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깊게 읽는, 스데반의 '최후 변론' (1)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최후 변론을 낯낯히 파헤쳐봅시다. 뭔가 질문이 나오면, 바로 그 질문을 따라 삼천포로 빠져가면서! 

  여기 몸이 반쯤 땅에 묻혀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맞은 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을 들고 씩씩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이 돌을 저 땅에 반쯤 묻혀있는 사람에게 던질 기세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은 우리식 발음이고, 희랍식으로 읽으면 '스테파노스'라고 읽습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에 뜻이 있듯이, 이 사람의 이름에도 뜻이 있습니다. '면류관'이란 뜻이에요. 승리한 사람의 머리에 씌워주는 영광의 관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멋진 이름을 가진 스데반은 지금 투석형에 처하기 일보직전입니다. 투석형은 돌을 던져서 사람을 죽이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이 스데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투석형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6:11,14에 보면 나와있습니다.


사도행전 6:11, 개인번역

"이 사람이 말하는 속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사도행전 6:14, 개인번역

"이 사람이 그 거룩한 장소와 율법에 반대되는 말을 쉴새없이 늘어놓더군요.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가 '나사렛 출신 예수가 그 거룩한 장소를 무너뜨리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준 삶의 습관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이려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모세와 하나님을 비난했기 때문
2) 거룩한 장소(성전)와 율법에 반대되는 말을 했기 때문

그리고 그 말은, 

  -예수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수가 율법의 습관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스데반은 몸이 땅에 반쯤 묻혀있는데, 이제 이 스데반의 최후 변론이 시작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천천히 스데반의 변론을 읽어나가 봅시다.


사도행전 7:2~10, 개인번역


  "남자 형제들이여, 그리고 아버지들이여, 들으시오. 


  이런 말로 시작됩니다. "남자 형제들이여, 그리고 아버지들이여" 일단 그 자리에 여자는 없었나봅니다. 스데반을 죽이려는 사람은 온통 다 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 모세, 성전, 율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겠지요. 왜냐하면 스데반이 기소당한 이유는, 하나님, 모세를 비난하고, 성전과 율법에 반대되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요.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기의 순간에, 스데반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에 나온 건, 아브라함 이야기였습니다. 이상하죠?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스데반은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목격되었습니다, 

그가 하란에서 거주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그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하나님을 비난했다는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비난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그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스데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만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바로 "메소포타미아"입니다. 

  '포타미아'가 강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메소'는 '가운데, 중간'이라는 뜻입니다. 음악을 공부해본 친구들은 '메조포르테', '메조피아노'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에요. 이때 메조는 이탈리아 말인데 '중간', '가운데'란 뜻입니다. 이 '메조'가 '메소'에요. 그럼 메소포타미아는 무슨 뜻일까요? "강 가운데, 강 중간" 이겠지요. 지도를 보겠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두 개의 강 사이에 있습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만나는 지역입니다. '유프라테스(개역성경은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개역성경은 '힛데겔')' 강은 성경에 자주 나오니까 기억해두세요. 지도에서 확인해보면, 여기 두 줄기의 강이 만나는 지역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을 때, 그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후 하란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느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말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그 땅으로부터, 

  너의 그 가족들로부터 떠나라,   

  지금 내가 너에게 보여줄 그 땅으로(εις).”


  여기서 "너의 그 땅"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하나님은 이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지금 내가 너에게 보여줄 그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땅을 보여주지는 않고서 말씀하신 거에요. 그러니까 '어디인지 보여주긴 할텐데, 아직 안보여줄거야. 그런데 내 말을 믿고 메소포타미아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8, 개인번역

신실함으로 아브라함은 부름받았고
금세 상속지를 위해 취할 곳 속으로 나가라는데 잘 들었다,

그리고 그는 어디로 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갔다.


  그리고 가족들로부터도 떠나라고 했는데, 이게 잘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볼까요?

  그때 그 갈대아인들의 땅으로부터 떠나서 하란에서 거주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하나님은 그를 

여러분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로 이 땅 속으로 집옮기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그 갈대아인들의 땅으로부터 떠나서 하란에 거주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 나오는 갈대아인들의 땅이 어디일까요? 바로 메소포타미아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때 이후 이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을 세우게 되지요. 

  어찌되었든, 아브라함은 거길 떠나서 하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 하면,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에 가라고 했던 땅으로 이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지금 스데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바로 이 땅입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가나안,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이사시킨 그 땅은, 지금 스데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로마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바로 그 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 땅 안에서 상속을 주지 않으셨고

발의 자리(βῆμα)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알리셨습니다, 

그에게 그것을 그와 또 그와 함께 하는 그 씨에게 상속을 위해(εις) 주시겠다고, 

그에게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게, 아브라함을 약속하신 땅에 오게 하셨음에도,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두 발이 안정을 얻을 만한 조금의 땅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상속해줄게.' 그리고 이때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이 땅을 상속받는, 바로 "그 씨"입니다. 흔히 "자손"이라고 번역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만해도 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에게는 함께 상속받을 만한 씨가, 자손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씨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씨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셨습니다, 


  "그의 그 씨가 다른 곳에서 거하는 자가 될 것이고, 

  그들이 그 씨를 노예삼고 압제할 것이다, 400년 동안.

  그리고 노예삼는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할 것이며,”


  그 씨는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그 아브라함의 씨를 노예로 삼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할 것입니다. 무려 400년 동안.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무어라 대답하겠어요? 제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고 절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씨를 노예삼고 괴롭히는 그 민족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그것들 이후에 그들이 나올 것이고 나에게 예배할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리고 이상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이런 일들 이후에 "그들이" 나올 것이고,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즉 아브라함의 그 씨는 400년 간 종살이를 하다가, 그 종살이시킨 민족이 심판받으면 그 민족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겁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서 있는 가나안에서 말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서 있는 그 땅으로 그 씨가 돌아오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할례의 계약을 주었고 

그렇게 그는 그 이삭을 낳고 여덟 번째 날에 그를 할례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그 야곱을, 그리고 야곱이 그 열 두 족장들을.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계약을 주셨습니다. 할례는 남자들이 하는 포경수술 비슷한 것인데, 성기의 표피를 잘라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유대인들만의 관습입니다. 할례는 그저 표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그저 할례만 했다고 하나님의 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그 표시로 할례를 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자신도 할례를 받고, 큰 아들이었던 이스마엘도 할례를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할 때는 99세였는데, 이삭이 태어나기 1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이삭이 태어났고, 아브라함은 이삭이 난지 8일째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계보는 이삭에서 그 아들 야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야곱에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땅을 상속받을 씨로 임명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족장들이 그 요셉을 질투하여 이집트 속으로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환란들의 모든 것들로부터 그를 뽑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왕 파라오 앞에서 그에게 거저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파라오는 그를 이집트 위와 파라오의 온 집 위에 이끄는 자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은, 하나님께 땅을 상속받은 사람들인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답지 않게 아주 못된 짓을 벌였습니다. 동생인 요셉을 질투하여 이집트로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기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를 그 어려움으로부터 뽑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파라오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곧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스데반이 이 이야기를 왜 꺼낸 것인가요?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씨에 대한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그 씨가 다른 곳에서 거하는 자가 될 것이고, 

  그들이 그 씨를 노예삼고 압제할 것이다, 400년 동안.

  그리고 노예삼는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할 것이며,”

  "그것들 이후에 그들이 나올 것이고 나에게 예배할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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