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닮음'이라 풀어놓은건 선(善)이다. 그냥 뭐가 좋은지 싫은지도 모르는, 흔히 말해 착해빠진 사람 말고, 하나님을 닮은 사람. 하나님의 뜻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는 사람. 그는 매 순간 순간마다 현실을 넘어서는 판단으로 깨치고, 그러면서도 타인 위에 군림하고자 함이 아니라, 타인을 마음에 품는 사람. 그러한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공동체. 앞에서 바울이 말한바 대로라면, "할 수 있는 자"다.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자!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게 바울의 확신이다. 그러니 될 수 있다고 믿어버려!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믿지 않으면 시작도 없다. 자신이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일에 최선을 다할리 없잖아!
[2]
바울은 이제 로마서를 정리한다. 지금껏 그가 썼던 내용들은 그가 용기를 낸 것이다. 감히 쓴 것이다. 목적은 하나다. 다시 기억나게 하는 것. 사람들이 모르는 내용이 아니다. 믿고 소망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내용은 로마의 기독인들에게 전혀 특별한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이다. 끊임없이 기억하여 삶으로 녹여내야 할 진리다. 바울은 먼저 삶으로 녹여내기를 시작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거저'로부터 시작한 그는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기까지 진리를 삶으로 살아냈다. 그리고 그때 깨치고 마음에 품었던 말들을 지금 로마에 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군인으로 치면 임무다. 임무를 모르는 군인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전쟁터에서 우왕좌왕하는이를 참된 군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왜 사는지 모른채 여기 저기 그저 감각적인 만족에 따라 움직이는 이를 참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무를 맡았다 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다른게 아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리는 일이다. 바울은 이방 사람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그들을 죽인다는 말인가? 아니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숨줄로 거룩하게 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제물로서 하나님과 연결하여, 그 제물이 죽고 살게 하는 일이다. 마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을 제물에 하나님의 숨결이 부어지니, 제물이 새롭게 되어 아들이 된다. 이 일은 교황만 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믿는 이들의 직분이다. 왕같은 제사장들이여!
바울은 이 사역을 이제까지 잘 해왔다. 참으로 자랑할만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민족들이 하나님의 말에 경청하도록 하신다. 이를 위해서 바울은 말하고, 일하며, 때로는 그를 통해 표적과 경이로운 일들이 나타나며, 이 구절에 쓰지는 않았지만 고난받는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숨결 안에서 이뤄졌다. 참으로 자랑할만한 일이다. 돈도, 명예도, 자기 편 많음도 아닌, 자신의 전인생이 하나님 향해있음을 증언하는 그의 자랑은 정말 자랑이다.
[3]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랐을 것이다. 그의 말과 삶의 일치됨을 보고, 그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것이다. 바울 자신도 증언하기를,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흘러넘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역자가 있는 곳에서는 복음 전하는 일에 열심내지 않았다. 다른 이의 터 위에 집 짓지 않기 위해서. 곧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바울이 지나는 지역의 사역자들은 아마도 긴장했을 것이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이 모두 바울한테 붙으면 어떡하나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울은 그들 마저도 마음에 염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역자를 생각해서지, 이렇게 하라고 기록된 구절은 없다. 단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한 이들이 알게 될 것이요.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이들이 함께 모일 것이다."
'소식 듣지 못한 사람들이 알게 되고 모인다.' 이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모르던 사람이 알게 되고,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일이 무척이나 바빠서 바울은 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 성경에는 '서바나'라 기록되어 있다)로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지역에서의 사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기에, 다시금 스페인으로 방향을 돌리고자 한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 이 편지의 수신자인 로마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서, 부분적으로 채움을 얻은 후에, 그들의 도움을 힘입어 스페인에 당도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