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러분 하늘에 올라가 봤습니까? 우리는 만화나 영화에서 하늘에 올라가는 장면을 쉽게 봅니다만, 아마 2000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니었을거에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하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눈 앞에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직접 봤거든요. 예수의 승천입니다.

  우리가 보는 저 푸른 하늘도 하늘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보이지 않음'이기도 해요. 즉 예수님은 '사라지신' 겁니다. 그러나 없어지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세요. 그러나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만, 사라지신 그 예수님을 우주 대통령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할 때 외우는, "아버지께 있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예수님과 공유하시게 된 거에요.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다가, 마침내 모든 일을 이루고 사라지게 되었다면 무슨 말을 하겠어요. '나 간다?', '안녕~' 이런 시덥지 않은 말보다 뭔가 중요한 말을 남겨주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중요한 말은 예수님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의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러니까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이 중요할 수도 있어요. 예수께서 하늘로 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이 물어봤습니다.

  '주님, 바로 이 시간에 그 다스림을 이스라엘에게 돌려주시는 건가요, 아닌가요?'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해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척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로마를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이걸 두 글자로 줄이면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천'은 '하나님'이고, '국'은 '다스림'이에요. 하나님이 다스려주셔서 문제가 해결되는게 천국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예수님, 이제 로마가 망하고 천국이죠?' 마치 우리나라의 '독립'처럼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독립'과 다른 점은, 독립은 우리만 그저 혼자 서면 되지만 이스라엘이 되찾길 바라는 다스림은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다스림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왜 세상이 천국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은 단단히 오해했습니다. 세상이 천국이 아닌 것은, 로마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천국이 아닌 것은 로마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이 천국이 아닌 것은, 북한 때문도 아니에요. 세상이 천국이 아닌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 떄문에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못받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천국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자주 찾아옵니다. '전도사님, 쟤가 때렸어요. 전도사님 쟤가 저한테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사륵스를 살 것인지, 프뉴마를 살 것인지 말입니다. 생각나지 않아도 프뉴마를 선택하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미워하고 싸울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이, 정말로 천국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나와, 또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을 바로 저 사람 모두에게 말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못받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자기 자신이 사탄에게 팔렸기 때문이고, 사륵스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사탄에게 팔린 사람이 하는 말은 부활의 주님과 상관없는 말 뿐입니다. 따라서 바로 그 순간이야 말로 누군가 부활의 주님처럼 말하고 행동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도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7, 개인번역
귀 가진 자는 숨님이 에클레시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지어다. 이기는 이에게 내가 감춰진 만나, 즉 빛나는 흰돌을 줄 것인데, 그 돌에는 새로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받은 자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름이.

  숨님이 에클레시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이기는 사람에게는 감춰진 만나, 빛나는 흰돌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은 받은 사람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름입니다. 감춰진 만나, 빛나는 흰돌이 바로 역사 속에서 감춰져 있었으나,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마침내 보내주기 시작한 성령이에요. 그리고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새 이름을 받습니다. 마치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듯, 하나님은 사륵스인 윤재덕으로 저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프뉴마인 윤재덕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스라엘입니다.

  사륵스로 사는 나의 이름은 헌 이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이스라엘입니다. 사탄은 자꾸 우리를 헌 이름으로 속이려고 합니다. 거짓말이에요. 우리는 헌 이름으로 더 이상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름받을 에클레시아이고, 이 땅에 천국을 가져와야 할 이스라엘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친구들은, 이미 천국을 돌려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줄로 압니다. 천국을 사는 친구들, 매순간 천국을 붙잡으십시오.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천국을 돌려주기 위해서, 사탄을 이기신 예수를 따라 매순간 이기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씨앗 같은 그 천국은 이렇게 퍼져갑니다. 바로 이스라엘인 나 한 사람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에클레시아 여러분, 이건 쉽지 않은 거에요. 매순간 깨어서 프뉴마를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워지기 전까지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나 하나 때문에, 저 사람이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에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시간들과 시기들을 아는 것은 너희들에게 속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자신만의 권한 안에 두셨어'

  번역을 고쳐야 합니다. "시간들"이고 "시기들"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돌아가는 시기를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건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말을 바울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7:16
아내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남편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이 구절은 믿지 않는 아내와 믿는 남편, 혹은 믿는 아내와 믿지 않는 남편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시간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끝까지 섬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얼마나 답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한 가지가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사람이 구원받을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를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희들이 '그 힘'을 받게 될 것이야, 거룩한 숨결이 너희들 곁에 오시면.'

  이때 "그 힘"은 어떤 힘이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그 사람이 바뀔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그 힘이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그런데 이 힘은 그 사람을 금세 바꿔버릴 수 있는 마법과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견디고 있는, 바로 사랑으로 버티는 힘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랑으로 버티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힘을 주시는 성령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성령이 우리로부터 우리의 관계들을 타고, 넘쳐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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