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요한계시록 18:9~24

  그리고 그녀와 더불어 포르네이아를 저지르고 사치를 부리던 땅의 왕들이 그녀에 대해서 울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 그녀의 타는 연기를 볼때마다, 제단에서 떨어져 서서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전율하며) 서있었고 말했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큰 성 바벨론, 강한 성, 한시간만에 너에 대한 심판이 왔도다."


  18장 후반부에서는 '에스겔 26~28장'과 '이사야 23장'이 인유되고 있습니다. 이 두 본문 모두 '두로(Tyre)'라는 도시의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해상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두로에 대해서는 '신화위키'에서 그 대략의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http://ko.mythology.wikia.com/wiki/두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 요한이 두로에 대한 예언을 바벨론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계시록이'두로'나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에 대한 내용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지칭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 두로나 바벨론은 구체적인 대상임과 동시에 저 구체적인 대상을 통하여 다른 구체적 대상을 바라볼 것을, 계시록은 주문하고 있습니다. 17세기 계몽주의이후, '진리'는 역사와 무관한 초시간적인 개념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는 있다한들 사람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악용되기 쉽습니다. 삶과 무관한 것이 삶보다 중요해졌을 때, 삶이 억압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신중해져야겠습니다. 계시록의 단어들은 우리에게 초시간적 진리를 말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족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의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몸으로 겪어나가고 있는 구체적 실체에 대한 언급입니다. 두로와 바벨론은 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 위한 좋은 구체적 사례들입니다. 계시록에서 구체(求體)를 떠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에스겔은 두로의 멸망은 예언하며 세 부류의 사람을 언급합니다. 왕들, 선원들, 상인들입니다.


에스겔 27:35, 36

섬에 사는 사람들이 네 소식을 듣고 놀라며, 그들의 왕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뭇 민족의 상인들이 너를 비웃는다. 멸망이 너를 덮쳤으니,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 '왕들'은 바벨론 도시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면서도, 이 바벨론의 패망을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미련을 놓치 못한 사람처럼 그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무너진 도시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여인이 타오르는 제단'에서부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같은 심판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는 심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은 우상숭배 정신과 불의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던 도시의 멸망을, 음녀가 제단에서 불태워지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한 시간'은 당시 가장 짧은 시간 단위이자, 이는 '시험의 때'를 가리키는 예수님의 용어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17:12,13
그리고 그 열개의 뿔들은 당신이 보고 있는 열 왕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취하지 않았지만, 왕들로서의 엑수시아를 한 시간동안 그 짐승과 함께 취합니다. 그들은 한 깨달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힘과 그들의 엑수시아를 그 짐승에게 줍니다.


  그리고 땅의 상인들은 그녀에 대해 울며 애곡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화물선이 어떤 시장에도 더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금과 은, 보석과 진주, 고운 모시와 자주색 옷감, 비단과 붉은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조각품, 고급 목재 그릇, 놋쇠, 철, 대리석, 계피, 동양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짐 나르는 짐승들, 네 발달린 짐승들, 말들, 바퀴달린 탈 것들과 몸들, 그리고...


  해상교역의 중심인 이 도시에서 어떤 물건들을 실어날랐는지 그 목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로의 심판을 예언한 에스겔 27장을 인유한 본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에스겔 본문과 다른 초점을 가지고 도시를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 27:12~25

너에게는 온갖 물건이 많기 때문에 스페인이 너와 무역을 하였다. 그들은 은과 쇠와 주석과 납을 가지고 와서 너의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이 바로 너와 거래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예와 놋그릇들을 가지고 와서, 네 상품들과 바꾸어 갔다. 도갈마 족속은 부리는 말과 군마와 노새를 끌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드단 사람들도 너와 거래한 사람들이다. 많은 섬이 너와 무역을 하였다. 그들은 상아와 흑단을 가져다가, 물건 값으로 네게 지불하였다. 네가 물품이 많기 때문에, 시리아도 너와 무역을 하였다. 남보석과 자주색 베와 수 놓은 천과 가는 베와 산호와 홍보석을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유다와 이스라엘 땅 사람들도 너와 거래를 하였다. 그들은 민닛에서 생산한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너는 물건이 많고, 생산한 물품도 많기 때문에, 다마스쿠스도 헬본의 포도주와 자하르의 양 털을 가지고 와서, 너와 무역을 하였다. 워단과 야완도 우잘에서 쇠와 계피와 창포를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드단은 말을 탈 때에, 안장에 깔아 놓는 천을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아라비아 사람들과 게달의 모든 지도자가, 너와 무역을 하였는데, 새끼 양과 숫양과 숫염소들을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하였다.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와 거래를 하였다. 그들이 최상품의 각종 향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을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시리아와 길맛 상인들이 너와 거래를 하였다. 그들은 화려한 의복과, 청색 겉옷과, 수 놓은 옷감과, 다채로운 양탄자와, 단단히 꼰 밧줄을 가지고 와서, 네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다시스의 배들도 네 물품들을 싣고 항해하였다. 너는 화물선에 무겁게 물건을 가득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에스겔은 '그 도시'와 교역했던 나라들을 말합니다. 이 나라들은 교역의 혈관을 통해 두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교역을 통해서 우상숭배적 권세를 휘둘러 얻고 있는 이익에 함께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조차도 두로의 힘을 인정하고, 두로처럼 되고자 하고 있는 상황을 에스겔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교역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화살은 교역의 중심지, '그 도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교역 물품들은 음녀 바벨론이 자신을 하나님처럼 꾸미기 위해 사용한 재료들입니다. 특히 보석류가 많이 나오는데, 이 보석류는 앞의 계시록 17장에서, 하늘 성전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패러디하기 위해 여자가 사용했던 것들입니다. 보석을 사용했다고 사치스럽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이 혐의를 벗지 못하실 것입니다. 보석이 문제가 아닙니다. 보석을 '무엇을 위해'사용했는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다룰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물음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바울 역시 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고기 먹는 행위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들을 고려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교역 물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이 물품들이 하나님께 맞서는 권세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단 한 품목, 그 한 품목만큼은 품목의 목록에 결코 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벨론이 바벨론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매매 품목이 될 수 없음에도,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호흡들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거칠게 내뱉던 당신이 여름(열매)은 당신에게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맛나고 빛나는 모든 것들은 당신에게로부터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발견 수 없을 것입니다. 


  '호흡'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프쉬케인데, '생명'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사람 안에 들어가고 또 나오며 사람을 사람되게끔 하는 작용이 프쉬케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제 호흡을 위해, 타인의 호흡을 빼앗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명 마저도 교역의 대상으로 삼고, 그렇게 사람들을 노예삼아, 그것을 근간으로 자신의 세력을 쌓아왔던 것입니다. 곧 그녀가 밟고 앉아있던 '물들'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도시의 호흡도 이제 끝장났습니다. '여름'이라 번역한 것은 '스포라'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전성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름'이라는 뜻이 파생됩니다. 그리고 전성기에 얻은 결과물인 '열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의미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호흡을 저당잡던 바벨론의 호흡이 이제 끝났다는 말입니다. 마치 갑자원 우승 후 갑자기 사라진 고교야구 에이스처럼,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바벨론은 한 시간만에 망했습니다. 


  바벨론은 맛과 빛이 필요했습니다. 즉 사람의 미각과 시각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모으는데 혈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사람들을 자신의 '물들'로 만드는 미끼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바벨론에 끌려가 자진해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빛나게 하고, 제 입맛을 만족시키는게 삶의 가장 중요한 이유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사람들 마저도 바벨론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바벨론은 더이상 볼만하지도, 맛있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의 상인들, 부유한 이들은 그녀에게로부터, 즉 제단에서 떨어져 서서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전율하며) 서있을 것입니다, 울며 가슴을 치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화로다, 화로다, 큰 성(도시), 세마포와 자주색 옷과 스칼렛 옷으로 입혀졌던, 그리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했던, 즉 한 시간만에 그러한 부유함이 파멸되었다."


  그리고 모든 선장과 모든 항해 장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이 제단에서 떨어져 서있었고 그녀를 사르는 연기를 보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저 큰 성 같으랴?"

  그리고 그들의 머리들에 재를 뿌리며, 그리고 울며 슬퍼하며 애곡하며 말하길,

  "화로다 화로다, 큰 성아, 네 안에서 바다에 배들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녀의 고귀함으로부터 부유했는데, 그녀는 한 시간만에 파멸되었다."


  그러자 큰 일이 난 것은 상인들입니다. 바벨론에 보기 좋고 맛 좋은 것을 팔며 부유해진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 앞에서 흐느낍니다. 그들에게 바벨론은 자신의 인생이었고, 삶의 추억이었습니다. 바벨론 없이는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선원의 언급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은 바다가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인데, 계시록에서 바다는 바벨론이 깔고 앉은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바벨론과 선원은 공범입니다.


  에스겔의 인유를 살펴봅시다.


에스겔 27:28~34

네 선장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해변 땅이 진동한다. 노 젓는 사람이 모두 배에서 내린다. 선원들과, 사람들이 모두 뭍으로 올라와서, 파선된 너를 애석해 하면서, 큰소리로 목놓아 울고,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머리에 티끌을 끼얹으며, 재 속에서 뒹군다. 네 죽음을 애도하여, 그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굵은 베 옷을 입으며,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파 울고 슬피 통곡할 것이다. 그들이 너를 애도하여 애가를 부르며, 네 죽음을 이렇게 슬퍼할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두로처럼 파멸된 사람이 누구냐? 네가 무역품을 싣고 여러 바다로 나갈 때에, 너는 여러 백성을 충족시켜 주었다. 네 많은 재물과 무역품으로 세상의 왕들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네가 파선되어, 깊은 바다에 잠기니, 네 무역품과 너와 함께 있는 선원이 너와 함께 깊이 빠져 버렸다.


  그러나 왕들, 상인들, 선원들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에 대해 기뻐하십시오, 하늘이여, 즉 거룩한 이들, 보냄받은 이들이여, 예언자들이여, 하나님께서 그녀가 우리에게 내린 심판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한 천사 하나가 큰 맷돌같은 돌을 들어올렸고 바다를 향해 던졌습니다, 말하기를,


  바로 거룩한 이들, 사도들, 예언자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에 아쉬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바벨론이 없는 양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삶의 건실한 토대가 아님을 주장해왔습니다. 오히려 바벨론을 의지했다간 망하게 될 것이라고 누누히 경고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 서서 바벨론의 페러디를 꿰뚫어봐왔던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자신을 치장한다한들,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소리쳐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 자신에 대한 증명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이 참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이 본문은 예레미야에 대한 인유로 가득합니다.


예레미야 51:48,49

...바빌론을 멸망시키는 자들이 북녘에서 밀려올 것이니,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빌론의 파멸을 보며 기뻐서 노래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때문에 칼에 죽은 것과 같이, 이제는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 사람을 칼로 죽인 죄로 쓰러져 죽을 차례이다."


  예레미야의 예언 속에서 죽임당한 이스라엘 사람이, 계시록 본문의 거룩한 이들, 보냄받은 이들, 예언자들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고난이 역전되어 바벨론이 죽을 차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계시록 6:10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고난받는 거룩한 이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기도의 결말입니다.


요한계시록 6:10

"언제까지, 거룩하고 참이신 주인이시여, 심판 않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우리들의 피를 떳떳하게 하지 않으시렵니까?" 


  맷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은 예레미야 51장의 인유입니다.


예레미야 51:63,64

수석 보좌관께서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책에 돌을 하나 매달아서, 유프라테스 강 물에 던지십시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이 곳에 내리는 재앙 때문에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다' 하고 말하십시오."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이다.


  악이 다시금 자신의 처소인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에서 올라와 땅을 괴롭게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이 내용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8:6

"나에게 신실한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톰 라이트는 이 구절을 '아동학대'로 읽었습니다. 어린이는 당대 사회 속에서 과부와 함께 가장 천시받는 부류였습니다. 집안의 재산처럼 여겨졌지 인격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의 저 말씀은, 누가 바벨론인지를 보여줍니다. 목에 맷돌을 매달고 바다로 돌아가야 할 사람은 곧 바벨론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가, 약하고 작아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식간에 큰 성 바벨론은 던져지리라, 그리고 결코 다시 발견되지 아니 하리라, 그리고 리라연주자들과 음악가들과 피리부는 이들과 나팔부는 이들의 소리를 네 안에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그리고 모든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네 안에서 다시는 발견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맷돌 소리를 다시는 네 안에서 듣지 못하리라, 그리고 등불 빛이 다시는 네 안에서 빛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으리라. 너의 상인들이 그 땅의 유명인사들이었다, 왜냐하면 너의 마술로 모든 민족이 그릇된 길로 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식간에 큰 도시 바벨론은 바다로 던져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 위로 짐승과 함께 올라와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다를 깔고 앉지 못하고, 그 아래 수장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는 더 이상 음악이 없습니다. 빛도 없습니다. 결혼도 없습니다.


     에스겔 26:13

내가, 네 모든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게 하겠다.

렘 25:10) 내가 그들에게서 흥겨워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신랑 신부의 목소리, 맷돌질하는 소리, 등불 빛을 모두 사라지게 하겠다.


에레미야 25:11

이 땅은 깡그리 끔찍한 폐허가 되고, 이 땅에 살던 민족은 칠십 년 동안 바빌로니아 왕을 섬길 것이다.



이사야 23장


  이것은 두로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울어라. 두로가 파멸되었으니, 들어갈 집도 없고, 닻을 내릴 항구도 없다. 키프로스에서 너희가 이 소식을 들었다. 항해자들이 부유하게 만들어 준 너희 섬 백성들아, 시돈의 상인들아, 잠잠하여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수확을 배로 실어 들였으니, 두로는 곧 뭇 나라의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너 시돈아, 너 바다의 요새야, 네가 수치를 당하였다. 너의 어머니인 바다가 너를 버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산고를 겪지도 않았고, 아이를 낳지도 못하였다. 아들들을 기른 일도 없고, 딸들을 키운 일도 없다."


  두로가 파멸되었다는 소식이 이집트에 전해지면, 이집트마저도 충격을 받고 낙심할 것이다. 베니게의 주민아, 스페인으로 건너가거라. 섬나라 백성아, 슬피 울어라. 이것이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던 도성 두로냐?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저 먼 곳에까지 가서 식민지를 세우던 도성이냐? 빛나는 왕관을 쓰고 있던 두로, 그 상인들은 귀족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이 우러러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두로를 두고 누가 이런 일을 계획하였겠느냐? 그 일을 계획하신 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온갖 영화를 누리며 으스대던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자들을 보잘 것 없이 만드시려고, 이런 계획을 세우셨다.


  스페인의 딸아, 너의 땅으로 돌아가서 땅이나 갈아라. 이제 너에게는 항구가 없다. 주님께서 바다 위에 팔을 펴셔서, 왕국들을 뒤흔드시고, 가나안의 요새들을 허물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녀, 딸 시돈아, 너는 망했다. 네가 다시는 우쭐대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서 키프로스로 건너가 보아라. 그러나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을 보아라. 백성이 없어졌다. 앗시리아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도성 바깥에 흙 언덕을 쌓고, 성을 공격하여, 궁전을 헐어 황폐하게 하였다.)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울어라. 너희의 요새가 파괴되었다. 그 날이 오면, 한 왕의 수명과 같은 칠십 년 동안 두로가 잊혀지겠으나, 칠십 년이 지난 뒤에는, 두로가 창녀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될 것이다.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너 가련한 창녀야, 수금을 들고 성읍을 두루 다니며, 감미롭게 수금을 타고 노래나 실컷 불러라. 남자들마다 네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너를 기억하여 모여들게 하여라.


  칠십 년이 지나가면, 주님께서 두로를 돌보아 주셔서 옛날처럼 다시 해상무역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 두로는 다시 제 몸을 팔아서, 땅 위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의 돈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두로가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소득은 주님의 몫이 될 것이다. 두로가 제 몫으로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두로가 벌어 놓은 것으로, 배불리 먹을 양식과 좋은 옷감을 살 것이다.


나훔 3:1~4

너는 망한다! 피의 도성!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 도성! 찢어지는 듯한 말채찍 소리, 요란하게 울리는 병거 바퀴 소리. 말이 달려온다. 병거가 굴러온다. 기병대가 습격하여 온다. 칼에 불이 난다. 창은 번개처럼 번쩍인다. 떼죽음, 높게 쌓인 시체 더미, 셀 수도 없는 시체. 사람이 시체 더미에 걸려서 넘어진다. 이것은 네가, 창녀가 되어서 음행을 일삼고, 마술을 써서 사람을 홀린 탓이다. 음행으로 뭇 나라를 홀리고, 마술로 뭇 민족을 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안에서 예언자들과 거룩한 이들의 피가 발견되었고 땅에서 살해당한 모든 이들의 (피도 발견되었습니다).


  살해당한 기독교인의 피가 아닙니다. "살해당한 모든 이들의 피"입니다. 그것이 바벨론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계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싸움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합니다. 이것은 법정입니다. 새창조의 하나님이 판관으로서, 반창조의 사탄과 그의 세력에 대해 최종적인 유죄판결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이제 억울하게 죽임당한 모든 사람들(이 안에는 순교자들도 포함됩니다)이 신원될 것입니다. 죽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게 아니라, 부활의 하나님께서 판결하셨으므로, 그 판결에 따른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8:9~24

  그리고 그녀와 더불어 포르네이아를 저지르고 사치를 부리던 땅의 왕들이 그녀에 대해서 울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 그녀의 타는 연기를 볼때마다, 제단에서 떨어져 서서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전율하며) 서있었고 말했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큰 성 바벨론, 강한 성, 한시간만에 너에 대한 심판이 왔도다."

  그리고 땅의 상인들은 그녀에 대해 울며 애곡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화물선이 어떤 시장에도 더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금과 은, 보석과 진주, 고운 모시와 자주색 옷감, 비단과 붉은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조각품, 고급 목재 그릇, 놋쇠, 철, 대리석, 계피, 동양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짐 나르는 짐승들, 네 발달린 짐승들, 말들, 바퀴달린 탈 것들과 몸들, 그리고 사람의 호흡들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거칠게 내뱉던 당신이 여름(열매)은 당신에게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맛나고 빛나는 모든 것들은 당신에게로부터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발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의 상인들, 부유한 이들은 그녀에게로부터, 즉 제단에서 떨어져 서서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전율하며) 서있을 것입니다, 울며 가슴을 치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화로다, 화로다, 큰 성(도시), 세마포와 자주색 옷과 스칼렛 옷으로 입혀졌던, 그리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했던, 즉 한 시간만에 그러한 부유함이 파멸되었다."


  그리고 모든 선장과 모든 항해 장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이 제단에서 떨어져 서있었고 그녀를 사르는 연기를 보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저 큰 성 같으랴?"

  그리고 그들의 머리들에 재를 뿌리며, 그리고 울며 슬퍼하며 애곡하며 말하길,

  "화로다 화로다, 큰 성아, 네 안에서 바다에 배들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녀의 고귀함으로부터 부유했는데, 그녀는 한 시간만에 파멸되었다."


  그녀에 대해 기뻐하십시오, 하늘이여, 즉 거룩한 이들, 보냄받은 이들이여, 예언자들이여, 하나님께서 그녀가 우리에게 내린 심판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한 천사 하나가 큰 맷돌같은 돌을 들어올렸고 바다를 향해 던졌습니다, 말하기를,

"이처럼 순식간에 큰 성 바벨론은 던져지리라, 그리고 결코 다시 발견되지 아니 하리라, 그리고 리라연주자들과 음악가들과 피리부는 이들과 나팔부는 이들의 소리를 네 안에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그리고 모든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네 안에서 다시는 발견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맷돌 소리를 다시는 네 안에서 듣지 못하리라, 그리고 등불 빛이 다시는 네 안에서 빛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으리라. 너의 상인들이 그 땅의 유명인사들이었다, 왜냐하면 너의 마술로 모든 민족이 그릇된 길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안에서 예언자들과 거룩한 이들의 피가 발견되었고 땅에서 살해당한 모든 이들의 (피도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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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7:1~8  (11)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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