를 강화시켰고, 그리고 제국들에 맞선 그들의 이야기.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출 4:22) 그러나 그들의 가나안 수복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한다. A.D.70년 그들의 성전은 무너지고 맛사다에서의 최후의 항전은 한 민족이 지도 위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보여주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칼라로 연대되어 아이어를 수복하려는 프로토스에게 예언자가 나타난다. 아르타니스. 그는 칼라가 아몬이라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오염되었으니, 신경삭을 끊고, 아몬에 의해 오염된 연대를 끊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로토스들은 믿지 못하고 분열한다.
"칼라가 없으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립니까?"
"자유! 믿어라.."
저 말 속에서 나를 본다. 현시대(칼라)를 끊고 오는시대를 살자는 외침. 현시대에서 완전히 돌아서기에는 잃을 것이 맞다는 푸념들. 허나 남으로부터 자유가 아닌, '나로부터의 자유'는 그렇게만 오는 것을. '믿어라'. 이것을 믿지 않는한, 우리는 오염된 연대를 통해 자멸의 길로 나아가는 프로토스와 같다. 왜 이 작품의 이름이 '공허의 유산'인줄 알겠지. 공허, 허둠, 혼돈. 이 단어들은 창세기 1:2에 나오는 단어들이자, 아몬의 속성이기도 하다. 끊지 않으면, 공허해질 것이다.
저 영상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얄궃게도 히브리서 본문의 첫 단어는, '프로토토코스'였다.
2. 프로토토코스
히브리서 1:6~14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이에게 경배하라."
'처음난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 단어 속에 프로토스가 들어있다. 프로토스는 다행스럽게도 예언자 한 명의 말을 듣고 칼라와의 연대를 끊었으나,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토라 해석이라는 오염된 연대를 끊어버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맏아들 이스라엘이 실패했으니, 창세기 3장의 타락을 해결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휴지조각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프로토토코스가 이 땅에 왔다. 그리고 히브리서를 쓴 저자는 그 프로토토코스를 천사들과 대비하기 시작한다. 당시 토라는 천사들이 건내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대인들의 토라 해석'이라는 오염된 연대를 끊으려면 그 토라의 권위를 보증해주는 천사들의 권위보다 더 상위 권위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권위 아래서 토라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맏아들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독생자라고 번역된 몇몇 단어들이 있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모노게네'. '홀로 난 이'라 번역할 수 있을까? 그런데 '프로토토코스'든, '모노게네'든 이 단어들을 '외아들'로 번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수는 독보적이지만, 그럼에도 '외'가 아니라 '맏'이다. '첫'이다. '외'라는 개념을 밀어붙이고, 그 뒤에 양자됨을 말하는 것이 바울의 방식이나,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함'을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양자가 아니지. 양자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 가족이 되지만, 이 프로토토코스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연대는 '거듭남'이 아니던가! 그러니 예수는 맏아들이요, 우리는 나중 아들이다. '양자'라는 말로 다 표현못할 하나님의 진짜 아들들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첫'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그 무엇도 앞설 수 없는(심지어 천사라 할지라도), '첫' 아들이 이 땅에 돌입했다. 이때 천사들의 메시지와 해석은 메시아 아래 놓인다. 메시아의 의미작용에 반박하거나 뒤집을만한 의미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의 모든 해석은, 메시아의 해석 안으로 포섭될 뿐이다. 메신저는 천사에서 메시아로 달라지며 비연속성을 갖지만, 메시지 자체는 연속성을 갖는다. 예수의 해석은 이전의 해석을 새롭게 한다.
하여간 맏아들 예수 앞에 모든 천사들은 무릎을 꿇는다. 천사가 건내준 토라의 권위는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인용된 본문은 시편 97:7.
시편 97:7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두 눈을 의심해야 하지 않나? 히브리서에서는 '천사(앙겔로스)'라고 되어 있는 내용이, 시편 본문으로 가보니 '너희 신들(엘로힘)아'로 되어 있다. 그럼 '천사 = 신들'인가? 그래서 셉투아진트를 확인해보니(거기서는 시편 96편) προσκυνήσατε αὐτῷ, πάντες οἱ ἄγγελοι αὐτοῦ. 천사들이다. 왜 구약성경에서는 엘로힘이라고 되어 있는데(그래서 KJV에서는 gods로 번역했다),이 단어가 왜 천사가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천사와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천사는 상당히 다른 것은 아닐까? 본문은 맏아들에 대한 내용이 주인데, 오히려 무릎꿇어야 할 천사들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다.
천사가 '신'인 것이 유대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모든 의미들의 원형이며, 사람이 본성상 끌리는 의미작용들이다. 메신져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힘을 얻을 수 있다.
3. 천사는 무어냐?
"그이의 천사들을 숨결들로,
그리고 그이의 일꾼들을 불꽃으로 만드신 이."
8)다른 한편으로 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이여,
당신의 보좌는 세대에서 세대에 이릅니다.
당신 다스림의 홀은 잘 세워진 홀입니다.
9)당신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쁘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당신과 나누는 자들 곁에서."
그리고 이어서 시편 104:4가 인용된다.
시편 104:4, LXX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삼으시고,
그의 일꾼들을 번갯불로 삼으시는 분.
4 ὁ ποιῶν τοὺς ἀγγέλους αὐτοῦ πνεύματα
καὶ τοὺς λειτουργοὺς αὐτοῦ πυρὸς φλόγα.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이의"라는 소유격이다. 그이가 천사들에게 속하지 않고, 천사들은 그이에게 속한다. 같은 내용을 병행한다는 원칙 하에, "그이의 천사들"은 "그이의 일꾼"들이며, "숨결들"은 "불꽃"과 대응한다.
천사가 언급되는 LXX 본문들을 좀 더 살펴보자. 신명기 33:2는 난해한 단어인 '에쉬/다트(אֵשְׁ/דָּת)'가 등장하는데, 이 문장을 LXX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그리고 (모세가) 말하길,
"주께서 시나이로부터 세이르로부터 "파란" 산들로부터 우리에게 오셨다,
셀 수 없는/일만의 카데스와 함께,
그이의 오른손으로부터 그이와 함께 하는 천사들이."
이 구절을 다른 역본들이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보면, 번역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신명기 33:2, 새번역
주님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해처럼 떠오르시고, 바란 산에서부터 당신의 백성을 비추신다. 수많은 천사들이 그를 옹위하고, 오른손에는 활활 타는 불을 들고 계신다.
신명기 33:2, 개역한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신명기 33:2, 공동번역
"야훼께서 시나이에서 오신다. 동트듯 세일에서 솟아올라, 바란 산 마루에서 비추신다. 오른손에 번개를 잡으시고 카데스 므리바에서 나오신다
모세가 토라를 수여받는 이 장면에서, LXX는 "천사"라고 번역한 것을, 다른 번역들은 "불"과 "번개"와 연관짓는다. 게다가 벌게이트는 '다트'를 직접적으로 lex 즉, 법이라고 번역한다. 즉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던 것은 벌게이트와 개역한글의 관점에서는 "토라"이고, LXX의 관점에서는 천사들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천사'라고 지칭되기도 하고 '법'이라 이해되기도 하며, 또 이는 "불, 번개"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하나의 의미군 안에서 작동했다는 사실을 염두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히브리서 1:7에서도 기자가 언급하는 천사는 '토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명기 32:8을 보면,
신명기 32:8, LXX. 개인번역
그때 가장 높으신 분이 아담의 아들들로서 민족들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천사들의 수에 따라 민족들의 경계로.
천사를 "메시지가 통용되는 권역"으로 읽는 것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바벨에서 언어를 섞으시고, 그 섞인 언어는 메시지가 통용되는 분절된 구역들을 낳게 되었다. 각 천사는 그 분절된 구역 안에서 의미작용으로서 '활동'한다. 그 활동이 곧 '법'이다. 민족들은 각기 자신들의 법을 가지고, 독립된 의미작용의 권역들을 창출한다. 곧 '경계'가 지어지는 것이다.
다니엘 10:13, 새번역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천사장이 스무하루 동안 내 앞을 막았다. 내가 페르시아에 홀로 남아 있었으므로, 천사장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나를 도와주었다.
이 구절을 페르시아 안에서만 통용되는 의미들 때문에,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세계관을 넘어선 의미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그래서 스무하루 동안의 고민이 있었다고 읽는 것은 어떠한가? 이어지는 14절은 다니엘이 스무하루만에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페르시아 안에서의 의미작용을 넘어서기 위한 과정으로서 스무하루가 아니었을까?
월터 윙크의 <사탄의 가면을 벗겨라Unmasking the powers>를 읽고, 천사'라는 말에 대한 나름 정리를 해야했다.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도, 새롭게 다가왔다. 영적 존재를 '집단 내면성'이라 말하는 그의 주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히브리서 본문에 적용되니 다시금 새로운 의미로 피어난다. 아래는 히브리서에서 인용된 또다른 시편 본문.
시편 45:6,7
오하나님,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토록 견고할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는 정의의 통치입니다.
임금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임금님의 벗들을 제치시고 왕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본문을 히브리서 저자가 어찌 읽는 지에 주목해보라. 글자를 바꿔 놓았다고해서 본문의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왜곡'이라 볼 수 없고, 오히려 히브리서 저자가 구약을 어찌 읽었는지의 '관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라며 '당신(수)'이라 썼던 내용들이 위의 볼드체로 표시된 부분들이다. 즉 '하나님 = 주님 = 왕'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말들은 '예수'를 가리키는 말들이 된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손 끝에서 이러한 생각이 묻어난다. 즉 '천사들 < 하나님 = 주님 = 왕'. 그리고 여기서 천사들은 날개 달린 시종들이 아니라, 권세들에 대한 표현이다. 즉 소크라테스가 '다이몬'이라 말했던. (신약성경에서는 '귀신'으로 번역됨), 그리스 신화가 이름을 붙여 신이라 숭배했던. 즉 천사는 인간보다 강력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익숙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월터 윙크는 '집단 무의식'을 다루는 칼 융의 심리학을 사용하여, 그러한 힘이 실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의 '정신'이라 부른 것이 있고, 그것은 분명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예컨데 '나치'라 이름붙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그것이 무엇이기에 독일 국민들을 홀렸으며,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는가? 아이히만의 경우에서 보듯,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무언가 거대한 '세력'을 느끼지 않는가?
월터 윙크는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교회의 천사들"이란 표현에 주목한다. 흔히 이 표현은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곤 했으나, 그는 그 '천사'라는 표현이 공동체의 영성이라 표현한다. 이 영성은 개인보다 크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사람의 내면에 투영됨으로서 밝혀지고, 그리고 사람을 사용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 '공동체의 영성'이 타락해서 왜곡된 인간성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그 경우 사탄과 귀신이라는 표현을 써서 표현한다. 그리고 바울만 하더라도 이러한 '영적 세력'에 대한 전제가 있었고,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표현도, 이러한 영적 권세들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 중립적 다이몬에 대한 해석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왜곡되면서 사탄적이라고 몰아붙이거나,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없다고 치부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던 말던 오늘날도 이 다이몬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무수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이러한 영적 권세들에 궁극성을 부여하며 살고 있다. '국가마다 수호 천사가 있다' 이 말이 어찌 들리는가? 뭔가 신빙성이 확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이 말은 국가의 이익을 위하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고, 그 집단 무의식은 인간 외부에 어떠한 영적 세력이 있음을 보여줌을 포착하는 단어다. 예컨데 이스라엘은 이 유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섬기는 천사를 숭배한 것이 된다. 이 천사에 궁극성을 부여하고, 이스라엘의 잘 됨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뿐인가? 전체가 아닌 개체의 이익을 위한 추구는 모두 그릇된 하나님의 추구요, 천사 숭배에 빠진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고 천사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주의의 단점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국가주의에는 장점도 있다. "다양한 인종과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고, 자신과 가족을 넘어선 더 큰 정체의 일원에 속해 있다는 집단적 정체 의식을 제공한다." 문제는 그 국가주의가 말그대로 국가 자체를 섬기는데 그치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우상숭배가 되는데, (이 말은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 때문에 다이몬을 중립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 사라지고, 모든 영적
세력들이 '사탄과 귀신'으로 읽히는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우상의 존재는, 그 우상에 반응하는 인간 심리를 반영하므로, 그 심리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잘 돌봐줘야 한다. 망각하거나 푸대접하다간 반드시 인격의 왜곡이라는 부매랑으로 돌아온다. 1
그렇다면 메시아 예수는 누구인가? 그를 따르는 것은 그릇된 천사숭배(개체주의)에 빠지지 않고, 전체를 섬기는 것이다. 영적 권세들을 넘어,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이를 바라봄이다. 그를 바라볼 때 영적 권세들(archetypes이라는 단어를 쓴다. 세상엔 무수한 '아르케'들이 있는 것이다)은 그의 다스림 아래서 균형 잡힌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영적 권세가(이 말을 '분노', '교만'등의 심리적 표현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사람의 인격을 왜곡시킨다면, 그를 섬기는 것은 모든 영적 권세들을 제자리에 두어, 그 영적 권세들이 표현되는 사람의 인격을 조화롭게 한다.
메토코스(μέτοχος)는 "나누는 자"이다. 개역성경은 9절의 메토코스를 "동류"라고 번역했는데, 이때의 동류는 천사들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와 승리를 공유하고 함께 전리품을 나누는 동료로서 메시아의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4. 새창조의 주님
그리고,
10)"주님이여,
당신은 태초부터 그 땅을 토대로 놓고,
당신 손의 작품(일)들이 바로 하늘들입니다.
11)그것들이 파괴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외투처럼 낡아갈 것이고,
12)그리고 당신은 휘장처럼 그것들을 말아버리실 것이며,
그리고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시며,
당신의 해(年)들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13)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그 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는가?
"앉으라! 나의 오른편으로부터.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받침대로 놓을 때까지."
14)모든 일하는 숨결들은 섬김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
그 숨결들은 온전함을 금세 상속받는 이들을 통하여/때문에 보냄받는다.
하늘과 땅. 모든 다양한 아르케가 수놓인 차원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원들마저도 궁극적이지 않다. 고대세계에서는 특정 원소나 원리를 궁극적 자리에 놓은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은 존재하기를 그치지만, 원자는 영원하다. 스토아는 자신들이 발견한 삶의 원리를 궁극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토아에서는 만유의 조화로 빠져드는 죽음에 대해서 찬양했고, 자살을 권장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궁극적이라 여겼을 때 생기는 병폐는, 사람 아닌 것이 더 귀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무엇을 궁극적이라 여기는지 생각해보라. 거기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늘과 땅은 모든 피조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적 차원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그 하늘과 땅 마저도 궁극적이지 않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들 마저도 파괴된다고 말한다. 베드로도 비슷한 말을 하는데(벧후 3:10),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가 '스토이케이온'으로 '만물의 기본 요소'라 풀 수 있는 단어다. ('스토아'라는 말은 여기서 왔다.) 만물의 근원, 근본, 원리, 기초를 안다는 말이지. 그런데 그것들을 아는데서 그치는 것은 궁극에 도달할 것이 아니다. 그것들 마저도 풀어진다. 당신은 어떠한 삶의 원리를 믿고 따르고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께 닿지 않으면, 그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말이다.
모든 궁극적이지 않은 것들이 풀어지고, 그러나 허무로 끝나지 않고 새롭게 변화되어,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메시아 예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궁극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른다. 그저 궁극 그 자체.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 그 자체.
그러니 그 분을 따를 때, 모든 아르케들은 그 분을 섬기기 위해 존재함을 알게 되리라. 그 다음 나오는 단어가 '구원'이다. 온전한 조화로움. 모든 영적 세력들이 이 인간의 '온전한 조화로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구원받았다 고백하는 나는 우주보다 크신 무한하신 이에게 감사한다. 그에게 감사할 때, 나는 어떠한 순간에도 안전하다. 온전하다.
요즘들어 그렇게 기도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여, 모든 영적 세력들이 내 안에서 조화롭게 드러나게 하소서. 온전함을 이루게 하소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왜 10절을 읽으면서도 메시아적 시간을 감지하지 못했는가?
메시아는 옛창조의 방법이자 질서였다(히브리서 1:3). 그런데 아담의 타락 이후, 그 옛창조의 파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아담이 죽게 된 사건은 곧 모든 피조물의 죽음, 심지어 그 피조물의 세계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올람 하제의 시작이다. 창조세계는 죽음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들(옛창조의 하늘과 땅)이 파괴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계십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옛창조는 "낡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옛창조는 성막의 휘장에 비견된다. 휘장이 말려버리면 그 안의 지성소가 드러나듯이, 옛 창조세계는 말려버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감추고 있던 창조세계의 본질을 드러낼 것이다("변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절을 기자는 "당신의 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오는시대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시간은 천사들로부터 오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오는시대는, 토라를 가져다준 천사들이 가져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매개인 천사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대권을 이양받지 않았다. 인자의 승천만이 새로운 시간의 시간표이고, 승천은 낡아가고 말려가는 옛 창조 세계 위에서 창조세계의 새로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신적 선언인 것이다. 기자는 놓치지 않고, 다시 승천을 나타내는 본문을 인용한다.
따라서 14절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제 천사의 지위가 전복된다. "다스리는 신들"로 여겨졌던 영적 실체들은 구원을 이제 막 상속받는 상속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14절에서 "구원을 이제 막 상속받을"은 역사의 종언에 이뤄질 구원의 성취를 말하지 않는다. "이제 막"이란 말은, 당장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을 말한다. 누군가가 메시아 예수의 신실함으로 에클레시아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의 옛주인이었던 보이지 않는 힘들은 그를 섬기는 위치에 놓이며, 천사의 의미작용들은 메시아를 결론으로 두도록 재해석된다.
히브리서 1:6~14
6)또한 그 맏아들을 거주지 안으로 이끄셨을 때 그가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이에게 경배하라."
7)그리고 한편으로 천사들을 향해서는 그가 말씀하시길,
"그의 천사들을 숨결들로,
그리고 그의 일꾼들을 불꽃으로 만드신 이."
8)다른 한편으로 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이여,
당신의 보좌는 세대에서 세대에 이릅니다.
당신 다스림의 홀은 잘 세워진 홀입니다.
9)당신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쁘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당신과 나누는 자들 곁에서."
그리고,
10)"주님이여,
당신은 태초부터 그 땅을 토대로 놓고,
당신 손의 작품(일)들이 바로 하늘들입니다.
11)그것들이 파괴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외투처럼 낡아갈 것이고,
12)그리고 당신은 휘장처럼 그것들을 말아버리실 것이며,
그리고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시며,
당신의 해(年)들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13)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그 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는가?
"앉으라! 나의 오른편으로부터.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받침대로 놓을 때까지."
14)모든 일하는 숨결들은 섬김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
그 숨결들은 온전함을 금세 상속받는 것들을 통하여/때문에 보냄받는다.
- 월터 윙크, <사탄의 가면을 벗겨라> p.20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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