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세례요한, 그는 역사의 전달자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구약은 예수를 만났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구약과 예수를 연결시키셨습니다. 이미 세례요한이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 일은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두 아이는 서로 어미의 뱃속에서 뛰놀았습니다.
1.
바로 그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부어주시는 기름, 그 기름은 곧 성령이었습니다. 예수의 머리 위로 성령이 부어졌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크게 기뻐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기름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럼 메시아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그는 싸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을 몰아냅니다. 그로 인해 이 아담으로 가득한 창조 세계 위에는 단 한 분의 왕만이 선언됩니다. 아담을 속였던 더러운 인격들이 그 왕의 전투에 벌벌 떨고, 도망칩니다. 다윗 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 땅을 다스리신다는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합니다. 사람들의 추앙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새벽녘 그를 찾아온 무수한 사람들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셨겠죠. 그러나 그는 가셨습니다. 역사가 기다려온 메시아가 마침내 이 땅에 나타났음을 전하기 위해, 그는 온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용서합니다. 병들고, 천하고, 약한 사람들, 비참한 삶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는 제물 하나 없이, 구멍 뚫린 자기 집에서, 중풍병자를 보고 "니가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까요? 마치 수능 시험에 시달려 근심 걱정 가득한 4년을 보낸 4수생에게 어떤 아저씨가, '너 대학 합격 되었다' 고 말하면,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겠죠. "당신이 무슨 권위로?"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사람들은 시험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입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
그 중에는 레위도 있었습니다.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하여도, 이 사람만큼은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받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받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이 바로 레위였습니다. 그런데 그 레위도, 가버나움에서 통행세 걷으며 비참하게 살던 레위도, 그 메시아와 함께 먹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당시 금식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눈 앞에 두고도, 아직도 메시아가 오지 않은 포로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금식을 그치고, 너도 나와 먹자' 말씀하십니다. '이제 낡은 시대와 함께 기울 수 없는 새 천을, 낡은 자루가 담을 수 없는 새 포도주를 그들은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이 땅에 진정한 '쉼'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람들을 피해 도망하는 자 예수로부터 이 인류의 완전한 쉼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뭔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등장하면 그저 미워하고 시기하고 자기 밥그릇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단종을 음해하려던 세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이순신을 모략하고 좌천시켰던 문중대신들이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장준하를 죽였던 권력의 손 길이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그 곳에서도 쌩쌩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베틀 위에서 하나님의 손 길은 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메시아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 메시아를 따르는, 역사를 뒤집을 새로운 열 둘을 선택하셨습니다. 바다를 건너 산으로 올라온 이들을 통해 진실은 드러나고, 악으로 창궐한 이 땅이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열 둘. 마치 지금은 없어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그 열 둘. 무식한 어부에, 친일파 세리에, 별별 사람 다 모였지만,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이 모으신 열 둘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비웃거나,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메시아라 주장하질 않나, 열 두 지파의 회복이라며 열 두명을 데리고 다니질 않나. 심지어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건 똥신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힘센 자가 묶였다고. 이제 힘센 자에게 빼앗겼던 생명을 다시 되찾아오는 일이 시작된다고. 이것은 똥신의 역사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고. 이것을 가로 막는 자는 결코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3.
그리고는, 이제 예수께서는 그 새로운 열 둘에게 그 성령의 역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십니다. 비유로 풀어서,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하십니다. 그 일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1. 농부가 씨앗을 뿌힌다.
2. 그 씨앗은 땅에 심긴다.
3. 단단하지 않고, 돌이 없고, 가시 덤불이 없는 땅에서만이 씨앗은 열매 맺는다.
4. 그 씨앗은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5. 추수되며 열매 맞는다.
이것은 이러한 의미였습니다.
1.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 자신이 그 농부였습니다.
2. 그의 입에서 새 시대의 소식이 나옵니다. 그 소식은 예수가 역사의 등불, 즉 메시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3. 그런데 그 소식은, 완악함과,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낸 사람에게서만 현실이 됩니다.
4. 그 소식을 받아들인 사람들 안에서, 그 소식은 은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뤄집니다.
5. 그 사람은 주의 날을 살게 되고, 마지막 날 추수됩니다. 그것은 곧 예수와 똑같은 결말, 부활의 영광이 그의 결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치 노련한 연극배우처럼, 계속 이 내용을 제자들에게 시연하십니다.
1. 거라사 지방의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아실겁니다. 다시 악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 예수가 그 일을 하셨습니다.
2. 그의 입에서 나온 씨앗을, 두 사람이 받아들였습니다.
3. 그들은 악하고, 두렵고, 걱정되었으나, 끝까지 그 씨앗을 붙들었습니다.
4.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씨앗은 자라났고,
5. 한 명은 12년간 앓았던 혈루증에서 나았고,
다른 한명은 12년간 키웠던 딸이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 소식을 가지고 예수와 제자들은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고향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지 않음에, 예수는 말문이 막히셨습니다. 예수의 말문이 막히므로, 그들은 씨앗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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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치신 이후에,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열두 제자를 보내시다(6:7~13)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내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압하는 권능을 주셨다. 예수께서 이렇게 지시하셨다. "여행을 위하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지팡이 하나만 가져가고, 빵이나 가방도 가져가지 말고 전대에 돈도 넣어 가지 말고, 신발만 신고 여벌옷도 가져가지 말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나가서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에게 증거를 삼아라."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했다.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
저는 가끔 집 밖에 나가다가, 가던 길을 돌이켜서 되돌아가곤 합니다. '아 핸드폰, 아 지갑, 아 교과서' 이런 식입니다. 한 번 나가려면 이것 저것 챙겨햐 할 것들이 있죠. 불과 어제도 아침에 교회오다가 뒷주머니에 지갑이 없음을 확인하고 씁쓸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행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지팡이 하나만 가져가고, 빵이나 가방도 가져가지 말고, 지갑에 돈도 넣어가지 말고, 신발만 신고, 여벌옷도 가져가지 말라'
제자들을 여기저기로 여행을 보내시면서, 지팡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상상이 됩니다. 예수께서 마저 말씀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아, 그러니까 니 것으로 살지 말고, 니가 방문한 집의 물건으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강도 아닙니까? 도둑 아닙니까? 마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나가서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에게 증거를 삼아라."
즉, 그들이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아도,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귀한 것을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길게 시간을 할애하여 배웠던 이 지금까지의 마가복음 내용입니다. 즉, 세례요한이 예언했듯, 예수님이 메시아시고, 그 메시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안식을 가져오시는, 악과 싸우시며, 진리를 말하시고, 사람과 하나님을 연결시키는 진정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새 시대의 소식이요, 완악함과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내고 그 분이 역사의 등불임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서 믿음이 자라날 것이요, 주의 날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결말로 부활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어느 집에 머물든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그간 있었던 일을 밤새 이야기하지 않았겠습니까. 마태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자신이 가버나움 세리로서 비참한 세월을 지내다가 예수를 따르게 된 일들을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어떠하겠습니까? 자신이 그물 던지고 있던 바닷가로 찾아온 한 남자에 대해서 얘기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이야기를 자기 집에서 경청했을 것입니다. 정말 그러냐고, 그가 정말 구약 성서가 예언한 메시아냐고 다시 반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확신에 찬 고개 끄덕임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집에 환자가 있고,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없이 길을 떠난 제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가 메시아 이심을 믿게 되었고, 제자들은 그 집 식구들과 같이 먹고 마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도 예수께서 하셨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전하고 있었고, 악을 몰아내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똥신의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미친 사람의 일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의 일을 하고 있는 새로운 열 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멀리서 헤롯도 들었습니다.
2.
헤롯의 추측(6:14~16)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헤롯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세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래서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헤롯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엘리야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예언자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헤롯은 "아니다. 그는 요한이다. 내가 그의 목을 베었는데 그가 살아났구나" 라고 말했다.
헤롯이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예수의 메시아되심을 말하고, 귀신을 쫓으며, 병자들을 고쳐준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세례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엘리야라고, 예언자라고 말해도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제자들을 통해 알려지는 예수의 이름을 듣고는, 세례요한의 부활이라며 사색이 되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헤롯과 세례 요한(6:17~29)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은 아는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보호했고, 그의 말을 자주 들었다. 요한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요한의 말을 즐겨 들었다.
어느 날 큰 잔치가 열렸다. 헤롯의 생일이었는데, 그가 고관과 장교들,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서 춤을 추자 헤롯과 그의 손님들은 크게 즐거워했다.
왕이 소녀에게 말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들어주겠다."
왕은 소녀에게 거듭 맹세했다. "내게 무엇을 청하든 내가 들어주겠다.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소녀가 나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서 소녀는 곧바로 왕에게 나가서 청했다. "지금 당장 이 쟁반에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담아 주십시오!"
왕은 당황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자기가 맹세한 말과 거기 모인 손님들 때문에 소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서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호위병은 가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와서 소녀에게 건내 주었다.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그의 시체를 거두어다가 무덤에 묻었다.
요한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자를 권력자들은 싫어합니다. 자신들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을 그들 자신의 악행을 혐오하는 것보다 더 혐오합니다. 그래서 장준하 선생이 죽었고, 조봉암 선생이 죽었습니다. 신숙주가 죽었습니다. 임경업이 죽었고, 조헌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권력은 진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목숨 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를 그동안 계속 없애왔습니다.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의 경우였습니다. 헤롯은 자기 형의 부인과 결혼했고, 이것은 근친이죠. 한 나라의 왕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을 때,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찾아가 이것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헤롯도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황을 돌릴 용기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인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고, 자기 딸에게 입에 담기도 잔인한 소원을 말하게 합니다. 세례요한의 머리는 그렇게 잘려나갔습니다.
역사의 전달자였던 세례요한, 예수님과 구약을 연결했던 세례요한은 그렇게 권력의 손에 무참히도 죽임당했습니다.
3.
그리고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역사의 전달자가 죽은 바로 이 지점.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세례요한과 같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아니 오히려 한층 발전된 메시지를 가지고 도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역사의 전달자들입니다.
권력자는 역사의 전달자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사실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이 부활해서 돌아다닌다고 착각할 만큼, 역사는 다른 사람들의 의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길러냈던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앞 뒤로, 역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행을 보낸 제자들의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 예수를 온 몸으로 전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요단 간너 베다니에서 외치던 그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왕의 길을 준비하라! 회개 하라! 동일한 메시지.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와 관계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역사의 전달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 역사의 전달자는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회개를 선언하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역사의 의미를 알아, 창세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엑 하나님 다스림의 소식을 전하고, 악을 몰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은 성령의 역사,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누군가, 다른 역사의 전달자에 의해서 이 일에 초대되었고, 오늘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을 부르십니다.
헤롯은 악인 이었으나, 그럼에도 진리를 말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의 말대로 세례요한은 부활할 것입니다. 왜요? 역사의 전달자들의 마지막 결말은 바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약속 받았기에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약속 받았기에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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