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3. 성교도회 청소년부 설교
마가복음 8:31~38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들>
0. 지난 이야기
지난 이야기를 다음의 발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 것이죠. 생존으로 묶인 사람과 사람들을 팔 다리 삼아, 비인간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걷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사람들은 반죽에 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악이 파멸되고 백성이 구출되는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
그런데 이 출애굽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예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러 저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치 자기 안에 진짜 누룩있다며, 적정 시기가 되면 빵 하고 부풀어 올라, 악을 섬멸하고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빵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걔네 안에 들어 있는 누룩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과 헤롯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진정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의 반죽이 누룩으로 부풀려지고, 이것으로 인해 악이 해결되며, 생존에 억눌린 자들이 악이 아닌, 이 풍성한 빵안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반죽은 진짜 누룩이 안들어있기 때문에 그저 불발. 나중에 드러나게 될 것은, 불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반죽은 악의 일부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을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의 문제, 그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의 방법에 대해서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맹인의 눈뜬 사건을 통해서 넌지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니가 맹인처럼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해도, 결국 너는 보게 될 것이고, 알게 될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누룩, 예수의 방법을 아는 것은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때가 있고, 아직은 그 예수의 누룩 공개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마을에 들어가지마.", 주는 메시아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는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야."
이것이 칠병이어-헤롯과 바리새인들의 누룩-맹인의 2단계 치유-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의미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마가복음의 큰 산을 넘었습니다. 이 8장을 중심으로 마가복음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그 새로운 국면, 그것이 오늘 다루게 될 내용입니다.
1. 예수의 누룩 : 고난 받는 인자
막 8:3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이 말씀을 처음 하신 것이 마가복음 8장입니다. 이전까지 제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들은바가 없습니다. 물론 여러 기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계속 암시하셨지만, 이것을 말로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은 마가복음에서 총 세번이고, 그중에 처음이 오늘 본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 이 이야기가 나온 맥락을 잊어선 안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칠병이어 사건 이후,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즉, 악이 점령하고 있는 이 땅 속에서 하나님 나라, 즉, 출애굽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출애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방법들 말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에 대해 알아듣지 못했고, 예수님은 이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 구절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누룩입니다. 예수의 누룩입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이루시는 출애굽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을 해결하는 예수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출애굽을 이루시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예수 자신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는 것" 이것이 그의 누룩이었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그가 악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예수의 방법은 바로 인자가 고난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단어가 모두 중요하고, 이 두 단어의 연결은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인자'는 무엇입니까? 인자는 인자 이야기의 바로 그 인자입니다. 그런데 이 인자 이야기가 유대이야기다보니까 잘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인자를 알고 있습니다. 인자는 암행어사입니다. 짐승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갑자기 나타난 정의입니다. 또한 인자는 숨겨진 왕의 아들입니다. 숨겨져있던 왕의 아들이 나타났을 때 왕 자리를 노리던 탐관오리들은 사시나무같이 떨게 됩니다. 또한 인자는 왕입니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양받는 영원한 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이 인자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인자는 악을 심판하는 온 세계의 왕이고, 이 인자가 지금 로마의 지배 아래 놓인 이스라엘을 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즉, 이스라엘은 암행어사를 기다린 것입니다. 숨겨진 왕의 아들을 기다린 것입니다. 진정한 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인자라 주장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며,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악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고난이라 말합니다. 인자 이야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장로들,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후에 살아나는 것이 악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이 인자라는 말과 고난이라는 말을 같이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암행어사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사또한테 붙잡혀서 심하게 매를 맞고 죽임 당한다? 이걸 기대하는 춘향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숨겨진 왕의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탐관오리들이 그왕의 아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렇게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왕을 영원한 왕이라 따를 수 있겠냐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악의 문제. 이 악의 문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을 통해서, 비인간적인 목적으로 행사되는, 지구전체를 감염시킨 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문제요, 악의 문제입니다. 예수는 이에 대해서, 인자인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 그것도 유일한 방식이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죽임당하는 왕을 통해서 악의 문제가 해결된다."
2. 고난의 적절한 예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습니까? 남아공에서 "백인으로부터 흑인을 격리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는 네덜란드계 남아공 수상이 만든 정책입니다. 1994년까지 실시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국제 사회의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남아공은 인구의 80%나 되는 흑인들을 국토의 13%밖에 안되는 구역에 몰아넣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복지, 의료,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일이 만무합니다.
이것을 비판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디스트릭트 나인>이라는 영화입니다. (지난주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찾아보라 했더니 사람 죽이는 영상을 찾아보는 이상한 경우가 생겼는데, 그런걸 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발 이상한 거 찾아보지 말고, 이번주에는 이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 곤충계 외계인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한 쪽 지역에 가둬버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외계인들을 연구하기 위해 그 외계인들로부터 추출해놓은 무언가를 무심결에 먹고 점차 외계인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알게 됩니다. 한 쪽 구역에 갇혀 사는 존재들의 비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책 때문에 흑인들과 백인들 사이의 서로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더 깊어져갔습니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습니다. 엔하위키 미러에서 인용했습니다.
"1976년 6월 16일 소웨토에서 흑인 학생들은 아프리칸스어 강요에 맞선 평화시위를 벌였다. 급격히 수가 불어난 그들은 올랜도 중학교에 모여 농성을 벌였는데 경찰들이 경고없이 발포하여 헥토르 페터슨이라는 12세의 소년이 사망했다.흑인 사회 전체가 뒤집혔고 청년들을 중심으로 흑인들은 전국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며 수백명이 넘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봉기는 몇달간 지속되었고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비록 인종 차별 정책 철폐에는 실패했지만 백인정권은 크게 놀라 흑인들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강경정책으로 나서게 되었다. 군인과 경찰들이 비무장 시위대와 학생들에게 총을 쏘고 개를 풀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상황은 끔찍하게 흘러갔습니다. 이제 유혈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까지 남아공은 들끓어올랐습니다. 마치 로마를 죽이자는 이스라엘과 그 이스라엘을 무참히 짓밟는 로마와 같이, 남아공 안의 흑인과 백인은 서로를 죽일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절대절명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악한 제도가 폐지된것이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입니다. 최초의 남아공 흑인 대통령입니다. 더불어 이 제도를 없애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데드몬드 투투라는 남아공 주교입니다..
이 사람은, 인종차별은 흑인들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 인종을 차별하고 있는 백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1970년대 남아공 법무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투투가 이렇게 주장한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까짓 검둥이 하나 죽어봐야 그것은 내가 걸린 감기 이상의 고통도 주지 못한다"
이 말에 투투는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은 곧 자신의 인간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투투는 한술 더떠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백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도 인간임을 알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자는 예레미야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가 그랬듯, 백인과 흑인의 화해를 말하는 그의 목숨은 곧 위험해졌습니다. 백인들에게는 백인 중심의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고, 흑인쪽에서는 미적지근한 방법을 쓰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정부의 사주를 받은 언론에서는 그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냈고, 그는 "안경을 쓴 검은 벌레"라는 조롱과 협박전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점점 투투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커지자, 남아공 정부는 투투가 소속된 남아프리카 교회 협의회를 깎아내리기 위해 조사회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흠집도 잡지 못해 뻘짓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반전이 벌어집니다. 투투는 남아공의 평화를 위한 공헌이 인정되어 1984년 노벨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1987년 케이프 타운의 대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대주교가 되어서도 남아공에서 백인과 흑인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4월 처음으로 전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역사적인 총선이 실시되었고 넬슨 만델라가 당선됩니다. 투투가 말하던 승리의 날,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후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이후 인종차별 정책은 사라졌지만 그 앙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풀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만델라 정권은 진리, 화해 위원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당시에 저질러진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위원장으로는 투투가 임명되었다.당연하게도 투투가 위원장이니 만큼 위원회는 흑인들의 피비린내나는 복수판이 되지 않았고 흑인들까지 공정하게 밝혀내며 공정성을 유지했으며 과거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느냐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를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같은 것을 만든 것이죠. 우리나라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 때 해산되어 친일파 청산이 흐지부지하게 되었으나, 투투의 진리 화해 위원회는 고난을 감내하며 세상의 악을 해결하는 예수의 제자로서의 좋은 예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생존인물이 벌여온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만약을 묻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투투가 고난 받기를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아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상이라며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3. 베드로의 반응 : 사탄은 무엇을 원하는가?
예수께서 고난을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왕이신 그 분께서 고난을 통해서 악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 분의 누룩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 고난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고난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을 닮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은 배척받고 죽임당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부활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말에 예수의 멱살을 잡습니다.
막 8:32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이에 대한 예수의 반응은,
막 8:3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이 예수의 발언 안에서 다시 사탄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사탄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예수의 방법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방향입니다. 사탄은 고난을 받는 자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난받는 자들이야 말로 자신을 파멸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끊임없이 이 고난 앞에 막아 섰습니다. 예수께서 처음 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렝을 올라, 골고다에서 마치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 사탄은 이것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했습니다. 먹을 것, 사람들의 인기, 이 세상의 영광으로 인자에게서 고난을 떼놓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고난은 사탄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탄을 넘어서 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너무도 쉽게 마주치는 바로 그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 사회에서, 그리고 국가에서, 세계 전체에 걸쳐, 비인간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을 통해 행사되는 강력한 힘은 언제나 도처에 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앞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즉,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인자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투투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왕이요, 인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자가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이라는 방법을 거치지 않고서는, 악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자이신 예수, 그리고 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 전지구적으로 만연해 있는 악의 문제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고난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우리의 반죽을 부풀리는 참 누룩입니다.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방식 뿐이었다면, 우리에게도 이 방식 뿐입니다. 고난없이 악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4.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반죽을 부풀리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말씀하신 이후 바로 이 구절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막 8: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 구절은 무슨 의미입니까? 악의 문제를 고난으로 해결하는 예수. 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방법 역시 예수를 닮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고난입니다.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택하지 않으려는, 베드로와 같은,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막 8:35~38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이 땅의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하고자 하셨던 일입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시고자 했던 기쁜 소식, 즉, 복음은 내가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끝나는 작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땅의 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있겠습니까? 악이 없는 시대를 상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그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새로운 시대를 믿고 악의 문제에 고난으로 맞서라는 것입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가 다시 이 땅에 나타날 때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악의 문제에 고난으로 맞서는 것. 이것은 부끄러운 말이 아닙니다. 세상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의 말입니다. 이것만이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오늘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서 맛있게 부풀려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생존에 저당잡힌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알게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사탄은 사지가 풀립니다. 아니 풀리는게 아니라, 그의 사지로 이용당했던 사람들이 구출되는 것이죠.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반응형
'복음서, 예수의 도전 > 마가가 목격한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1:21~34 : 권위의 3요소 = 자격 + 힘 + 목적 (1) | 2013.11.03 |
---|---|
마가복음 1:14~20 : 역사의 전달자가 말하길,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1) | 2013.11.03 |
마가복음 1:9~13 : 세례, 자신을 찢음으로 이루겠다는 약속 (4) | 2013.11.03 |
마가복음 1:1~8 : 그가 외치는 소리, 그가 말하는 준비 (4) | 2013.11.03 |
마가복음 8:1~30 : 사탄과 악의 문제, 그것을 해결하는 반죽과 누룩 (2) | 2013.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