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로마서 9:1~5 

  내가 메시아 안에서 참을 말합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거룩한 숨결 안에서 나와 양심이 함께 증언하는 것은 나에게 큰 슬픔이 있고, 내 맘에 사라지지 않는 걱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형제들 곧 살몸을 따라 나와 동류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메시아로부터 나 자신이 끊어져도 좋다고 내가 줄곧 기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들로 받아들여짐과 드러남과 언약들과 토라를 제정해주시고, 그 토라에 따른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있고, 살몸으로 따지면 메시아도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그이는 만물을 향해 계시며, 영원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입니다. 아멘)


로마서 9:6~29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로부터 난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가 '씨'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삭 안에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살몸을 통해 낳는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이 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돌아올테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뿐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을 통해 임신했는데, 그 사람이 우리 조상 이삭입니다. 아직 그에게서 자식들이 나오지도 않았고, 무슨 잘한 일이나 못한 일도 없을 때였지만, 선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부르신 이로부터 그녀에게 말씀이 있기를,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야곱은 내가 사랑하지만, 에서는 내가 미워했다" 함과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불의가 있습니까? 일 없습니다. 그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그러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너를 세운 이유이니, 곧 네 안에서 나의 힘을 나타내어 온 땅에 내 이름이 알려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뜻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뜻한 자를 완고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의 뜻에 맞설 수 없는데, 그 분은 어째서 여전히 사람을 나무라십니까?" 이 사람아! 감히 당신이 뉘기에 하나님께 맞서 반박하며 말하겠습니까? 빚어진 것이 빚은이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대하십니까?" 하겠습니까? 토기장이가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다른 하나는 귀함 없는 그릇으로 한 덩이 진흙을 다룰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뜻하셨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그 화를 나타내시어 자신의 힘을 나타내고자 하셨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부수려고 하셨던 화 그릇들에 대해서 아주 꿋꿋함으로 참으셨다면?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드러나기 위해 만드셨던 그 긍휼 그릇에 대해서는 자신을 풍성하게 드러내시어,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하신다면? 이 그릇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유대사람 뿐만 아니라 이방사람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호세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씨알아닌 자를 내 씨알로 부르겠고,

사랑받지 못한 이를 사랑받는 이라 부르리라.

또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말했던 바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이사야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아들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보존될 것이다.

주께서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이루시며 

속히 이 땅위에서 그 말씀을 행하시리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했습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소돔이 되었을 것이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로마서 9:30~33

  그러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를 따르지 않았던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으니, 이것은 신실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오히려 의의 (산정을 말해주는) 토라를 따라간 이스라엘은 토라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찌 그렇습니까? 신실함이 아니라, 행위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돌과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바위를 둘 것이니,

그에게 신실한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10.


로마서 10:1~21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내 간절함으로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는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인간다움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음을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결말이 확실히 드러난 앎'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앎이 없는 그들은, 자기가 생각한 의 세우는데만 애쓰고, 자신을 하나님의 의 아래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한 모든 자를 의롭게 하시는 메시아가 토라의 결말이신데도 말입니다. 


  즉 모세는 토라로 얻는 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토라의 계명들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계명들 속에서 살리라." 신실함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라거나

  (이것은 메시아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짓입니다), 

  '누가 심연으로 내려가겠느냐?'

  (이것은 메시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짓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합니까? 


  "말숨이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신실함의 말숨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당신의 맘으로 한 분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즉 맘으로 신실하여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저에게 신실한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의 한 주님은, 그이를 향해 소리쳐 부르는 모든 사람 속에 가득 차오르시어, 유대 사람이나 희랍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하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믿지 않았던 한 분을 어찌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과거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소식을 전하는 자 없이 어찌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없다면 어찌 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왕의 소식을 전하는 발들이여!"


  그러나 모두가 그 왕의 소식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주여,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믿었나이까?"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실함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메시아의 말숨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들이 정말로 듣지 않은 것입니까? 그러나 제 대답은 이러합니다. 아닙니다!


저들의 노래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저들의 말숨소리가 땅 끝까지 퍼졌다. 


  그럼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제 대답은 이러합니다. 먼저 모세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백성 아닌 자 곁에서 질투나게 하며,

내가 너희를 어리석은 백성 곁에서 성내게 하리라.


  이사야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나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 속에서 내가 찾은 바 되었고,

나에게 묻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또한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믿으려 하지 않고, 반박하기만 하는 백성에게 

내가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11.


로마서 11:1~10

  그래서 내가 마침내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버리셨습니까? 일 없습니다! 나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난 자이면서도, 베냐민 지파입니다. "하나님은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에 관해 기록한 것을 모릅니까? 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대해서 고발하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주여, 저들이 당신의 예언자들을 죽였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어버려서,

나 하나만 뒤에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 마저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엘리야에게 무어라 했습니까?


"나에게 내가 남겨둔 칠천 사람이 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지금 쫓는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그것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택하심을 받은 자는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반변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구멍난 인격을 주셨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리.

오늘날 까지도."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의 밥상이 

저들에게 올가미와 사냥 덫과 돌부리와 

(저들의 행위에 대한) 마땅한 보응이 되게 하소서.

저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저들의 등이 항상 굽게 하소서."


로마서 11:11~32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 완전히 고꾸라졌습니까? 일 없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비뚤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 이르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옆에서 그 구원을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의 비뚤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피폐함이 이방의 풍성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이 돌아왔을 때)의 풍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방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 사람의 사도인 만큼, 이 직무가 하나님을 나에게 뚜렷이 드러냅니다. (내가 할 일은) 어떻게든 나의 살몸이 옆에서 질투하게 해서 이스라엘 중에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거절함이 세상의 평화가 되었다면, 이스라엘에게 나아가 손내미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첫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덩이도 그러합니다. 게다가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합니다.


  그러나 만일 (본래 있던)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이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 나무인 당신이 품종 좋은 올리브나무 안에 접붙임되어 그 뿌리 양분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그 (잘려나간) 가지들에게 자랑하지 마세요. 만일 자랑한다해도, 당신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뿌리가 당신을 지탱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본래 있던)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임받기 위함이다." 맞습니다. 믿지 않아서 그들이 잘려 나갔습니다. 반면 당신은 신실함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십시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본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당신도 아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베푸심과 엄격함을 보세요. 타락한 자들에게는 엄격함이, 여러분에겐 그 베푸심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베푸심 속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여러분도 잘라 버리실 것입니다. 또한 잘려나갔던 이들도, 신실함 없는데 머물지 않으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접붙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저들을 접붙이실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본성을 따라 나는 당신도 야생 올리브나무에서 잘려, 그 본성을 거슬러 품종 좋은 올리브 나무 안에 접붙임되었는데, 본래 품종 좋은 올리브 나무의 가지였던 이 사람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기 자리였던 그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향해 지혜롭다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비밀은 역사의 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이방 사람들이 충만하게 들어오는 날까지 이스라엘에게 '마음의 굳어짐'이 있게 되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시온에서부터 '흐르게 된 이'가 오리라.

야곱에서부터 하나님께 등돌린 이들을 다시 돌아서게 하리라.

내가 그들의 비뚤어짐을 베어버릴 때마다

이것이 저희에게 내 언약을 따라 이뤄질것이다."


  복음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여러분들을 통해 원수가 되지만, 택하심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조상들을 통해 사랑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저주심과 부르심에는 뉘우칠만한 잘못이 없습니다. 그 결과 여러분도 전에는 하나님께 설득되지 않더니, 이제는 이스라엘의 설득되지 않음으로 긍휼을 입었습니다. 이와같이 지금 이스라엘이,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이에게 설득되지 않는 것은, 저희도 이제 긍휼을 입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설득되지 않음에 가두어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33~36

아, 깊도다!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여!

그의 심판은 헤아릴 수 없고,

그의 길은 찾아낼 수 없네.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으며,

누가 그와 '더불어 논하는 이'가 되었으며,

누가 그에게 미리 드려져, 그의 보답을 얻으리요?


이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와서 그를 지나 그에게로 감이라.

그 드러남이 그에게 세세토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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