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례요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는 광야에 서서, 요단강을 건너 자신에게 오는 이들에게 출애굽의 왕이 오실 것이라 선언하고 세례를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는 그 오시는 왕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죄를 씻는 입니다. 출애굽을 고대하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오시는 왕을 맞이하고자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된 요단강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그 출애굽의 왕을 만나고자 합니다. 히브리식으로 말하면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왕은 갈릴리에 계셨는데, 요단강을 따라서 내려와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례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3~17
그 때,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이를 말리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도리어 예수님께서 제게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 그렇게 하자.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제서야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밖으로 나오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렇게', '거기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왕이 오실 것이라 예고하고, 그 왕이 가짜 왕을 파멸시킬
것이라 말하며, 그렇게 포로 생활이 끝장나고, 이제 마침내 요단을 건너 아름다운 땅으로 여행하게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왕이
오시면 말입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은 영화 예고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오시기 전에 먼저 와서 그 왕을 소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당신들이 가짜 왕들이니, 세례를 받고 마음을 씻어, 그 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왕은 어쩌면 자신들의 생각과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무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세례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새로운 출애굽의 소식에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심판의 화살이 자신을
향한 것이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출애굽의 왕을 따르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서 다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세례를 주던 세례요한은 무척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쳐있던 세례요한의 정신이 버쩍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오는 행렬 중에, 세례요한의 눈에 들어오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샌들을 벗고 물 안으로 들어오셔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제게 오시다니요!"
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세례요한은 출애굽의 왕이 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터벅터벅 걸어서 오시더니, 오히려 그 왕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세례는 왕을 맞이 하기 위해 죄를 씻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세례요한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왕응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그 세례를 그 왕이 받다니요? 세례요한이 부른 것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가운데서 '예수'가 나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이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에게 의가 흘러넘칠 것이다."
세례요한은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붙잡고서 물 아래로 뉘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을 물 밖으로 일으키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이 말을 들은 세례요한은 깜짝 놀랐습니다. 방금 전까지 왜 예수님이 나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했는지 의아했던 그는,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들린 저 소리를 듣자,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2. 출애굽 이야기 :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이다
세례 요한이 떠올렸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여기 한 사람이 자기 부인과 아이들을 나귀에 태우고 터벅터벅 걷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방금 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임무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떨기 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
남자에게 지금 파라오의 종노릇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 앞에 가서 당당히 이것을 말하고,
민족의 지도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걱정된다고, 자기는 말도 못한다고, 한사코 거절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던 장인 어른에게, '저 이제 이집트에 좀 다녀올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차마 '저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제 놓아줘라 라고 말해야 합니다' 라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에 있는 내 형제들이 잘 있나만
보고 온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장인은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럼 잘 다녀오시게'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장인에게 풀죽은
인사를 꾸벅 하고선, 가족들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터벅터벅 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깨가 축 쳐진 그는 하나님이 방금 전
뱀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여주신 자신의 지팡이를 꼭 쥐었습니다. 그때 다시금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21,22
"
내가 너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는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파라로의 앞에서 그 모든 이적을 나타내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내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첫째 아들이다!...
세례요한이 떠올렸던 것은 바로 이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들로 선언하신 감격스러운 사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어 마음에 새겼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서도, 그리고 가나안 땅을 잃고 제국의 지배 아래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부르신 그 사건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물 밖으로 일으켜진 예수를 향해, 하늘에서 들린 소리는 꼭 이와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3. 왕이 오셨다 : 실패를 뒤집는 진정한 이스라엘로
예수님은 이스라엘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을 불렀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부른 것처럼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일까요? 왜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자처하실까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실패의 이름입니다. 광야에서 실패했지, 가나안 땅 들어가서도 실패했지, 포로기 시절에도 실패했지, 예수님 시절에는 아예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 준비에 열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땅 가지고 싸우느라 하나님도 뒷 전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 실패란 다름 아닌, 타락을 해결하는 일에 대한 실패입니다.
우리는 1층 토라 이야기에서 '3. 해결책 이스라엘'을 배우고 왔습니다. 인류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타락을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오히려 일을 망쳐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난 집에 소방수를 불렀는데, 그 소방수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스라엘을 불렀더니, 이스라엘은 오히려 망가진 인간이 되어 세계의 암덩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판국에 타락을 해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 언약은 과연 이뤄지는 것입니까? 타락은 해결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도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로서 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로 오신 예수께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일을 뒤집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은 이 실패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 삼으십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이름의 본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이기시는지, 그 분은 어떤 이스라엘이신지는 다음 주에 함께 확인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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