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5:1~8

from 예언들 2019. 7. 30. 07:54

찬송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에스겔 15:1~8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스무살이 되자 제사장 견습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10년간 견습 생활을 하고 나이 서른이 되면 제사장이 되어 성전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만, 스물 다섯이 되는 해에 나라가 침략당해서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서른에 그는 성전이 아니라 여전히 바벨론에 있었고, 지난 10년간 갈고 닦은 성전에 대한 지식과 수도 없이 연습했던 제사장 업무는 쓸 데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5년이 지나 서른 다섯이 되는 해에 그의 일터가 되었어야 했을 될 솔로몬 성전이 그의 일생에서 사라져버렸고, 같은 해에 갑작스럽게 부인과 사별했습니다. 이 사람의 인생을 옆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손에 넣어본 것 없는 비참한 인생, 자기 생각대로 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쓸 모 없어진 인생, 고향과 배우자를 잃어버린 외로운 인생, 여러분은 이 사람의 이름은 아실 것입니다. 바로 에스겔입니다.

 

  이 에스겔이란 사람의 인생은 이스라엘 패망의 역사를 관통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곧 자신의 멸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에스겔의 심정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깊은 절망에 사무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난하기 짝이 없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부어주셨고, 말 하게 하셨습니다. 실업자인줄 알았더니 갑작스레 고용되었고, 그는 이제 제사장이 아니라 예언자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패망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비탄과 아픔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자신의 이야기로서 남유다의 포로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짧습니다. 한 절 한 절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읽어봅시다.

 

에스겔 15: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성경 여기저기에서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긍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이 의미를 뒤집습니다. 포도나무에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에스겔 15: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얇고 덩쿨과 같은 포도나무로는 가구 하나 제대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에스겔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 이스라엘이 뭔가 쓸모가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에스겔 15:4,5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가뜩이나 쓸모없는 포도나무이니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은 이 포도나무가 양쪽이 불에 태워진 포도나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절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해서 모두 끌려갔고, 남유다 마저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으니 이스라엘은 양쪽이 불에 타버린 포도나무가 맞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갔던 남유다의 사람들 마저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니 양 쪽 끝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도 태워졌습니다. 이렇게 홀랑 타버린 나무로는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15:6,7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이 쓸모도 없고 타버린 포도나무를 불에 넣으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의 뜻에 맞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름 아닌 광야 같은 세상에서 포도나무가 번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세상 위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생명력 넘치도록 살아가는 모습을 모든 민족에게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 뭔가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민족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했고,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에스겔 15:8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이 포도나무 민족의 실패는 온 땅의 황폐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완성되는 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국 황무지에서 포도나무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쓸모 없어진 인간인 에스겔, 누구보다 절망했을 에스겔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말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에스겔과 같은 일이 이스라엘 안에서도 벌어질 것이고, 심지어 이방인들에게도 벌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른 뼈 같이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다시 열매 맺는 포도나무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이야기의 결과가 곧 우리 자신임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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