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그렇기 때문에 제가 꼭 해야할 말이 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겠습니까? 그럴리 없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사람이면서도(심지어 포로기 시절에도 혈통의 순수함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베냐민 지파입니다), 제가 아브라함의 씨와 연결된 약속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엘리야의 그 유명한 이야기를 알잖습니까?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격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완악함이 극에 달해 목숨을 위협받자, 그저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 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하나님께 말하길 "하나님! 아합과 이세벨이 주의 예언자들을 죽였고,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라며 한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빵과 물을 먹이시고 쉼을 주셨다가, 그를 이끌어 위대한 출애굽 이야기를 재연하시지 않았습니까? 엘리야는 광야땅을 40일 동안 걷다가, 우리가 토라를 받았던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우상에 굴하지 않는 온전한 숫자의 사람들을 내가 남겨놨어." 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이 말씀이 엘리야에게 어찌 들렸겠습니까? 엘리야 뿐만 아니라 토라를 이루는 참사람이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토라를 받은 백성 이스라엘 중에 말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거저 하나님의 언약 프로젝트에 들어온 유대인이 오늘도 있습니다! 이 일에, 도덕적 우월함을 주장할 근거나, 순수한 혈통 따위의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거저 이뤄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토라를 이룰 것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거저 이루신 일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서만 언약갱신과 토라 이룸이 이뤄지며, 그 밖의 사람들은 완고해질 뿐입니다. 그 완고함에 대해서 시편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들에게 혼미한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또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밥상 공동체가 올무와 덫과 걸리는 것과 보복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이 흐려서 보지 못하고, 저희의 척추가 곧지 못하고 항상 굽게 하소서."

  그렇다면 이러한 넘어짐이, 완전히 고꾸라져서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란 말입니까? 일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내버려두심 속에 완고해진 것은, 그것을 통해 이방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고, 이스라엘에게는 질투를 불러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모든 민족에서 남은 자들을 온전히 모으게 할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의 실패도 이방인에게는 풍요로움이 되는데, 이스라엘 속의 남은자들이 다 채워진다면 그 풍요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방인 그리스도인 여러분들은 들으세요. 저는 이방인의 사도라는 저의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뚜렷이 봅니다. 나는 내 살몸인 사람들을 질투나게 해서 그들중 얼마라도 하나님의 언약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에 온세계에 평화를 이루는 십자가가 이루어졌다면, 그들이 메시아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남, 곧 부활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민수기에 기록된 제사에서 처음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나머지도 거룩하게 여겨지듯, 이스라엘에 남은 자가 있다면, 이스라엘 전체에게서 거룩의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거룩하니, 이스라엘 누구나 거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뿌리가 거룩하니 그 뿌리에 속한 모든 가지가 거룩합니다. (이 뿌리는 남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뿌리와 연결되어 있던 본래 가지가 꺾여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에 있던 가지들이 접붙임되어 뿌리와 연결되었고, 그 가지들이 뿌리로부터 진액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접붙임된 가지들은 떨어져 나간 가지들을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뿌리 때문에 가지가 살아있고, 가지는 뿌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접붙임된 나무 가지들은 말할 것입니다. "원래 붙어있던 가지들이 꺽인 것은, 바로 우리가 접붙임받기 위해서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신실하지 않아서 꺾였고 여러분은 신실함으로 언약 프로젝트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높이 갖지 말고, 오히려 두려하세요! 하나님이 본래 있던 가지고 엄중하게 다루셨는데, 여러분에게는 왜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베푸심과 엄중함을 보세요. 넘어진 자들에게는 엄중함이, 베푸심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베푸심이 있을 것입니다.(화장실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습니다.) 베푸심에 있지 않으면 여러분도 꺾여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신실함으로 돌아온다면, 다시 접붙임되어 뿌리와 연결될 것입니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죽은 가지도 뿌리와 연결시켜 살리는 "접붙임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가 때문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태어났을 때 속한 나무에서 잘려, 전혀 새로운 나무에 접붙임 되었다면, 그들은 날 때부터 그 나무에 속했었던 사람들이니, 그들의 접붙임은 당신들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이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 비밀을 알면 스스로 지혜있다 교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비밀은 이방인들의 완전한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이스라엘이 완악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방법으로 "모든 이스라엘"이 인간다움을 얻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흐르는 이가 시온에서부터 오리라. 야곱 중에서 하나님께 등돌린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며,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애버릴 때마다, 내 언약이 저들에게 이뤄질 것이다."

  즉 메시아는 '이스라엘에서부터' 오셔서 온세계로 전해질 것이고(아름다운 발을 통해서) 야곱 가문이라서 다 구원받는게 이니라, 그들 중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뚤어짐을 없애버리실 때마다, 앞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언약갱신이 벌어질 것입니다! 바로 신명기 30장의 포로생활 종결 말입니다. 비뚤어졌던 이가, 가온과 입이 새로운 숨으로 가득한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토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복음을 거절하는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따르는 우리의 원수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저들의 조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부르심은 신비하기만 합니다. 전에는 이방인인 여러분들이 설득되지 않더니, 이제는 이스라엘이 설득되지 않는 바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이제 이스라엘에게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설득되지 않는 것은, 이제 그들이 긍휼을 입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모든 인류에게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설득되지 않는 상태에 갇혀 있는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곧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진노와 심판 아래 가두셔서, 내버려두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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