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7日,

from 치부책 2016. 5. 21. 14:35

  어려운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신혼집에는 외간남자가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젠 그녀가 청혼받았던 그 일이 옛 추억으로만 느껴집니다. 바벨로니아의 포로로 살던 그 70년동안, 이스라엘은 과부가 된 것이나 나름 없었습니다. 과부의 삶이란 사람들의 편견에 둘러싸인 쉽지 않은 삶입니다. 오늘날도 그렇겠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살 길이 없었습니다. 노예가 되거나 몸을 파는 것 말고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성경에 고아와 과부를 잘 대해주라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 것은, 어쩌면 이스라엘 자신이 고아와 과부같은 포로기를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70년, 남편을 잃고 쫓겨난 여자마냥, 하나님을 잃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70년이었습니다. 그 70년 동안 이스라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 70년이 마침내 다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꼭 네 가지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청혼의 짜릿한 기억, 함께 살고 있음을 대번에 확인할 수 있는 성전, 신혼집인 땅, 그리고 하나님과 그곳에서의 삶을 설명해주는 계약 문서 토라.

1. 잃어버린 70년?

  일단 그 70년의 시작과 끝부터 확인합시다.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그 날이었습니다. 신부가 신혼집을 잃어버린 날이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날이었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던 시절, 예언자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9:10~14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쫓아 보냈던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너희를 모아 오겠다. 내가 너희를 포로로 보냈으나, 나는 너희를 그 곳에서 너희의 고향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예레미야가 말했던 70년이 지났습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는 포로 귀환 명령을 내렸고, 이스라엘은 본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든 기뻐하지 않든 고국 땅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허름한 제 2성전' 짓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들이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지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의 신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해결책 이스라엘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2. 세번에 걸친 포로 귀환

  총 세 번에 걸쳐 포로들이 다시 고국으로 귀환했습니다.

  1) 처음 이스라엘 사람들을 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은 스룹바벨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부터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성전은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성전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눈 보이는 성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게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성전을 못짓게 하려는 숱한 사마리아 인들의 방해공작이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만 갔습니다. 물론 그 옛날 솔로몬 성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다시금 이스라엘이라는 여인 곁에 남편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다 지어진 성전을 하나님께 드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지었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포로였고, 아직 이스라엘로 돌아온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페르시아에 남아서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은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보았던 에스더와 모르드개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성전만 덩그러니 세워진 황량한 땅에 누가 오고 싶겠습니까? 이스라엘을 고깝게 생각하던 이방 민족들은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으로 넘어와서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포로 귀환의 명령에 기쁘게 돌아왔던 사람들은, 오히려 페르시아에서 살던 때보다 고생 하게 되었습니다.

  2) 이 맘때 두 번째 포로귀환이 이뤄졌습니다. 이번에는 에스라라는 사람이 포로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에스라는 토라 선생님입니다. 땅을 되찾았다고 안심할 것도 아니고, 성전을 지어 남편이 옆에 있다고 결혼생활이 온전한 것도 아닙니다. 결혼이 무엇인지, 남편과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배움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참 적절한 때에 좋은 선생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둔 여인 이스라엘은, 토라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과부처럼 포로생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 여자와 결혼했던 것이 큰 죄로 부각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흐리멍텅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 똑바로 서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보세요. 다시금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말씀을 실천하는 것, 결혼은 바로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하나되는 것이 지금 이스라엘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실천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인데, 이것을 성경은 남편과 하나되는 아내의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즉 결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그림 언어인 것입니다.


  그럼 땅도 되찾았고, 성전도 다시 지었으며, 토라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둘러싼 성벽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잘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 이스라엘은 날마다 이방민족들의 약탈과 조롱에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이방민족이, 안으로는 성벽 짓지 말자는 반대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벽 짓는 일이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마치 남편과 다시 살게 된 신혼집에 문이 안달려 있는 꼴이었습니다. 제대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리 없습니다.

  3) 이 문제를 가슴 아프게 느꼈던 사람이 느헤미야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페르시아의 높은 관직을 맡고 있던 사람인데, 이 소식을 듣자 왕에게 청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 성벽 짓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로써 세번째 포로 귀환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이미 2차 포로 귀환 때 돌아온 에스라는 토라를 열심히 가르치던 중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함께 세번째 포로 귀환이 벌어졌고, 그들은 돌아와서 16년 동안이나 짓지 못했던 힘을 모아 52일만에 완공했습니다. 성벽이 충격적으로 빨리 완공되자, 주변 나라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이스라엘을 다시 봤습니다. 성벽을 완공한 이후, 느헤미야는 이스라엘로 돌아왔던 이들의 명단을 세었습니다. 이 인구조사는 무척 중요했기 때문에 성경에 실려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사람들이 다시금 '해결책 이스라엘'로 살아갈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주에 배웠듯이, 사람들은 에스라를 강단에 세워 토라를 배웠고, 또 완공된 성벽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상이 70년의 시작과 끝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입니다.

3. 포로기는 끝났는가?

  그리고 이 시절 활동하던 세 명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만 기억해둡시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 학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룹바벨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스가랴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이후 100년 뒤에 활동했던 말라기라는 예언자의 말씀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이스라엘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만일 제 2성전을 짓고, 성벽을 두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모든 일이었다면, 왜 이스라엘은 여전히 마케도니아, 시리아, 로마에 이르도록 포로생활을 했던 것일까요? 당시 사람들중 아무도 "이제 우리의 포로기가 끝났으니,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졌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성전은 다시 지었지만 여전히 포로였고, 예언자들의 외침은 계속되었습니다. 과부는 아직 남편과 하나되지 못했고, 그렇게 구약의 마지막 페이지가 닫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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