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1~12 : 다섯 친구 이야기


  옛날에,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다섯 명의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같이 물고기도 잡고, 들판을 달리며, 그렇게 어린 시절을 한 동네에서 보낸 소꿉친구들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이 어린아이들도 점차 몸이 자라고 생각도 자라서, 이제는 건장한 청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되어서도 그들의 우정은 여전했습니다. 물론 예전처럼 들판을 달리거나, 발가벗고 물에 뛰어들어 물장구치진 않았지만, 이 다섯 명의 친구들은 같이 밥을 먹고, 이스라엘의 상황을 걱정하기도 하며, 그렇게 서로의 삶을 공유해나갔습니다.

 

 

 

  다섯 명의 친구 중 슈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가장 쾌활하고 언제나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슈무엘에게 뭔가 이상한 조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함께 만나던 자리에 슬금슬금 빠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되어 찾아간 친구들을 집 안에 들여보내지도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데도 가질 않는 듯 했습니다.

  

  나중에 소문을 통해 알게 된 슈무엘의 소식은 네 친구들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슈무엘이 중풍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병입니다. 이것은 큰 병이었습니다. 병의 증세가 심하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슈무엘을 두고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율법의 저주를 받은거야?", "그 집 부모가 죄 지은거 아니야?", 슈무엘은 이제 정상적인 유대인으로 살 수가 없어졌습니다. 슈무엘은 이제 성전에서 벌어지는 절기는 물론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전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슈무엘은 육체의 아픔 속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 속에서,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점점 자기 내면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친구들은 발을 동동 굴렀으나, 사실 아무 것도 해줄수 없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렇듯, 슈무엘도 그 부모가 죽고 나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 것입니다. 빌어먹고 살면 그나마 다행인 거지가 되는 것이, 슈무엘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일 것입니다. 어떤 친구의 입에서 "우리도 슈무엘을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유대 사회의 시선 속에서 친구들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이웃 동네 가버나움에 예수라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름아닌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라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악을 일소하고, 병자들을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왕의 다스림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슈무엘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의 낯을 피해 우물쭈물하고 있는 슈무엘을, 무작정 들것에 실어다가 들고 가버나움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작은 동네 가버나움에 이르렀습니다. 그 작은 동네에서 예수의 집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는 집은 그 집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슈무엘을 들쳐 매고 오긴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이 친구를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한 친구가 묘수를 냈습니다. 양쪽에 들것에 밧줄을 묶어다가 지붕을 뚫고, 그 아래로 친구를 내려다 보내면 되겠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집 지붕을 뚫는 것이 다소 망설여졌으나, 지금 이 네 친구와 슈무엘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밧줄을 구해 들것에 묶고, 한 친구는 사람들을 비집고 집 벽을 붙잡고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와 풀들로 엮인 지붕을 손으로 헤쳐 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한 끝에 들것을 내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머리 위로 들것이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고, 예수는 잠시 슈무엘을 바라보더니, "너의 죄가 용서되었다" 고 말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성전에서만 선언할 수 있는 죄용서가, 이 지붕뚫린 집주인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율법학자들은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어찌, 저 자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 용서를!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가 용서되었다' 말하기 쉽겠느냐? '병이 치유되었다'가 말하기 쉽겠느냐?,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그리고는 슈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노니, 네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슈무엘은 움직이지 않던 사지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발을 내딛어 보았습니다. 예전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시절 건강한 육체였습니다. 슈무엘은 예수 앞에 있던 들것과 밧줄들을 주섬주섬 챙겨 이번에는 지붕이 아니라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본 사람들 역시, '우리는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소리쳤습니다.


 


함께 생각해봅시다
!
 

Q. 성전은 무엇이고,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까?

 

Q. 예수님 당시 성전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Q. 지붕을 뚫었던 친구들을 향해, 성서는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붕을 뚫었던 친구들은 무엇을 믿고 있었을까요?

 

Q. 예수님의 죄 용서를 지켜본 율법학자는 왜 그것을 신성모독이라 생각했을까요?

 

Q. 오늘날도 병들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배척당하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일지 생각해봅시다.

 

Q.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봅시다.

우리가 믿는다면, 지붕을 뚫는 것과 같은 신선한 방법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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