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로마서 5:1~5

  그러므로 우리가 신실함으로 의롭다는 선고를 받았으니, 우리 주 메시아 예수로 하나님을 향하여 평화를 누립니다. 또한 그 예수를 통해 우리는 신실함으로 거저주심 속에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드러나심을 소망하며 소리 높여 한 분을 자랑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압제 중에도 소리 높여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이 압제가 견딤을, 이 견딤은 단련된 성품을, 이 단련된 성품은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낳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 '가온'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을 통해서 말입니다.


로마서 5:6~11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메시아께서, 우리가 연약하여 말씀대로 살 수 없었던 그 때에, 경건하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의로운 이를 위해서도 좀처럼 죽지 않으며, 선한 이를 위해서 용감히 죽으려는 이도 어쩌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비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와 단단히 묶어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피로 의롭다 산정되었으니, 그이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더욱 더 구원받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서로 적이었던 하나님과 우리마저도 만일 그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사이가 되었다면, 이미 화해한 우리는, 이 아들의 다시사심 안에서 더욱 구원을 얻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소리 높여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이 예수로 인해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2~21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을 알 수 있습니다. '비뚤어짐'이 한 사람을 시작으로 현시대로 들어왔고 그 비뚤어짐 때문에 죽음도 현시대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속에도 죽음이 꿰뚫고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비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토라가 있기 전에도 비뚤어짐이 세상에 있었으나, 토라가 없을 때에는 비뚤어짐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인) 죽음은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같은 '벗어난 걸음'을 걷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 아담은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이루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과는 달리, 이러한 거저 주신 것이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떨어져 나감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그 거저주심 속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성히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비뚤어진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과는 달리, 이러한 선물이 있습니다. 즉 심판은 한 사람을 근거로 유죄 판결에 이르는 반면, 선물은 많은 '범죄'를 근거로 의의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잘못된 걸음을 걸었던 한 사람을 통해 다스렸지만, 거저주신 것에 넘치고, 삶속에서 의의 선물을 붙잡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 메시아 예수를 통해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유죄판결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의로운 걸음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의와 삶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흘려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하나님 아래) 놓이게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잘 들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하나님 아래) 서게 될 것입니다.


  토라가 (현시대에) 깊고도 넓게 들어온 것은 '잘못된 걸음'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짐이 넘쳤던 그 곳에 하나님의 거저주심이 넘쳤습니다. 마치 죽음 안에서 비뚤어짐이 사람과 세상을 지배했던 것과 같이, '대가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 역시 의를 통해서 우리 주 메시아 예수와 함께 얻는 오는 시대의 삶에 이르도록 다스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6.


로마서 6:1~11

  그러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뚤어짐 속에 머물겠습니까? 거저주심을 넘치게 할 목적으로? 일 없습니다. 비뚤어지는데 있어서 죽어버린 우리가 어찌 지금도 그 안에서 살고자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우리는 메시아 예수에게로 잠기다 못해, 그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깊게 잠겼던 우리 아닙니까? 그 결과 그의 죽으심에 이르는 세례를 통해 그와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이것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온통 드러나시어 죽은 사람 가운데서 메시아를 살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된 삶 속에서 걷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이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가 '함께 새싹이 돋아난 사람'이라면, 또한 그이의 다시 사심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가 그리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못 박혔습니다. 비뚤어짐의 거대한 몸을 아무 소용없게하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비뚤어짐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죽었던 이가 비뚤어짐으로부터 벗어나 의롭다 산정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메시아와 함께 죽었다면, 그와 함께 살 것을 또한 믿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메시아께서 다시 죽은 적이 없고, 이제는 죽음이 결코 그의 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비뚤어짐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입니다. 이와b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비뚤어짐에 대하여는 죽은 자들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들로 산정하십시오, 메시아 예수 안에서.


로마서 6:12~14

  그러므로 여러분은 비뚤어짐이 여러분의 죽을 몸을 다스리지 못하게 해서, 몸의 욕구 아래서 조아리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여러분의 손과 발을 비뚤어짐 옆에 있게 마세요. 의롭지 않은 일의 무기가 되고 맙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곁에 있게 하세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산 자로서,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 곁에 있게 하세요. 비뚤어짐이 여러분의 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토라 아래 있지 않고 거저주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15~23

  비뚤어짐의 잘잘못을 가리는 토라 아래 있지 않고 거저주심 아래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어찌 막 비뚤어질 수 있겠습니까? 일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곁에 서서 섬기고자 하는 이의 말을 잘 듣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여러분이 곁에 서서 잘 듣고자 하는 자를 섬기게 된다 말입니다. 비뚤어짐을 섬기다가 죽음에 이르거나, 잘 듣는 이로서 섬기다가 '의의 판결'에 이르게 됩니다. 참으로 거저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 곁에 여러분들이 섬기는 이로서 있게 될 것입니다. 비뚤어짐을 섬기던 여러분들이 전달받은 가르침의 기초 위에서 가온으로부터 잘 들고자 했으니 말입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비뚤어짐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의(義)로 섬기는 이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의 욕구에 무력하니, 내가 사람을 예로 들어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음란과 무질서 곁에서 섬기는 이로 두어 혼란의 상태에 이르렀던 것과 같이, 이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을 '의'의 곁에서 섬기는 이로 두어 하나님닮음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비뚤어짐의 노예였을 때에는, 의로 얻는 새로운 삶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로 (도대체) 무슨 열매를 얻었습니까? 그 끝은 죽음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이 비뚤어짐으로부터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곁에선 노예가 되어, 여러분의 열매를 얻고, 하나님닮음에 이릅니다. 그 목적은 오는 시대의 삶입니다. 비뚤어짐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죽음이요,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것은 오는 시대의 삶입니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우리 주님이신.


7.


로마서 7:1~6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내가 모세 율법 아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세 율법이 사람의 사는 시간만큼만 다스리는 줄 모릅니까? 즉 남편 아래 있는 여인이 살아서는 그 남편에게 법으로 묶여 있으나, 그 남편이 죽으면 언제든지 남편의 법으로부터 벗어나 그 법이 쓸모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그녀는 간통녀라 불러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어, 그녀는 다른 남자와 관계하더라도 간통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도 율법 앞에서 메시아의 몸을 통해서 죽임 당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바로 그 분과 관계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모세 율법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몸 안에 있을 때에는, 율법을 통해 (드러나는) 견디기 힘든 비뚤어짐이 우리의 몸의 구석 구석에서 힘을 발휘하여, 우리가 죽음 앞에서 열매 맺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붙들어 놓았던 것 속에서 죽어버렸으니, 그 율법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격의 새로움 속에서 섬길 것이요, 글과 문법의 낡음 속에서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7:7~12

  그러면 우리가 율법이 비뚤어졌다 말하겠습니까? 일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비뚤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뚤어짐이 기회를 붙잡아 계명을 타고서 내 속에 온갖 탐심을 만들어냈습니다. 


  율법을 먹지 않으면, 비뚤어짐은 죽은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전에 율법에 떠나 있을 때에는 내가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명이 내 속에 들어오니 비뚤어짐이 다시 생기를 얻고, 나는 죽어버렸습니다. 즉 나를 참된 삶으로 이끄는 그 계명이 오히려 나를 죽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뚤어짐이 기회를 붙잡아 계명을 타고서 나를 완전히 속이고, 계명으로 나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좋으신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로마서 7:13~20

  그래서 하나님 닮은 것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일 없습니다. 다만 죄가 정말 비뚤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 닮은 것을 사용해서 나를 죽음의 영향 아래 두신 것입니다. 이는 죄를 (핑계를 댈 수 없는) 더한 죄에 빠뜨리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이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것을 알지만, 나는 살몸에 속하여 비뚤어짐의 노예로 팔렸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나도 가늠할 수 없는 힘 아래 짓눌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한단 말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때면, 나는 비로소 (내가 아니라) 토라가 선하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 아래 짓눌려 있는 것이 나였던 적이 없습니다. 내 속에 거주하고 있는 비뚤어짐만이 그러할 뿐입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속에 즉 나의 살몸 안엔 하나님의 닮은 것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맘은 있으나 온전을 이루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 닮음을 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실천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만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 일을 내가 한다면, 그 일을 이루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살고 있는 비뚤어짐입니다.


로마서 7:21~25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토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온전을 이루길 바라는 그 순간에도, 나에게 악이 함께 놓여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내 손과 발을 지배하는 이 또 다른 법도 봅니다. 그 법은 내 맘의 법과 대치하여 싸우며, 나를 내 몸이 바라는 비뚤어짐의 법 아래에 포로로 잡아옵니다.


  나는 무거운 시험에 빠진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반면,  살몸으로는 비뚤어짐의 법을 섬깁니다.


8.


로마서 8:1~11

  의심의 여지없이, 이제 메시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유죄판결이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삶 속에서 성령으로 이뤄지는 토라가 당신을 비뚤어짐과 죽음의 토라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살몸이 굳건치 않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에 속한 살몸 모양으로, 속죄제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살몸 안에서 비뚤어짐이 비뚤어졌다고 판결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살몸 따라 행하지 않고 숨결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토라의 정당한 판결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살몸을 따르는 자들은 살몸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숨을 따르는 자들은 그 숨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살몸의 생각은 죽음이요, 하나님 숨 생각은 삶과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살몸의 생각은 하나님과 맞서게 되니, 하나님의 법 아래 조화로이 있으려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몸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숨이 여러분 안에 거주하시면 여러분은 살몸 안에 있지 않고  숨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메시아의 숨결을 갖지 않으면, 그이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 만일 메시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살몸은 비뚤어짐으로 인해 죽은 살몸이요, 인격은 의의 판결로 인해 산 인격입니다. 또 만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숨이 여러분 안에 거주하시면, 메시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의 죽는 살몸 마저도 소생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거주 하시는 그의 숨결로 말미암아.


로마서 8:12~17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족 여러분! 우리가 빚진 사람들입니다. 허나 살몸에 빚진 것이 아니니 살몸을 따르는 삶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살몸을 따라 산다면, 죽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숨으로 몸의 짓거리를 죽이면,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숨에 이끌린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는 종의 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 되는 숨을 받았습니다. 그 숨결로 부르짖습니다, 아빠 아버지! 숨님 또한 우리의 숨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이들이라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메시아와 함께 공동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나타나고자, 그와 함께 고난도 받는 한 말입니다.


로마서 8:18~30

  우리가 따져보니, 지금 이 때의 고난은 우리에게 곧 정체를 드러낼 그 영광과 비교할 가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세계의 간절히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세계가 허무함에 굴복하는 것은 제 뜻이 그러한게 아니라, 오히려 굴복하게 하시는 이의 소망 때문인데, 그 소망은, 바로 창조 세계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아이들 나타날 때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조세계 전체가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산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거룩한 숨결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 역시 함께 속으로 슬퍼하며, 아들됨 곧 우리 몸이 새롭게 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소망으로 우리가 온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하기에, 끈기를 가지고 기쁘게 기다립니다.


  이와같이 숨님도 곁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즉 우리가 어떤 필요에 따라, 무엇을 기도해야할런지 알지 못해도, 숨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통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숨님의 생각하는 바를 아시는데, 이는 숨님이 하나님 (뜻)을 따라 씻어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함께 일하십니다, '좋음'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앞서 정하신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이들을, 그의 아들의 형상 본받을 사람들로 미리 정하셨다는 사실은, '그이'가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마침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31~39

그러니 이 일을 마주하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에 두시면 누가 우리를 아래 두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을 고발하겠습니까?

  그들을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비뚤어졌다 하겠습니까?

  메시아 예수께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어 놓겠습니까?

  우리를 둘러싼 압박이나, 죄여듬이나, 폭력이나,

  배고픔이나, 욕보임이나, 위험으로 내몰림이나, 칼입니까?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한 낮 내내 우리가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가 희생당할 양으로 여겨집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를 통해 압도적으로 이깁니다. 왜냐하면 내가 다음의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들이나 권력자들이나 현실 문제나, 앞으로의 문제나, 할 수 있음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우리 주 메시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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