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8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언자 이사야가 기록하기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앞서 보낸다. 그게 너의 길을 터놓을 것이다!"

  "광야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를 위해 길을 내라! 그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타났다. 그는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요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둘렀다. 그는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었다.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다. "나보다 훨씬 더 강한 분이 곧 오실 것이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분의 샌들 끈을 풀 자격도 없다. 나는 너희를 물에 푹 담갔지만, 그분은 너희를 성령에 푹 담그실 것이다."



0.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광야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광야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를 위해 길을 내라! 그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


  이 마가복음의 시작은 뜬금없는 뮤지컬의 한 장면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최종병기 활>의 첫장면에서 뜬금없이 주인공의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뒤의 내용을 보다보면, 앞의 내용이 이해가 되듯, 마가복음의 이 뜬금없는 첫장면 역시, 역사라는 문맥 아래서, 이 장면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남자가 왜 이 곳에서, 왜 이렇게 소리치는지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복음이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1. 잊혀진 노래


  옛날에 슈무엘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포로입니다. 원래부터 포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원래 가나안 땅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유대인임은 분명하지만, 그는 포로입니다. 그는 지금 바벨론에 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온 그는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슈무엘은 매일 이방인들의 조롱에 시달렸습니다. "니네가 창조주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며? 그런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 

  슈무엘은 또한 매일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이방 제국에 세금을 내야했고, 그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성전에서 드리던 제사는 이미 끊킨지 오래였습니다.


  포로 슈무엘이 슬프게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슈무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리고 또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도 슈무엘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 역시 포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 슈무엘이 포로였을 때, 하나님은 유대인을 찾아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던 이집트를 박살내고, 그들을 포로에서 건져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를 받으며 세계 최고의 민족임을 온천하에 자랑했다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위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그저 옛시절 좋은 추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가나안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자신의 신들의 석상을 잔뜩 지어놓은 점령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유대인은 세계최고 민족이 아니라, 바벨론의 발 앞에 높여 있는 포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땅을 잃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날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이 비참한 민족. 그리고 그 중에 태어난 슈무엘은 다시 땀을 닦고 일터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일터로 돌아가보니, 포로들 사이에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이 민족에 대한 예언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언은 노래였는데, 이러한 노래였습니다.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녀에게 소리치라!

그녀의 포로생활이 끝났다고!

그녀의 죄악이 용서되었다고!

그녀의 죄에 대한 처벌을 이미 갑절이나 받았다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말한다.

"바로 그 광야에서,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바로 그 사막에서, 주님 오실 길을 곧게하라!

모든 계속들이 높아지고,

모든 산과 언덕들이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길은 평탄하게,

험한 곳은 평지가 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지어다.

그리고 모든 육체들은 그것을 함께 보게 되리라.

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물었다.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여호와의 입김이 들판에 부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오 시온이여, 그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그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오 예루살렘이여, 그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의 목소리를 힘있게 높이고,

일어나라,

두려워 말아라,

그리고 말하라.

유다의 도시들에게,

하나님을 보라고!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슈무엘에게 있었던 그 일이 이 민족에게 다시 일어나려나 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모두가 흥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출애굽의 왕이 오신다는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종결된다는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들은 모두가 두번째 출애굽에 대한 열망으로 들떴습니다. '그래, 이제 하나님이 이 민족을 찾아오시는구나! 이제 우리의 삶을 저당잡는 저 가증스러운 것들은 심판을 받겠구나! 우리의 포로생활은 끝나겠구나! 가나안 땅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겠구나!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는 달리, 슈무엘은 죽는 날 까지 줄곧 포로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들을 찾아와, 바다를 갈라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들에게 위대한 노래를 가르쳐주었으나, 그 이후 길게 침묵했습니다. 슈무엘의 민족에게 포로 생활은 길기만 했습니다. 바벨론이 지나고, 페르시아가 지나고, 마케도니아가 지나고, 시리아가 지나고, 영원한 강자는 없어, 세계의 패권이 바뀌고 바뀌는 동안 이 슈무엘의 민족은 계속 포로였습니다. 슈무엘은 죽고, 그의 아들도, 그의 아들도, 그의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포로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위대한 노래는, 그저 전설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한 참이 흐르고, 이 포로들이 가득한 땅에 누군가가 나타났습니다. 이 뮤지컬의 등장인물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기록하기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앞서 보낸다. 그게 너의 길을 터놓을 것이다!"

  "광야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를 위해 길을 내라! 그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

  

  이것은 잊혀진, 그러나 이제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바로 그 노래였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2. 그의 무대 : 

광야, 요단강 건너, 엘리야가 사라진 그 곳

    

  그 알수 없는 남자는 마치 자신이 그 옛날 예언자의 배역을 맡은 사람 같이, 낙타털 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잊혀진 노래에 나오는 '외치는 소리' 라고 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남자가 서 있는 장소였습니다. 우리는 그 남자의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살펴봤으니, 이번엔 그 남자가 서 있는 무대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가 서 있는 무대는 1) 광야 이자 2) 요단강 건너 였고 3) 엘리야가 사라진 그 장소 였습니다. 













1) 광야

  그는 광야에 서 있었습니다. 광야는 이 포로들이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왜입니까? 이 포로들의 조상들이 자유를 찾아 위대한 걸음을 걸었던 곳이 바로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쫓았습니다. 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장막은 그들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방군대들을 무찌르던 영광의 기억들, 그러나 끝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했던 쓰라린 기억들이 점철되있는 바로 그 광야였습니다.


2) 요단강 건너

  또한 이 남자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요단강 건너였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의 기이한 외침을 듣기 위해서는, 이 포로된 백성들은 반드시 이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생각에 잠겼음에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역사 위에서 이들의 조상들은 이 강을 건넜거든요.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처음 밟던 그 날에, 그들은 이 강에 발목을 집어 넣었고, 강물은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그 날을 이 백성이 잊을리 없었습니다.


3) 엘리야가 사라진 자리(왕하2)

  그리고 이 민족에게는 엘리야라는 훌륭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고,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엘리야를 다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그 자리에 이 남자가 서 있습니다. 

 

3. 그의 배역 : 엘리야


  정리해봅시다. 그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그 자리에서,  왕이 오실 것이라는 충격적인 노래를 부르는 그는 누구란 말입니까? 힌트는 엘리야에게 있습니다. 


말라기 4장의 예언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살라 버릴 날이 온다. 

모든 것이,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태울 것이다.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이루는 그 날에, 

악한 자들은 너희 발바닥 밑에서 재와 같이 될 것이니, 

너희가 그들을 짓밟을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 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그래서 포로 생활에 지쳐갈 수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야를 기다렸습니다. 하늘로 사라진 엘리야가 나타나, 이 세계의 마지막이 벌어지길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께 이렇게 묻기도 하지요.


막 9: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예수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막 9:12,1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이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소리치던 그 사람. 이 사람이 오기로한 엘리야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4. 그가 외치는 소리, 그가 말하는 준비.


  앞서 살펴본 두 개의 그림을 더해봅시다. 

그의 무대와 그의 배역을 연결지어, 그의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엘리야, 요한이 와서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이 새로운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광야를 떠올립니다. 광야의 여정 끝, 가나안에 입성했던 위대한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왕이 오신다! 그를 위해 길을 내라! 길을 곧게 하라!"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슈무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를 박살냈던 그 왕이 다시 찾아오는 때, 

  이제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완전히 종결되는 때, 

  다시 아름다운 땅을 찾아오는 때,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님의 집이 함께 하는 때!


  요한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왕이, 세상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자기 백성을 구원할, 출애굽의 왕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왕의 귀환을 알리는 외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준비하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왕이 오십니다. 그 출애굽의 왕이 오십니다. 세례요한은 왕의 귀한을 알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곧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존재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준비는 무엇입니까? 그가 준비하라고 말하는 그 길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왕이 오시니까, 도로공사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사단장이 온다고 땅을 골라 계단을 만든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장이 아니죠. 그런 뻘짓을 시킬리 없습니다. 그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그 길은 도대체 어떤 길이겠습니까?


  세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타났다. 그는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요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둘렀다. 그는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었다.


  세례요한은 길을 내야 한다고, 왕이 오실 길을 내야 한다고 말함과 동시에, 죄를 용서받게 하는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요단을 다시 건넜습니다. 그렇게 엘리야가 사라지 장소로, 광야로 다시 나아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즉, 위대한 왕이 오시고, 그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내야 하는 그 길은, 길거리에 내는 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에 내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것이, 자신의 마음에 길을 곧게 하는 것이 왕의 귀환을 맞이하는 백성들의 준비인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세례가, 마음에 내는 왕의 대로인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왕을 영접하는 백성의 바른 에티튜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출애굽입니다. 파도가 출렁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마음을 갈라 길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 갈라진 마음의 사이로 우리의 죄를 무력하게 할 진정한 왕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뒤에 그 왕에 대한 숱한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어떤 분이시든, 당신은 그 분을 위해 마음을 찢어 그 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의 홍해를 갈라,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의 한 가운데 하나님의 집이 지어집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은 가나안처럼 얻어집니다. 엘리야가 다시 찾아와 우리에게 왕이 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요단을 건너고, 광야로 찾아와, 엘리야를 만나는 사람들이 정작 해야 할 것은, 요단처럼 자신의 마음을 가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처럼 자신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왕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그 길로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그 왕은 아닙니다. 그는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예언된 엘리야요, 외치는 소리입니다. 그 세례요한이 그 왕에 대해서 말합니다.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다. "나보다 훨씬 더 강한 분이 곧 오실 것이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분의 샌들 끈을 풀 자격도 없다. 나는 너희를 물에 푹 담갔지만, 그분은 너희를 성령에 푹 담그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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