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간 예언자(6:1~6)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가셨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했다.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어떻게 다 알까? 도대체 이 지혜는 어디에서 났을까? 어떻게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대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의 누이들도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지 않느냐?" 그들은 예수를 꺼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언자가 존경을 받지 않는 곳이 없는데, 자기 고향과 가족과 집에서만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몇몇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신 것 외에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가 없었다. 예수는 그들의 불신앙에 말문이 막히셨다.
예수께서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
1.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가셨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했다."
예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나,
문제는 우리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도, 예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의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알고 있다. 이것을 통해,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들의 정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간 했던 이야기, 오늘로 마가복음만, 19번을 설교했다. 그 19번의 이야기를 다음 다섯개의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아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 될 것이다.
1) 폭풍 전야-"세례요한", 왕의 노래, 세례, 성령, 사탄, 시험, 체포, 제자"군대 얘기, EMNT, BMNT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세례요한이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바로 이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이 왜 중요한가? 그는 역사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부르는 왕의 노래는 한 왕이 나타날 것을, 그 왕이 다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것을 예언하는 노래였다. 겨울에 수련회 가서 밥절 외우던 사람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세례요한이 불렀던 노래가 그 노래다.그리고 바로 그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다. 그리고 그 때, 예수께 성령이 임한다.그 이후 곧장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되고,이후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새로운 에덴을 보여주신다.그리고 요한이 체포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요한이 체포된다. 역사의 전달자였던 그가 체포된다. 왕이 오실 길을 예비하라 소리치던 자가 체포된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제자들을 부르신다. 이 제자들은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을까, 왜 세례요한의 체포와 맞물려 제자들을 부르셨을까.2) 예수는 누구인가?-"메시아"그리고 우리는 가버나움으로 향했다.여기서 예수는, 회당에서 귀신을 쫓으시고,전도하러 가셔서 나병환자를 고치시며,지붕에 뚫린 불행한 집주인으로 자신이 성전되어 중풍병자를 고치셨, 아니 용서하셨다.그리고 아무 뜻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 사건들은, 사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것은 우리가 앞서 만났던 사건들과 연결시켰을 때 비로소 보이는 새로운 의미다.예수께서 세례 받을 때 무엇을 받으셨는가? 성령이다. 성령은 곧 구약에서의 기름이다. 성령부음은 기름부음이다. 누가 기름부음 받는가? 세 직분 뿐이다. 왕, 선지자. 제사장.왕은 무엇을 하는가? 싸운다! 왕은 성서에서의 왕은 특별한 직분이다. 그냥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이 땅을 다스리는 자가 왕이다.이런 비유 많이 하지 않나, 부르스 웨인의 뜻 따라 저택을 관리하는 알프래도, 그가 왕이다. 성서에는 청지기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그 왕이 해야 하는 주된 일은 무엇인가? 전투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들과 싸우는 것이다.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싸우는 것이다.예수께서 권위를 가지시고 움직이시며 귀신을 쫓아낸다. 그는 왕이다. 그냥 왕이냐? 아니다. 분명한 근거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다.머리에 기름이 부어졌을 때 다윗이 왕이 된 것처럼, 그가 세례를 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이 땅의 왕으로 천명하셨다. 그 왕이 하나님의 권위로 전투하신다.하나님 뜻에 역행하는 것들을 일소하신다.머리에 기름이 부어지는 또 하나의 직분은 선지자다. 왕의 임무가 전투였다면, 선지자의 임무는 알림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소식, 새시대의 소식을 알리신다. 이것을 가리켜 '전도'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자리에 눌러앉아 세력을 키울 것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새벽에 자신을 찾아온 무리마저도 외면한채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알리시는 것이다. 마치 엘리야가, 이사야가, 예레미야가, 하박국이, 호세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소식에 가장 천대받는 자였던 나병환자가 새시대를 경험한다.왕이 전투, 선지자가 알림이었다면, 세번째 기름부음 받는 직책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제사장이다. 제사장이 하는 것은 용서다. 예수는 제사장이다. 곧 성전의 기능,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켜 사람에게 죄 용서를 선언하는 그 일을 하신다. 그래서 자기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에게, "니가 용서함을 받았다" 고 말씀하신 것이다.정리해보면, 예수는 세례 사건을 통해 성령이 부어졌고, 이 성령 부어짐으로, 예수는 왕으로서 전투하고, 선지자로서 알리며, 제사장으로서 용서하는 삶을 시작하셨다는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성서가 허투로 쓰인 구절이 없고, 하나하나 치밀하게 연결되어있음을 본다. 각각 개별적인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전체의 내용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전체의 부분들인 것이다. 그래서 에수께서 가버나움에서 벌이신 세 가지 사건, 즉, 회당에서 권위를 가지고 귀신을 쫓으신 사건, 전도하러 가신 사건, 중풍병자를 '용서'하신 사건은 예수가 기름부음받은 자임을 분명히 한다. 기름 부음 받은 자, 당시에는 이렇게 불렀다. "메시아"예수는 메시아인 것이다.3) 그 메시아가 오신 이유-"부르심, 자유, 안식"그렇다. 예수는 메시아다.이후, 마가복음은 그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는 싸우고 알리고 용서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예수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보여준 마가는, 이제 그 예수의 일이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음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먼저 그는 레위를 부르신다. 레위가 어떠한 사람인가? 그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자다. 레위가 자격있다면, 모두가 자격있는 것이다.즉, 예수는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아무 차별없이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싸우고, 알리고, 용서하시는 그 분이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이다.왜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가? 금식하게 만드는 포로의 족쇄를 분쇄하기 위함이다. 모든 이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이다.싸우고, 알리고, 용서하시는 그 분은 모든 사람을 불러서 그를 자유롭게 하신다. 모든 얽매여 있는 것에서 풀어주신다.왜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그들을 자유케 하시는가? 왜냐하면 메시아가 이 땅 가운데 오신 목적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이것은 타락의 반전이다. 에덴에서 쫓겨나 쉼을 잃어버린 인간을 다시 뒤집어 놓는 사건이다. 역사를 뒤집어서, 인간을 되찾는 것이다.부르고, 자유롭게 하고, 안식을 이루시는 것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다. 그가 싸우고 알리고 용서하시는 이유다.4) 대항하는 악, 새로운 12그러나 사람들은 이 것을 듣고는, 오히려 예수를 시험하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한다.빛이 드러나자 어둠은 그 '완악한 실체'를 드러냈다. 우리는 손 마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제자들은 계속 임명되었다. 완악함의 톱니바퀴는 쌩썡 돌았으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쉬지 않았다. 그 결과, 새로운 열둘이 탄생했다.이 열둘은, 메시아의 부름을 받은 열 둘이요,이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예수께 나아올 것이요,이들을 통해서, 모든 억압의 족쇄가 끊어질 것이며,이들을 통해서, 참된 안식이 전해질 것이다.이들도 예수와 같이, 이것을 위해서 싸우고 알리고 용서할 것이다.이러한 열 둘, 새로운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이다.그리고 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았는가 생각해보라.자살한 가롯유다 제외, 그리고 평생을 예수의 어머니를 모신 요한을 제외, 모든 제자들은 목숨을 내어놓아 순교했다. 싸우고, 알리고, 용서하느라 순교했다. 무엇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이 땅에 참다운 안식을 가져오기 위해. 바로 이 일, 예수의 일을 위해 이 사람들은 목숨을 내어놓았다. 왜? 이들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에 사도행전을 다룰 때 자세히 설명할 것이고, 우선 아직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 아직은 그저 풍랑 앞에서 벌벌 떠는 나약한 모습일 뿐이다.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자.5)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하나님 나라"새로운 열 둘이 모두 임명되었기에,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하신다. 무엇을 가르치셨나?이 땅에 마땅히 와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것이다.이 악한 시대를 뚫고 둘어와야 할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것이다.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안식을 줄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줄여서 이렇게 말한다."하나님 나라"이 하나님 나라를 이제 그 새로운 열 둘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이것이 최근 우리가 지난 몇 주간 확인했던 그림이다.비유는 총 네 개의 비유였다.예수와 바알세불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 받침대의 비유씨앗이 자라나는 비유이 비유들이 무엇을 보여주는가?
1) 악을 결박하신 예수, 2) 그 예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려지는 새 시대의 소식,
3) 그 소식은 예수가 역사의 등불이라는 것, 4)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자라남과, 주의 날, 그리고 부활.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만 알아듣게 말씀하신 뒤,
아직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 하며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또 제자들에게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시연해주신다.
이론에 이어 실전을 가르치는 유능한 교사와 같이,폭풍을 잠잠케돼지가 바다에 빠진 날혈루증 걸린 여자와그리고 가르침에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한다.야이로의 딸
하나님 나라를 예수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먼저는 악에 대한 설명이다.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악이 예수 앞에서 힘을 잃는다. 이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악이 힘을 잃으면 그 다음 무엇인가? 새 시대의 소식이 뿌려진다. 마치 시험에서 사탄을 이기신 예수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셨던 것 처럼, 악이 힘을 잃고 그 결과 새 시대의 소식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다. 악은 이 소식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악마는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를 죽여서라도 이 소식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소식이 누군가에게 혹은 당신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악의 1차전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악이 패배했기에 당신이 들을 수 있었다.
2회전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벌어진다. 악은 다시 한 번 이 새 시대의 소식을 말살하려 든다.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던지, 두렵게 만들던지, 걱정 투성이로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의 소식으로 살지 못하게 하려한다. 마치 이렇게 비유할 수 있으리라.
옛 시대의 법칙은 댓가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무도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옛 시대의 삶이다. 그런데 나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은 방글라데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그저 아무런 댓가 없이 내 돈 3만원을 다달이 주려고 한다. 엣 시대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어떻게 보이는가? 거들떠 보지도 말아야 할 미친 짓으로 보인다. 때로는 걱정스럽게 보인다. 너 그러다 니가 손해보는거 아니야? 만약 3만원이 아니라 한 사람이 30만원씩 내야 한다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 시대의 법칙은 무엇인가? 거저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다 거저 받은 것이니 거저 주는 것이다. 생명을 추구할 땐 그것에 나에게 줄 이익과 손해를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새 시대의 법칙이다. 이 소식이 여러분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악이 1차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2차전이다. 여러분의 완고함과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악이 승리하게 할 것인가? 생명이 사그라들게 할 것인가?
다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악이 결박되었다. 악이 수장되었다. 악이 바다에 처박혔다. 그 후 새 시대의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 소식을 가슴 속에 품은 사람이, 두려움과 걱정과 완고함을 이겨내고, 그 씨앗이 자라난다. 아무도 모르게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리고 주의 날, 그 사람이 열매를 맺는 날, 종국에는 죽음에서 몸을 일으킨 부활의 영광이 그에게 찾아온다. 악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주신다. 나약하지 않으며, 상처입지 않으며, 썪지 않는 영원한 몸으로 그를 다시 일으키신다. 그렇다. 부활이다.
이것이 동일하게, 거라사 지방의 귀신 이야기와, 혈루증 걸린 여자의 이야기와, 야이로 딸의 부활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악, 새 시대의 소식, 자라남, 부활.
악, 새 시대의 소식, 자라남, 부활.
악, 새 시대의 소식, 자라남, 부활.
악을 바다에 수몰시키신 예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새 시대의 소식
모르는 사이에 새 시대의 소식을 마음에 품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결과,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의 일어남.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이 땅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적인 일이, 하늘로부터 이 땅에 돌입한다.
에수를 믿는 각 사람과 사람에게.
길게 얘기했으나, 키워드별로 다시 추스려보자.
세례요한, 메시아, 부르심, 자유, 안식,
하나님 나라. 그 안에 악, 새 시대의 소식, 자라남, 부활.
예수는 이런 것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했다. 그것도 예수의 고향에서
2. 가르침을 거부함, 그 이유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가셨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안식을 가져오실 메시아가, 안식일이 되자 어김없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자신이 세례요한이 예고한 메시아라고, 악과 싸우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사람을 용서하는 메시아라고, 사람들을 부르고, 자유케 하시며, 안식을 주셨다. 악을 결박하고, 새 시대의 소식을 뿌리시며, 사람들을 자라게 하시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셨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했다. 예수의 고향에서.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어떻게 다 알까? 도대체 이 지혜는 어디에서 났을까? 어떻게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대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의 누이들도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지 않느냐?" 그들은 예수를 꺼렸다.
누가 말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친구든, 형제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누가 말하던지 간에, 이 예수의 가르침이 전파되는 그 곳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친구든, 형제든, 연이든, 가족이든, 당신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전해야 한다. 당신이 전하는 예수는 정말 예수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별볼일 없다고 예수 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기 예수의 고향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언자가 존경을 받지 않는 곳이 없는데, 자기 고향과 가족과 집에서만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몇몇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신 것 외에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가 없었다. 예수는 그들의 불신앙에 말문이 막히셨다.
예수께서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
3. 불신앙에 말문이 막히셨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에게, 자라남이 가능할리 없으며, 부활은 웬말이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에게, 새 시대의 소식은 결코 현실이 될리 없다.
불신앙에 말문이 막히셨다. 말씀은 생명인데, 그의 말과 숨이 더 이상 그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이 끔찍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가? 불신앙.
예수를 믿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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