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스물 여덟번째 말씀
구속함을 얻은 우리 I
0.
오늘은 영은이의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합시다. 영은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도사님,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어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뵐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분을 뵙게 되면 죽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반역자'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화과 나무 잎파리 갑옷을 입고, 그 분에게 침을 뱉고, 그 분의 옆구리에 창을 찌르려 하는, 하나님의 반역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인간은 정말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에게 더욱 조종받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속에서 태어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 한국인 학생이 총기를 난사하여 사람들을 죽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뉴스와 신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형님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 제가 조승희입니다." 그 기도를 들었을 때 저는 처음에 웃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추악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반역해왔는지. 내가 조승희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살인마의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제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의 계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그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도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 역시 날마다 살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미움의 총부리를 형제자매에게 겨누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질투하며,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죽습니다. 죄가 없으신 그 분앞에 죄가 있는 우리는 죽습니다. 무균실에서는 병균이 살 수 없듯이, 죄가 없으신 완전무결한 그 분앞에서, 죄와 한 몸인 우리는 소멸됩니다.
이것은 온유함이 승한 자라고 불리우는 모세에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저에게 보여주십쇼." 라고 간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가, 심지어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서는 살 수 없는 타락한 존재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분 앞에 우리 힘으로 도저히 나갈 수도 없고, 나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죄의 끔찍함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여러분에게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어떻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추한지를 설명하려고 고민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좋은 힌트를 주셨습니다.
다윗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알다시피, 왕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 자기 나라의 군대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왕이 자기 나라의 인구를 센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것은 죄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성한 자신의 나라를 의지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숫자를 센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이 죄의 크기가 얼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이 마음에 찔림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갓 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왕께서는, 저를 왕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선택했겠습니까?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다윗의 아래턱이 덜덜 떨리지 않았겠어요?
죄책은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하나님을 잊고 삽니까? 그 분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한 두가지 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분만을 높이지 않았던 우리의 지난 날은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죄책은 어느정도이겠습니까? 왕이 자신의 인구를 세는 이 상식적인 일조차,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을 때, 7만명을 죽여야 했습니다. 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길래, 이것은 이리도 끔찍하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또한 얼마나 끔찍한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날마다 얼마만큼의 죄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은 결코 스스로 이 죄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거의 무한에 가까운 죄책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순간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죄책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러합니다.
구속-죄책의 전가
그러한 인간, 즉, 창조되었으나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살 길을 보여주십니다.
(구속의 뜻은 오염까지 다 다루고)
1. 십자가는 '제사'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노아가 방주를 지었을 때, 산꼭대기위에 짓는 거대한 배에 대해서 모두가 알고 있었듯이, 마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을 보라고 소리치는 것을 못들은 사람이 없었듯이, 모두가 예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십자가는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십자가를 오해합니다. 어떤 이들은, 젊은 이스라엘 선생이 비극을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도덕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진리를 끝까지 붙잡은 선지자라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틀렸습니다. 십자가는 비극도 아니고, 말 안듣는 인간에게 이렇게 하라고 보여주신 것은 더더욱 아니고, 실패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제사입니다'. 제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일전에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사람은 가축을 제물로 준비해서 제사장에게 나아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제물을 죽입니다. 그리고는 선언합니다. "너의 죄가 다 용서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도 태어나기 한 참 전에 이러한 제도를 가르쳐주셨습니까? 왜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적에, 이러한 절차를 반드시 밟으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이러한 제사제도를 구약 성경에 기록으로까지 남겨두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복잡한 제사 규정들은 모두 십자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를 말입니다. 그럼 다시 제자로 돌아가봅시다. 왜 제사를 지냈을까요? 제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2. 제사의 목적
제사의 목적 관계 회복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반역자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지,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정의의 원천이십니다. 그 분 앞에 죄는 모두 소멸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해해서는 아니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려고 제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시기 때문에 제물을 가져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제사 제도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명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하나님 자신과 사람 사이에 가축을 제물로 두십니다. 그리고 원래는 이 사람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다 이 가축에게 쏟으십니다. 그래서 이 가축은 죽고, 하나님은 그 사람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달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그 분께서 사람을 회복과 화목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하길 원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3. 죄책의 전가, 대신 받으시는 형벌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사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는 타락한 사람과 하나님이 계시고, 그 사이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계십니다. 하나 물어봅시다. 죄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사람에게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순결한 어린양도 점과 흠이 없습니다. 타락의 죄책이 모두 이 제사의 자리에 초청된 이 자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을 모두 이 어린양에게 쏟으십니다. 어린 양은 한 번의 반항도 없이 그 심판을 다 받아내십니다. 몸은 다 찢기고, 피는 다 쏟아집니다. 그 앞에 인간은 서 있습니다. 어린 양이 죽기 전에 그 인간에게 말합니다. "다 이루었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반역자들, 그러나 그 반역자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물이 죽습니다. 왜 제물이 죽습니까? 하나님께서 반역자의 죄책을 사람이 아닌 제물에게 모두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그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제사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함을 그 분이 모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책이 없습니다.
이것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그 아들을 제물 삼아서 죽이심으로, 사람의 죄책을 다 자신의 아들에게 담당하게 할 것이라 누가 상상할수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이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일을 하나님께서 한낯 인간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이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계시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제사에 당신을 부르십니다. 그 분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이것은 역사상 인류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입니다. 죄책을 자신의 아들에게 전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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