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직장 경험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아, 여러분들께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든 저러한 사람이든, 성경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를 믿고, 함께 성경을 열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번 주에 들여다본 본문은 마가복음 12장이었습니다.
1.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막 12:26,2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여기에 보니,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들은 사두개인이라 불리우는 자들인데, 오늘날로 치면, 돈 많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 세상이 안바뀌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은, 죽어서 천국가는데 무엇이 나쁘다고 부활을 안믿을까 하지만, 이것은 부활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부활은 죽어서 천국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몸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말이거든요. 생각해보면, 세상이 안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에게 부활이라는 말은 청천벽력같은 말입니다. 세상에 안바뀌는 중에 가장 안바뀌는 것이 있다면, 바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안죽으려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먹고 살자고 살고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세상이 변할 것 아니에요? 생존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겠어요? 사두개인들은 그게 꼴사나웠어요. 그냥 가만히나 있지, 죽어도 죽지 않음을 믿고,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 있다는 사람들이 정말 꼴보기도 싫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그러한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셨냐면,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크게 오해했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부활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아는 것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성경도 하나님도 잘못 알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에서 부활에 관한 예를 하나 찾아 말씀하시길, 모세의 이야기를 하세요.
아니 모세의 이야기에 부활 이야기가 있나, 싶지만 예수님 말씀이니까 들어봐야 하는 거에요.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니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 벗으라 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시는데, 이렇게 소개하세요.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이 점을 잘 보라는 것이에요. 모세 시절이나, 예수님 시절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이나, 아브라함은 죽었어요. 그의 아들 이삭도 죽었어요. 그의 아들 야곱도 죽었어요. 이거 모르는 사람없고, 이 죽은 사람들 무덤은 너무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에요. 하나님이 이거 모르시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죽은 사람들 이름을 통해서 알리세요. 왜 생명의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죽은 사람들을 들먹여가며 알리시겠어요? 예수님은 그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것이에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 사람들은 죽었지만 죽은 것 아니에요. 하나님과 함께 있어요.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 다시 이 땅에 몸을 가진 진짜 사람으로, 혼백만 붕붕 떠다니는 귀신 말고, 진짜 사람으로 살려내실 거에요. 이게 부활이에요.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부터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실 하나님으로 소개하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세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어떤 사람들은 죽고 나서야 하나님과 상관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하나님에 대해서 크게 오해한 것이에요. 하나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지, 죽었던 사람들도 살려놓을만큼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지, 죽었던 사람들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음에 내어줄 만큼,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람이 누구냐하면, 바로 저와 여러분이에요. 그리고 우리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에요.
2. 나의 나됨은 은혜로 된 것이다.
다시 모세의 떨기나무로 돌아가보면, 하나님은 또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세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저는 이 번역이 꼭 들어맞는 건 아니라 생각해요. 이걸 영어로 하면, I am who I am 인데, 뜻은 나는 나다. 이런 의미에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기 소개를 흉내낸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바울이에요. 이 사람도 I am what I am. 나는 나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가 가진 성경 번역으로는, 내가 나 되었다. 이렇게 번역되는데. 세상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요. 다 나는 나다. 내가 대장이다. 내 말이 맞다. 내가 최고다. 서로 나나나 거리는 것이 세상이잖아요. 다 하나님 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바울은 나는 나다 했지만, 그 자기소개에 한 마디를 꼭 추가시켜요. 무슨 말이겠어요?
고전 15:10a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은혜로’라는 말을 붙여요. 영어로 하면, I am what I am by His grace. 진짜 나를 찾는 것은 나나 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에요. 진짜 나를 찾는 것은 자기 주장을 높인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죠. 그럴수록 자기 자신 잃고서 비참해져요. 바울 말맞다나 은혜로 하는거에요. 그런데 이 은혜라는 말이 참 모호해서, 이래도 은혜, 저래도 은혜, 좋아도 은혜, 싫어도 은혜라, 이것이 무슨 말일까 또 다시 가만 생각해보면,
바울이 지금 내가 나 인 것은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다. 라고 말할 때, 이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이에요. 고린도전서 15장은 한 가지 주제를 말하기 위해서 바울이 전력을 다하는 장이에요. 그 주제가 뭐냐하면, 바로 부활이에요. 즉,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그 몸을 바울에게 보여주셨고, 바울은 온 맘 온 힘 다해서 자신도 그 부활의 상을 잡겠다고 달려갔던 사람이에요. 이것이 은혜에요. 즉, 부활을 알고, 부활할 것을 바라며 달려가는 삶. 이것이 나에요. 진짜 나의 모습이에요.
3. 하나님이 보호하사
사두개인처럼 헤매다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서 변화된 사람이, 바울말고도 조선 땅에도 있었어요. 오늘은 그 사람을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개화기 때 갑신정변이 일어났잖아요? 갑신정변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 윤웅렬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아들이 윤치호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평생 유교의 가르침을 받다가, 갑신정변 실패 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날마다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내던 사람이었어요. 오늘 우리가 들은 이야기로치면, 이 사람은 사두개인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에요. 세상은 안변해. 다 포기해. 평생 양반집 아들로 살다가,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바꾸고자 했으나,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가, 그 무렵 조선에 들어왔던 선교사를 만나, 부활의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어요. 그리고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평생을 조선 사람 위해서 뛰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나중에는 독립신문 대표가 되기도 해요. 그러다 105인 사건에 연류되어 3년간 감옥살이도 하고 나중에 풀려나서는 YMCA활동도 참여하고 말년에는 한국 교회 연합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어요.
그런데 이 분은 성경 연구도 열심히 했던 신학자지만, 그 흔한 논문 한편도 내지 않은채 돌아가셨어요. 다만 딱 한 권. <찬미가> 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안에 자신이 직접 지은 노래가 한 곡 들어 있어요. 그 가사가 이래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하나님이 보호하세요. 그런데 저는 윤치호 목사님이 요즘 대한민국 미디어가 주구장창 떠드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보호되는 삶을 말했다고 조금도 생각이 안돼요. 왜냐하면 윤치호 목사님도, 저도 여러분도,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잖아요? 그 분은 산 자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이에요. 그 분의 보호는 죽음도 침범 못해요. 아니 오히려 그 분은 죽음을 꺾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에요. 부활을 믿으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보호에요. 그 안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찾으세요. ‘여러분 죽음을 이기세요’가 아니라 이겼어요.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예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잖아요. 그러니 그리고 그 말할 수 없는 보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우리, 부활을 기다리며 잠들 때에, 하나님 은혜 때문에 내가 나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기를, 정말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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