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14~26


[1]

나의 가족 여러분,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만일 누가 신실함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일함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한 신실함이 그 사람을 사람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음에 처해있고, 그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2]

이같이 신실함 또한 일함이 없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합니다. "당신은 신실함이 있다면, 나에게는 일함이 있습니다"

내게 일함 없는 당신의 신실함을 보여보십시오.

그럼 나는 일들로 나의 신실함을 보이겠습니다.

당신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신실합니까, 온전한 행실입니다.

영들도 신실하며, 심지어 떨기까지 합니다.


[3]

알고자 합니까, 이 허탄한 사람아! 일함없는 신실함은 게으름이라는 것을!

우리들의 아빠, 아브라함이 일들로 의롭게 된 것 아닙니까,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을 때 말입니다.

당신도 보고있습니다, 그 신실함과 그의 일함들이 함께 일하고,

일함들로 그 신실함이 목적을 이루었으며,

경의 말씀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신실하니, 

그것이 의로움으로 인정되었고,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습니다."


여러분도 보고 있습니다, 일함들로부터 사람이 의롭게 되지, 신실함으로만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일함들로부터 의롭게 되지 않았습니까,

전령들을 받아들여 다른 길로 내보냈을 때 말입니다.

마치 숨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일함들없는 신실함도 죽은 것입니다.




11709日. 7과 9잖아. 친구. 그 친구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0). 그러니 신용이 아니라, 신뢰다. 나는 그에게 저당잡힌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나를 드린다. 그 하나에는 이렇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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