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에 첫 발을 딛으며:)


마가복음 1:1~5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 복음의 시작.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사자를 보낸다. 그가  길을 준비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펴라.’”

  침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비뚤어짐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침례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0. 시작


  우리는 이제 드디어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마치 이 2층은 점점 쌓아올리는 화음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근음이었던 토라 이야기를 배웠고, 그 위에 변주를 만들던 포로기 이야기의 화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위에 올려진 복음서의 멜로디를 들을 차례입니다. 복음서는 네 종류가 있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짧은 마가복음을 택했습니다. 마가가 목격한 예수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그렇다고 마가복음 전체 내용을 다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토대로 예수의 이야기의 골자가 이런 것이라는 스케치만 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그 첫 서두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 복음의 시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번역에는 '시작이라', '시작되었습니다'라 되어 있지만, 본래는 그저 '시작'이라 말하고서 끝입니다. 이 '시작'이라는 말은, 우리는 '아, 시작하나보구나' 하기 쉽지만, 구약성경의 울림 속에서  여호수아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이야기인데요. 토라 이야기가 신명기에서 끝나니까, 여호수아는 토라 이야기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여호수아 3장에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요단강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여호와를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오.

  내일이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오!" (여호수아 3:5)

  그러고나서 이스라엘은 법궤를 든 제사장들을 선두로 하여 요단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3:7
  "오늘부터 시작이다.

  내가 너를 온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겠다."

  바로 그러한 시작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온 이스라엘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희랍식으로 읽으면 예수가 됩니다. 즉 마가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이 그 예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게 되는 시작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수아와 함께 마침내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정복 전쟁의 시작, 하나님께서 세력을 차지하실 것입니다.

1. 왕의 오심과 심판

  마가는 이러한 '시작'에 이어, 말라기 3장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바와 같이 말라기는 제2성전기에 쓰여진 예언서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말라기 3:1~5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어 내 앞길을 닦게 하겠다.
  너희가 찾던 여호와가 갑자기 여호와의 성전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바라는 언약의 사자가 이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오시는 날에는 아무도 견디지 못하며
  그가 나타나실 때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는 연단하는 불과 같은 것이며
  깨끗하게 하는 비누와 같을 것이다.
  ...
  그때에 내가 너희를 심판하겠다.

  여러분이 포로기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며, 이 말라기의 외침을 들어봅시다. 지금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포로인 상태입니다. 언약 백성인데 땅은 빼앗기고, 성전은 허름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토라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하나님의 예언자 말라기로부터 들리는 저 이야기가 어찌 들리겠습니까? 하나님이 오신답니다. 그가 오시는 날에는 아무도 견딜 수 없답니다. 그가 심판하러 오셔서 악에게는 불태우고, 비누로 깨끗하게 닦으시겠답니다. 분명 포로기의 이스라엘에게 저 말라기의 음성은 출애굽의 메시지로 들렸을 것입니다. 왕이 오셔서 악한 압제자를 심판하신다는 바로 그 내용 말입니다.

  우리야 마가복음에서 말라기 이야기하는 것을 알고서 구약성경을 부리나케 펴봤지만, 토라를 비롯해서 예언서를 두루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첫 구절만 읊어줘도 뒤에 내용을 줄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즉 마가가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이렇게만 말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 말라기 3장이구나. 하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구나. 그 하나님이 심판하시는구나. 이제 곧 출애굽이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 심판의 화살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기를 거치면서 줄곧 심판받을 악한 압제자를 이방 제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의 예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에 내가 너희를 심판하겠다."


  심판의 대상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말라기 3장은 이스라엘을 뜨끔하게 하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통째로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왕이 오십니다. 그리고 그 출애굽의 왕은 이제 파라오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파라오의 가면을 벗겨보니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반전이 있을 수 있습니까?

2. 왕의 오심과 포로해방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의 첫머리에는 말라기 3장과 함께 이사야 40장이 인용됩니다. 이사야는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직전 사람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포로기의 이스라엘이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를 빼앗기려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사야 40:1~5
  너희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위로하여라, 내 백성을 위로하여라. 예루살렘 백성에게 친절하게 말하여라.

  그들의 종살이가 끝났고, 그들의 죄값으로
  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여호와의 심판을 받았다고 일러 주어라."
  어떤 사람이 외친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여라.
  메마른 땅에서 우리 하나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가 높아지고, 모든 산이 낮아진다.
  거친 땅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땅이 평야가 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뚜렷하게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그것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 몸소 말씀하셨다."

  앞에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던 예언자의 울림이, 이번에는 이미 심판이 이뤄졌고, 포로생활이 끝났으니 위로를 받으라는 외침이 되었습니다. 무엇가 충격적인 전환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말라기와 이사야, 이 두 가지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만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길 당시, 이사야의 이 메시지는 아주 기이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지금 포로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포로 생활이 끝났다는 메시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 들렸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달리 이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제국에 의해 짓밟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더 깊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간은 제국에 종노릇하기 전부터 비뚤어진 인간성에 종살이를 하고 있었고, 이사야의 포로 해방은 바로 '그것'에 대한 출애굽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그것 말입니다.

  마가복음은 이 두 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하나는 왕의 오심과 심판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왕의 오심과 포로 생활 종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과 자유는 언뜻보면 서로 완전히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출애굽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심판이 있어야 자유가 있고, 자유는 심판을 통해서 생겨났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심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마가복음 서두에 다 밝히진 않지만 우리가 이 마가복음 첫장을 읽으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이것이 출애굽의 메시지라는 사실입니다. 왕이 오시고, 악한 압제자가 심판을 받으며, 그 심판이 이뤄질 때 마침내 포로들이 자유를 얻는 이 이야기는, 분명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1층과 썩은 계단을 밟고 이 자리에 온 우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마가복음의 첫장을 읽던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3. 세례요한 : 복음서의 입구

  그럼 우리는 세례요한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성경의 예언을 따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복음서의 입구입니다. 왕을 소개하는 그 없이 예수는 등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역사의 전달자, 구약의 맥락들을 끌어와서 예수에게로 연결시키는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소개하는 그 왕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애굽의 왕이십니다. 그 왕은 이집트에서 괴로워하는 아브라함 후손들의 절규를 들으셨던 것과 같이 이 곳 세례요한이 있는 이스라엘로 오실 것입니다. 오셔서 악한 압자제를 심판하시고, 언약백성을 그 악한 압자제의 손아귀로부터 건져내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왕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말라기에서 예언했던, 이사야에서 예언했던 바로 그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아직 그 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이 먼저 나타나 그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합니다. 세례요한, 그는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이 땅에 진정한 출애굽을 이룰 그 왕을 예고합니다. 그저 말로만 떠들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연극배우처럼, 그의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 안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함께 울리고 있습니다. 일단 그가 서 있는 무대는 광야입니다. 광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억 그 자체입니다. 그 시절에는 땅은 없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였습니다.(땅도 빼앗기고, 하나님도 잃어버린 상황과 반대로 말입니다.)

  또한 엘리야에 대한 추억도 있지요. 엘리야가 승천한 바로 그 자리가,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그 곳입니다. 성경에는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이 있었고(말라기 4:5,6), 세례요한은 보란듯이 자신이 바로 그 보내신다는 엘리야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서 있는 곳은 요단 건너 베다니라는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세례요한을 만나러 오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을 건너던 유대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은 분명 요단을 건너던 자신들의 조상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로 여호수아 3장 말입니다. 요단을 건너, 이제 약속의 땅을 마침내 차지하기 위한 시작. 바로 그것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악한 압제자가 로마가 아니라면, 약속의 땅도 그저 가나안이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얻는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정복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진정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이 위대한 정복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출애굽의 왕을 따라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는 이 위대한 여정에 참여하는 데에는 단 하나의 조건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러니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왕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왕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4. 시작. 새로운 창조

  다시 '시작'이라는 말로 돌아갑니다. 이 말은 여호수아와도 관련이 있지만, 사실 그보다도 먼저 창세기 1장 1절과 상관이 있습니다. 이 '시작'이라는 말이 창세기 1:1의 '태초'와 같은 말입니다. '아르케'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새로이 생겨서 점점 힘을 키워가는 세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 점점 바람이 일더니, 이제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기세로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 창조의 힘이 온 우주를 휘몰아쳐서 모든 것을 있게 했듯이, 이제 새로운 태초가 시작됩니다. 그 새로운 시작을 시작으로, 악으로 인해 타락한 사람과 망가진 세계가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어 새로이 창조됩니다. 이것이 '메시아 예수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야기는 새로운 태초,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렇듯 예수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지역이 나타난 마음 좋은 아저씨가 아니라, 우주를 새로이 지으시는 하나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고했던 태풍, 악을 파멸시키고, 마침내 언약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바로 그 태풍, 그 예수의 새창조가, 정복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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