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다섯번째 말씀


요한복음 15장 9~11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4)

-이것이 진짜 기쁨이다


0. 지난 주 이야기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총 정리해봅시다.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 15장을 보고 있습니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 밖

-밖에 있는 우리를 나무와 연결시키는 것은 말씀. 

-말씀으로 연결된 나무 가지가 맺는 열매는 사랑. 따라서 믿고 들으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가지들의 모임이 교회, 너는 내 목숨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리고 우리는 이 내용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의 구절들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 복수에게 전해진 새 계명


  이 말씀은 개인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 이 말은 곧 너희들입니다. 한 명이 아닌, 그 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요?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지이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즉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있더라도 혼자서는 사랑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의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있어야만,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미는 거기에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래서 잘났다고 까불면 안됩니다. 아무리 잘나봐야 너는 혼자서 사랑할 수 없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이 뭐에요? 다른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이요? 내 목숨처럼요.


2. 뜻에 순종하는 것 =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는 데 우리의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마저도 내어놓아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 계명이 사랑아닙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사랑하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나무 그림을 생각해봅시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지는 열매를 맺기도 하고, 어느 가지는 자신을 두껍게 만드는 일에만 혈안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가지들은 어떻게 하신다고요? 다 잘라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열매 맺는 가지만 예수님의 사랑안에 있는 가지 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예수님께 붙어 있다 말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께 받은 진액을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는 가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신의 대학때문에, 직장때문에, 잘 먹고 잘 사는 것때문에 예수님을 이용하고,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온 진액으로 자신을 부풀리고 배부르게 하려는 가지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지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한 가지는 예수님의 사랑 밖에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지를 잘라버리십니다. 즉, 가지라고 다 같은 가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진짜라고 백 날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만이 진짜 가지 입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그 분의 사랑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기억합니다.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그 분의 사랑안에 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그렇게 사랑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어디 광고하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안에 있구나'


  어머니의 사랑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머니의 뜻에 순종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누군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곧 사랑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기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은, 곧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것이 먼저냐는 말할수 없습니다. 그 뜻에 순종하면 사랑안에 들어가는 것인가? 사랑안에 있으면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인가? 이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안에 있는 자는 그 뜻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 뜻에 순종하는 자는 그 사랑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분 사랑 안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 분의 뜻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 분의 뜻을 지키는 사람은, 그 분의 사랑안에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3. 이것이 진짜 기쁨이다 


  그럼 예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11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의 뜻은 사랑하는 것이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는 자만는 내 사랑안에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고, 또 그 예수님의 기쁨으로 우리의 기쁨이 넘쳐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진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얻는 기쁨. 이것이 진짜 기쁨이요, 예수님의 기쁨이고, 우리는 그것으로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것을 내어줄때, 다른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갖게 될 때, 그리고 마지막에는 친구를 위해서 목숨마저도 내어줄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아!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사랑안에 있구나!"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줍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18절을 봅시다.  


골로새서 1:15~18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만물이 그 분안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 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 분은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만물은 그 분 안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그 분은 교회의 몸과 머리이시며, 근원이십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는 만물 가운데 으뜸이십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분 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은 우리를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마치 우리 몸안에서 터져나는 샘물처럼 우리를 채우고,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넘치고, 넘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리를 다시는 갈증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영원한 생명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것이 우리 안에서 식어지고, 우리가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그 분의 사랑안에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가 사랑할 때만이, 내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사용하시는 구나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그 사랑에 중독됩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확인시켜주는 그 사랑하기에 인생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함으로 얻는 그 기쁨이 진짜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다 가짜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알잖아요. 생일날 부모님이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주면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지만, 그것은 한 달도 못갑니다. 제가 군에서 제대하고 위병소를 나오는 그 날을 잊을 수 없지만, 그 날 때문에 지금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바비를 두둑하게 받아도 좋은 대학에 직장에 들어가도, 그것이 이 사랑과 무관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는 사랑이 식어진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예수쟁이들이여. 사랑합시다. 이것 뿐입니다. 


4. I am a friend of God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 사랑에 중독됩시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가 그 분의 친구임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장 14,15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5:14,15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명하신 것처럼, 진실로 사랑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친구와 종은 완전히 달라서, 주인은 종에게는 자신의 하는 일을 말해주지 않지만, 친구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생각을 가르쳐주십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친구입니다. 사랑하는 자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예수님의 뜻을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에 중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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