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네번째 말씀
요한복음 15:12~14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요한복음 15장(3)
-먼저 죽으려는 사람들의 모임
0. 지난 주 이야기
우리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 15장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요한복음 15장을 통해서 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그 나무는 생명의 나무입니다. 그 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진액이 흘러나옵니다. 그 진액은 우리를 진짜 사람답게 살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살게 합니다. 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액. 그 진액은 말씀을 따라 흐릅니다. 말씀 없이는 그 진액을 마실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던 우리가 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그 진액을 마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번 주에 이야기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어서 사랑하는 것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불이야”라고 소리 지르면, 여러분은 그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리는 소리를 믿는다면 이 건물을 뛰쳐나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선언되는 말씀을 여러분들은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리는 말씀을 믿는다면, 오늘 여러분들은 사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상관없는 말씀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냄새납니다. 송장 썩는 냄새 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차라리 말씀을 듣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만약 “불이야”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안 믿었어요. 이 사람과 “불이야”라는 소리를 못들은 사람과 결과는 어떠합니까? 똑같습니다. 들어도 믿지 않으면, 안들은 것과 진배 없습니다. 믿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믿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해봅시다. 사랑하지 않으면 믿지 않은 것이고, 믿지 않은 것은 듣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 이다. 사랑하게 하는 믿음만이 진짜입니다. 사랑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누군가 아무리 믿는다고 말해도, 사랑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말입니다.
1. 가지들의 모임
이제 오늘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그림을 봅시다. 이 그림을 우리는 계속 봐왔죠. 이 그림이 상징하는 것을 하나하나 말씀을 찾아보고 생각해봅시다. 먼저 이 나무는 누구이십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주시며 주실 유일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생명 나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진액을 마시며 살아가는 가지들은 누구입니까? 네. 우리입니다. 그 분께 떨어져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럼 그 가지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으므로 무엇을 맺게 됩니까? 네. 열매. 그 열매의 정체는?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뭔데요? 네.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지들이 맺게 되는 열매는 나보다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럼 이제 문제. 그럼 이렇게 열매 맺는 사람들의 모임을 무엇이라 부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교회입니다.
교회입니다. 사랑하려는 가지들의 모임.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해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단한 종교적 가르침을 가르치려는 교육기관도 아닙니다. 우리는 봉사하러 모인 사람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 맺기 위해 모인 가지들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그 열매 없으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이 예배, 공과, 교육, 행사등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은, 어리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가지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 사랑하는데에 애 어른이 없으니까요. 너무도 당연한 말을 다시 선언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려고 모였습니다. 아멘이십니까?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주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교회에 습관에 이끌려 나온다면 그 사람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이유는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사랑하기에 선생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 하려고 모였습니다. 우리는 뭘 받으려고 모인 사람들도 아니고, 뭘 잘 해보자고 뭉친 사람들도 아닙니다. 사랑하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2. 그러나 점점 두꺼워지는 가지들
그러나 그 가지들의 모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지들이 열매를 맺지 않고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진액을 빨아들인 가지들이, 열매맺을 생각하지 않고, 점점 자기를 부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보다 잘난 가지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떤 가지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붙어 그 진액으로 자기를 부풀렸습니다. 가지는 점점 두꺼워졌지만 열매는 맺히지 않았습니다.
어떤 가지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매랑 아무 상관없이 잘난 가지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어떤 가지들은 이쁘고 잘생긴 가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깍고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었습니다. 열매 맺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진액이 쌓여가는 가지들은 점점 두꺼워졌고, 열매는 맺히지 않은채 잎사귀만 무성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15: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가지가 있는 이유는 열매맺기 위함입니다. 사람에게 생이 허락됨은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가지는 결국 농부에 의해 잘려 나갑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두렵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사랑과 상관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쁩니다. 우리의 공부도,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예배도 모두 사랑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과 사람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당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면, 나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모임, 교회입니다.
3. 너는 내 목숨
그 사랑, 우리는 무어라 배웠습니까? 네. ‘남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아. 그냥 잘 되길 바라면 되겠지’ 그런데 얼만큼 잘 되길 바래야 할까요? 그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요한복음 15:12~14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남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의 마땅한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다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 이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나의 생명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내 목숨과 다른 사람은 동급입니다. 너는 내 목숨! 예수님의 목숨을 내 목숨과 바꾸었듯이, 나는 내 목숨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는 나의 목숨 마저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는 일입니다. 두꺼워지지 마세요. 자기를 위해 살면 안되요. 열매를 맺읍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스펙이 아니라 열매니까요. 하나님은 가지더러 두꺼워지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매 맺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지는 이유는 잘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지식이 부족하고, 가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히 많이 알고 있고, 충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땅이 점점 피폐해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죽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나만 살려고 하니 모두가 죽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심지어 교회도 그렇습니다. 두꺼워진 가지들로 가득한 교회에 열매가 없습니다.
어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친구의 둘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계단에서 굴러서 저랑 동갑인 그 둘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둘째아들의 장례를 치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첫째 아들이 오지 않은거에요. 왜냐하면 첫째 아들은 목사님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아버지는 불교였습니다. 게데가 장례일은 주일이었어요. 더군다나 평소에 그 아버지와 그 목사인 첫째 아들은 사이가 대단히 안좋았습니다. 서로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붙들고 장례에 오지 않은 그 첫째 아들을 욕하고 저주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그랬습니다.
그 날 아버지가 저에게 물어보시드라구요. 어떻게 해야겠냐고. 생각해봅시다. 아들이 아버지를 전도하겠다고 막 떠들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고 그 아버지가 들으실까요? 아닙니다. 열매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정말 문제는 첫째 아들이 장례에 오고 오지 않오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정말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들이 아버지께 말하는 겁니다. “아머지 제 책임이에요. 그 동안 제가 잘못했습니다.” 설령 아들이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아들은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먼저 죽는 것입니다. 먼저 무너지는 것입니다. 먼저 숙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은 먼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먼저 숙일 수 있습니다. 먼저 손 내밀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에 맺을 수 있는 삶의 참다운 열매입니다. 그럼 불교믿는 아버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래 니 잘못이다. 이 불효자식아” 이렇게요? 아닙니다. “나도 미안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해피 엔딩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은 논리와 수싸움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먼저 안아버리는 것입니다. 먼저 울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열매를 보고 알리라” 우리가 진짜 열매 맺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줘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먼저 죽어지고, 먼저 무너지고, 먼저 낮아지는 것. 다른 사람을 내 목숨처럼 여기는 것. 사랑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심플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막상 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어렵지만 그 옳은 일을 우리에게 하게 하십니다. 누가요? 하나님이요. 우리를 가지로 부르신 그 분께서요. 그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니 목숨처럼 사랑해라” 그리고 그 분이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십니다. 이제 어쩔거에요. 이제 우리의 삶의 길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은 나의 목숨입니다. 믿으십니까? 따라서 먼저 무너지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 사람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먼저 죽어지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먼저 낮아지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집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다 무너지면 그 가운데 한 분이 보입니다. 그 분만이 높아지십니다. 그렇게 자기를 다 낮추는 사람들 속에서 높아지시는 그 한 분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자리에 예수께서 왕으로 좌정하십니다. 이것이 진짜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 처음에 같이 결단하지 않았습니까? 어린이 되리라.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누구보다요? 하나님 보다요? 아니요. 이미 우리는 하나님 보다 낮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도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낮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높아지려는 사람은 정말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거짓말 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옆 사람의 눈동자를 쳐다봅시다. 어떤 사람이든 그 눈동자는 깊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비췹니다. 사람과 사람이 진실하게 대화하고, 서로를 생명처럼 여기며 서로가 정말 잘 되길 바라는 그 상태.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던,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그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진지하게 대하는 그 상태. 참된 교회의 상태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여러분의 어머니의 배가 찢기는 아픔이 있었고, 여러분의 탄생으로 인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픔과 기쁨 범벅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기 수원역을 걸어가는 내가 모르는 아저씨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나랑 한 마디도 섞어보지 않은 저 선생님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저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런 교회 됩시다. 피상성을 넘어서, 허례허식을 깨뜨려서 사람을 내 목숨처럼 사랑하는 일 너무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부터 먼저 무너지겠습니다. 먼저 죽어지겠습니다. 먼저 낮아지겠습니다. 진짜 어린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부르신다 하셨습니다. 15장 14절을 읽고 말씀을 마칩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2011年 > 1. 요한복음 15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5장 V : 정리 및 결론 (0) | 2014.05.04 |
---|---|
요한복음 15장 IV - 이것이 진짜 기쁨이다(요한복음 15:9~11) (1) | 2014.05.04 |
요한복음 15장 II - 믿고 들어서 사랑하라(요한복음 15:4~6 ) (0) | 2014.05.04 |
요한복음 15장 I - 예수 그리스도 안과 밖(요한복음 15:6 ) (0) | 2014.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