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 아홉번째 말씀


구속함을 얻은 우리 II

-나의 죄로 인하여


히브리서 10: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1. 창조


  우리 그 동안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창조' 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중에,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우리도 속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된 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 창조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창조였습니다. 지음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오늘 시편을 쓴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이것은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그랬어요. "재덕아, 너 하늘의 구름 모양이 하루라도 똑같은 걸 본 적 있어?" 여러분, 하늘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럼 알겠군요. 하늘의 구름 모양이 하루 라도 똑같은 날이 있을까요? 단 하루도 없습니다. 왜요? 지구가 만들어진 그 날 이후, 하늘은 단 하루라도 똑같은 모양인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는 것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늘 뿐입니까?


로마서 1: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창조된 모든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그 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찰흙 만들기 시간에, 그 작품을 보면, 그것을 만든 아이의 미술적 재능과 성품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20절은 그냥 알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핑계치 못할지라"


2. 타락과 그 결과


  이렇듯, 하나님께 지음 받은 것들, 줄여서 '피조물' 이라고 말합니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중에 하나가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질서를 역류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 분만을 찬양해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버리고,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모든 관계가 박살 났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다 깨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락'. 하나님으로부터의 떨어짐.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페트 할아버지를 배신한 피노키오. 아니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출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가출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밖에 오래 있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외로웠거든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가출하면 정말 힘듭니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입니다.  나를 돌봐주시는 부모님을 버렸을 때, 세상에서 나는 혼자가 되버립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화목한 가족들을 볼수록 나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추위에 떨며 오리털 잠바를 부여잡고, 하루 종일 추위에 떨어본 적이 있습니다. 혹여나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남의 집 옥상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점점 잠바에 온기가 떨어져가면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가 죽기 보다 싫었습니다.


  사람은 가출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말입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마음은 밑뚫린 항아리같습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다 새어나가고 빠져나갈 뿐입니다. 절대 그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구들을 많이 만나도, 아무리 위장에 술을 들이 부어도, 아무리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녀도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왜 입니까?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친구도, 가지고 싶은 물건도 아닙니다. 그 아이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안아주시는 부모님의 끝도 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가출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지음 받았지만, 여러분은 그 분만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그 분은 여러분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여러분들을 찾고 계실 때, 여러분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9: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아, 병든 사람에게만 필요해"  충격적인 사실은, 사람은 아무도 건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타락한 환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는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이 온 우주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환자이면서 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가출한 주제에,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허세부리는 철부지가 있을 뿐입니다.


요한일서 1: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하지 못하는 당신.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는 당신. 죄인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당신. 죄인입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말씀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환자다! 사람은 모두 죄인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시는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 분 앞에 회개하고 무릎꿇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가출한 아이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자수성가해서 잘 먹고 살 사는 일이 아닙니다. 성공해서 나중에 부모를 호강시켜 드리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아버지께 돌아가는 일입니다. 자신이 잘못했노라. 아버지 앞에 무릎꿇는 일입니다.


-타락의 결과

  이제 다시 타락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겁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녕 사실입니다. 계시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만약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 사람의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이 바로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죄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죄책은, 지옥에서의 영원한 죽음입니다. 마지막 날 옛 뱀인 사탄이 지옥에 들어 갈 때 불순종의 자녀들도 같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사탄과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된 장소에 뱀의 새끼가 되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 외의 것은 무엇이든 거부하는 인간'의 최후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원했던 그의 소원대로 되는 것입니다.


  죄책을 진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마음과 몸도 오염됩니다. 마음에는 진리가 없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악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몸은 점점 늙고 썪어 마지막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자기 입니다. 우리의 살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늙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진리와 멀어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3. 구속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출한 아들을 화해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그 화해의 자리는 곧 제사였습니다. 단 한번뿐인, 완전한 제사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 위대한 제사에 대해서 죄인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로, 그 제사를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제사를 바라보라! 그 제사가 바로 나의 죄로 인하여 일어난 제사임을 인정하라! 말씀하십니다. 그 제사가 무엇입니까? 네.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에 예수께서 달리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나의 죄로 인하여. 나의 죄로 인하여. 나의 죄로 인하여!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나의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자신의 아들에게 나의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쏟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이 위대한 제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일어난 제사임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이사야서 1장 의 심판의 경고와도 같습니다.


이사야 1: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구약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냈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겠다고 수많은 짐승들을 제단 앞에서 죽였습니다. 제단 앞에서 가축을 죽일 때마다, 사방에는 죽임당한 동물들의 피로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물 앞에선 죄인은 알아야 합니다. '아. 저 제물이 죽은 것은 나의 죄 때문이구나'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자신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정결하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그 관계를 다시는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해도 나는 듣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 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계속 제물들을 죽여서 손에는 피가 묻어 있지만, 정작, 그 제물이 죽은 것이 나의 죄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나의 죄 때문인 것을 모르니까, 삶에는 변화가 없고, 죄는 또 다시 반복되고, 동물들은 끊임없이 죽어나갑니다. 계속 손은 피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삶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사 앞에 서 있지만, 그 위대한 제사가 자신의 삶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십자가는 복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니, 자신의 죄의 책임을 모두 감당하신 어린양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기도를 주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나의 죄 때문에 제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즉, 나의 죄 때문에 어린양 예수께서 죽임당하셨다는 것, 당신의 죄 때문에 예수꼐서 죽임 당하셨다는 것, 즉, 바로 당신이 예수를 죽인 살인자라는 것. 당신이 죽인 예수님 때문에, 오늘 당신이 죄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정하지 않는 자의 기도는 무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 삶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사망의 냄새 풀풀 나는 썩어가는 송장과도 같습니다. 입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나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 그 안에는 생명 없습니다.


  전도사님. 인정이 안되요. 안 믿어져요. 미안한 얘기지만, 그럼 당신은 죽어요. 영원히 죽어요. 그리고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이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분의 죽으심이 당신의 마음에 절절하지 않다면,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은 그 단 번의 제사와 상관 없어요. 십자가와 상관없는 당신은 죽는단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구요? 아버지께 돌아가서, 살려달라고 애걸하세요.  심판의 주권자이시고, 모든 기도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 매달리란 말입니다. 이것 말고 당신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이렇게 교회 다니다가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러다 못만나면요? 얼마 전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많은 답변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 시간 도전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처럼 자신을 바꾸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처럼 모든 것을 걸어서 자신을 바꾸세요. 안그러면 당신은 죽어요. 아이들에게 너무 심한 말 같지만,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에요. 예수 없는 사람은 아이나 어른이나 생명 없습니다.


4. 마음에 예수의 피가 뿌려짐


히브리서 10: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면, 그 십자가의 제사가, 바로 나의 죄 때문임을 믿으면,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집니다. 더러운 것으로 가득했던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있는 악이 없어질까요?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제 안에도 악은 있어요. 그러나 그 분의 거룩한 피가 제 안에 악을 가려줍니다. 마치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의 집집마다 양의 피를 발랐듯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럽고 보배로운 피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예수의 십자가 제사가 곧 나의 죄책에 대한 제사임을 믿어서, 그 마음에 예수의 피가 뿌려지고, 그 피로 악이 가려진 자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4:6,7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을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그 사람의 지난 날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행했든지, 그것들을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말씀하십니다. 그 의롭다 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십자가의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마음에 뿌려진 사람입니다. 그 뿌려진 피가 죄를 덮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피로 죄가 덮어진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로움은, 우리가 만들어낸 의로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추악하던지간에, 우리의 죄가 얼마나 비참하던간에, 그것을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피의 공로는 그 죄를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뿌려진 악은 이제 정결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 악은 점차 소멸되고, 그 사람은 점점 거룩해지고,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악은 예수 그리스도 피에 덮혀 그 힘을 잃게 되고, 마지막 날에는 완전히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반응하십시다. 우리를 살리신 그 분, 우리 마음에 뿌려진 그 보배로운 피의 주인공을 함께 찬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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