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산 정약용 선생은 "농부는 자고로 씨앗을 먹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계속 씨앗만을 먹어왔습니다. 그렇게 몸을 불려왔습니다. 마땅히 물을 주고, 영양을 주어, 미래의 아름다운 열매로 자라나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들,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머릿수를 세어, 그 숫자들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의 결과를 우리는 오늘날 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아이들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이 고마운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한 해석과 세상을 바꾸려는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없는,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대의 부산물들이 되었습니다.

 

  10년입니다. 앞으로 10년입니다. 앞으로 10년은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시간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씨앗들을 귀히 여기고, 그들을 길러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걸지 않는다면, 우리도 영국교회들이 겪었던 쓴 맛을 맛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설마 한국교회가 망하겠어?'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밀쳐놨던 바티칸이 힘을 잃었고, 유럽교회가 술집으로 바뀌었으며, 평양 대부흥운동의 위대한 역사가 오늘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매우 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복음은, 예수는, 기독교는, 서구 열강들의 몫이 아닙니다. 지금 기독교는 제3세계 국가들의 몫입니다. 가난하고, 핍박받던 제3세계 국가와, 문이 열리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복음의 주인공이라 자처하던 이들은, 이제 복음에 차가운 비웃음을 던질 뿐입니다. "복음? 그것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데요?" 그렇게 삶의 변화를 모르던 이들에게 복음은 떠났습니다. 자신을 찢기를 거부한 자들에게 복음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다시 어떠한 댓가없이 생명을 주기 위해 절망과 희망없는 자들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복음은 당신의 눈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새로워지길 원합니다. 나와 당신이,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바꾸길 원합니다.

 


1. 예수의 세례에 대한 의문들



  오늘 우리가 볼 본문은 샌드위치입니다. 우리는 저번 주에 빵을 다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속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다시 확인해볼까요? 먼저 위에 덮는 빵입니다저번 주 우리는 이 자리에서(요단 건너 베다니)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마음에 길을 내라고 소리치는 다시 나타난 엘리야였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 자신의 마음의 강을 갈라, 왕이 오실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인했던 내용은, 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체포되고, 진정한 왕이 나타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예고했던 그 왕이 정말 오셔서, 하나님 다스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샌드위치로 치자면, 아래 깔리는 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빵 사이에 들어갈 이야기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같이 샌드위치를 완성해봅시다.

 

  요한의 이야기에서 예수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끼인 내용은, , 샌드위치의 속은, 예수의 세례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마가복음 1:9~13

그 일은 이렇게 일어났다. 그 무렵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께서 물 위로 올라오시는데, 바로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크게 기뻐하노라."

 

곧바로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을 계셨고 사탄이 예수를 시험했다

예수는 들짐승들과 함께 계셨고, 천사들이 수종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저번 주에 이 세례의 의미를 확인했습니다. 세례는 이사야서 40장의 그 길이었습니다. 그것도 마음에 내는 길이었습니다. 출렁이고, 요동이는 우리의 마음에 길을 내어, 왕이 오실 길을 마음에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길을 내기 위해,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례요한 앞으로 요단을 건너 나왔고, 엘리야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례를 가리켜, 성서는 회개의 세례라고 기록했습니다.(세례요한이 광야에 나타났다. 그는 죄를 용서받게 하는 세례의 세례를 선포했다. 1:4)

 

  이 말은 즉, 예수는 이 죄를 용서하게 하는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 아닙니까? 죄가 없으신 분이, 오히려 회개한 자들이 맞이해야 할 그 왕이, 회개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요한도 이것을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를 말립니다.

 

마태복음 3:13~15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그럼, 우리는 당연히 이 낯선 그림에 대해서 물어야 합니다. 첫 번째 물음은 이것입니다.

 

Q. 왜 예수님은 요한이 주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는가?

 

  어쨋든, 지금은 첫 번째 물음에 집중합시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대단히 이상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손사래를 치면서, 어찌 왕께서 세례를 받으시냐고,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그럴 수 있냐고 극구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기어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레를 받으셨습니다. “모든 의가 이루어지기 위함이라는 이상한 말을 남기시며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 이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께서 물 위로 올라오시는데

바로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크게 기뻐하노라."

 

  두 번째 물음은 이것입니다.

 

Q.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예수에게 내리셨으며, 하늘에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그저 스펙타클한 기적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의미를 가지고 있고, 해석을 원하고 있으며, 역사에 의해서 밝혀지는 본문입니다.

 

  예수의 역사를 기록한 모든 복음서는 예수에 앞서 반드시 세례요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마지막 구약의 인물이고, 구약이 신약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경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 역시, 복음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결정적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의 의미, 예수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 오늘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것이 어떠한 의미일지를 같이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주님을 더 알기 위함입니다.”

 


2. 이해를 위한 단서들

 


  이 낯선 장면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들이 필요합니다. 코난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단서를, ‘역사라고 말할 수 있고, ‘이야기라 말할 수 있고, ‘구약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전도사님,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그냥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는거 아닌가요?’ . 아닙니다.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결코, 예수는 사람들을 천국 보내는 보험 상품도 아니고, 착하게 살다 착하게 돌아가신 도덕 교과서도 아닙니다. 그 분은 역사의 치밀한 이야기 안에서 분명하고 선명하게 드러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증거 이십니다. 그 분은 해석되길 원하시고, 이해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현실의 복잡한 문제 속, 빛나는 한 길을 우리가 발견하기 원하십니다. 그저 생각없이 믿으려는 아메바가 되지 맙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신학자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faith seeking understanding!” 이해를 추구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것도 현실화 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해석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1) 찢겨진 고기 이야기

 

  종의 노래, 왕의 노래에 이어 또 이스라엘에는 또다른 전설이 있었어요. 전설이라고 해서 꾸며내고 날조한 일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증거들입니다.

 

15:1~2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그러나 너는 오래오래 살다가, 고이 잠들어 묻힐 것이다

너의 자손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벌을 받을 만큼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르바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을 다 포함한다."

  

  이 장면을 역사 위에서 생각해봅시다. 이 장면이 벌어진 때는 언제일까요? 아브람 때입니다. 내용은 이런 거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사람들, 세계,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정확히 타락의 반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이 일이 정말 벌어질까요?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이, 지금 우리가 읽은 창세기 15장입니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비둘기를 제외한 모든 동물들을 반으로 쪼갭니다.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 아시아의 약속에 관련된 풍습입니다. , AB가 약속할 때,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것을 맹세하기 위해, 제물들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반으로 쪼갭니다. 그럼 그 제물들 아래로 피가 흥건하게 대지를 적십니다. 그 피가 추적추적한 길을, 약속의 당사자들이 걷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내 목숨을 걸어, 이 약속을 이행하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에게 쪼갠 고기들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불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왜 입니까? 쪼개진 고기 사이로 누가 지나가십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그 쪼개진 고기 사이의 그 길로 지나가십니다. 그 길로 왕이 오십니다. 창조주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생명'을 걸었음을, 그 길로 오심으로 아브라함에게 확증하십니다. , 제물은 찢겨져 피를 흘리고, 그 길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는 걸으며, 그 언약은 확증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

 

두 번째 단서는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증거본문부터 읽어봅시다.

 

4:22,23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 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이것은 어느 시절 이야기일까요? 출애굽 시절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부르셨습니다. 그저 이뻐서 아들이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아들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고자 하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하고자 하셨던 바로 그 일은, 우리가 앞서 보았었던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 타락으로 엉망이 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땅이 다스려지며, 그들에게 복을 주어주시는, 타락을 뒤집고 악을 일소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자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바로 이 것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건져내셨고,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부르셨습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땅을 다스리는 사람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 분 안에 있는 아름다운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께 구출 받은 출애굽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아들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져버렸기에 지금 포로 생활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들이라 선언한 사람을 통해서, 반드시 타락을 뒤집고, 하나님이 영광으로 가득한 세계를 이루실 것을, 유대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천년의 간극을 넘어,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사람을 자신의 아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아들은 출애굽의 아들이자, 하나님이 뜻을 이룰 바로 그 아들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크게 기뻐하노라.“

 








3. 결정적 장면

 


  다시 예수의 세례 장면입니다.

 

마가복음 1:9~13

그 일은 이렇게 일어났다. 그 무렵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께서 물 위로 올라오시는데, 바로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크게 기뻐하노라.“

 

곧바로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을 계셨고 사탄이 예수를 시험했다

예수는 들짐승들과 함께 계셨고, 천사들이 수종들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언이자, 예고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한 사람은, 언약을 이룰 제물입니다.

이 사람은 비참하게도, 끔찍하게도, 그 몸이 찢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언약이 이뤄질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몸을 찢음으로, 많은 이들이 마음에 길을 낼 것입니다.

왕이 오실 길을 마음에 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진짜 이스라엘입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성서에 예언된 그 일들이 완성될 것입니다.

혈연 이스라엘이 실패한 일들을 이 한 사람이 짊어질 것입니다.

출애굽의 아들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하나님은 세례의 장면속에서 선언하셨습니다.

 



4.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아담

 


  이 장면을 잘 생각해봅시다. 세례에서, 바로 그 분이 찢겨질 제물이며, 진정한 이스라엘이심이 선언되었습니다그 이후 그 분에게 찾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12,13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임무 수행입니다. 광야에 40년있던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의 임무를 승계받아,

40일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받았던 시험을 그대로 받아, 그것을 다 역전시키십니다.

 

  그리고 이 역전은 곧 아담의 역전이기도 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을 떠났던 짐승들이, 다시 이 둘째 아담을 찾아왔습니다불칼로 아담을 막았던 천사들이, 이제 이 둘째 아담의 시중을 듭니다그리고 그와 함께, 마음에 길을 낸 자들이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앞으로 이뤄질 사건들을 미리 느낄 수 있습니다. 세례, 그 사람이 자신을 찢으므로 성취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담의 역전, 이스라엘의 회복, 새로운 에덴.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