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우리는 지난 시간 사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악은 Anti-Creation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 생명을 정원사처럼 가꾸시며, 생명을 완성시키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를 망치려고 합니다. 생명을 둘러싸고서 질식시키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 사탄이 이스라엘을 붙잡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말씀을 덜어내고, 서로를 탓하게 한 뒤, 이방 제국들과 싸우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해결책인 이스라엘만 붙잡고 있으면, 이 땅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뤄지지 않으리라 사탄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스라엘을 악의 한복판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 뭐하고 살았는지 알려진 바가 없을 만큼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왕이 오신다고 소리치던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았으며, 그렇게 요단을 지나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이 아니면, 받지 않을 세례, 받지 않을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이스라엘과 달랐습니다. 그는 사탄을 이긴 사상 초유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사탄을 이긴 이스라엘. 사탄은 그토록 해결책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실패작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 새로운 이스라엘은 사탄이 감당할 수 없는 권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억누를 수 없는 이 이스라엘이 처음 했던 말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만일 이 하나님 나라(천국)을 죽어서 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이 예수님의 외침은 이상한 뜻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우리가 죽어서 갈 곳이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까? 그럼 우리가 모두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출애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예수의 출애굽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2층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출애굽에 대해서 배우기 전에, 이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외침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찌 들었을지부터 상상해봅시다.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을 통해서 말입니다.
1) 무엇이 악한 압제자인가?
2) 악한 압제자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3) 지금은 어느 때인가?
4) 여기는 어디인가?
5)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미 1)에 대해서는 확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제국을 ‘악한 압제자’라 보았으나, 예수는 그들마저도 악의 수장이 아니라 악의 노예임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인질삼아 이 땅의 생명을 말살시키려고 하는 그 실체를 보셨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2)를 살펴보기 전에, 3)부터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1. 현시대 : 전쟁과 성전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고, 예수님이 먼지 나는 팔레스타인 땅을 샌들 신고 거니실 때 이스라엘은, 이 새로운 출애굽에 대한 기대치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였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여기서 확인 – 안식의 증폭)
세례요한이 “이제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라고 선언했을 때, 무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으로 세례를 받으러 갔습니다. 이때 사람들 마음속이 어떠했겠습니까? 두려움 반, 기대 반, ‘이제 진정한 출애굽이 일어날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했던 출애굽과, 예수님의 출애굽이 달랐다는 데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우리가 익히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출애굽,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를 1) 힘쎈 인자 이야기 2) 폭력의 하나님 나라 3) 생존을 위한 성전 4) 분열을 낳는 토라 5) 우리의 왕국, 우리들의 하나님 으로 요약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장의 그림에 그려볼 것인데, 그러면서 배우지 않았던 것 하나를 더 추가할 것입니다. 바로 ‘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전쟁
이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그 옛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때와 같이, 이방 제국의 포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 제국을 파라오처럼 생각했습니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 여러 제국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로마는 가장 강력한 파라오였습니다. 그 로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서 이스라엘을 짓눌렀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안경은 ‘인자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힘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짓누르듯, 그 로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더 센 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 센 인자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자 이야기에 나오는 짐승처럼, ‘악’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고 있는 이러한 시대를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시대’. 짐승과 같은 악이 사람들을 다스리는,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짓밟히는 시대입니다.(개역성경에서는 ‘세상’이라 번역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현시대 속에서 극한의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시대를 끝장내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폭력으로 맞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렇게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오시고, 악이 심판받고, 마침내 짓눌렸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어, 이 땅에 참된 평화가 반드시 올 것은 올 것인데, 그것은 폭력을 통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폭력의 하나님 나라’에서 배웠습니다.
폭력이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3) 지금은 어느 때인가’에 집중합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 현시대가 끝장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문제는 ‘그 날이 언제 오느냐’이고, 그 날이 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두 가지를 기억해왔습니다. 하나는 그 현시대가 끝장나는 날에 ‘악한 압제자에 대한 심판’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 제국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더욱 믿으면 믿을수록 전쟁에 열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악한 압제자를 로마라 손가락질 했던 이스라엘은 그 ‘롬’이 이스라엘 발 앞에 떨어져 ‘물’이 되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스라엘 사람 생각하기에, 로마가 파멸되는 날이 악이 다스리는 현시대가 끝나는 날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2) 성전
악한 왕이 파멸되는 것과 함께 현시대가 끝장났는지 알 수 있는 다른 조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성전 깨끗’입니다. 이 성전의 상태를 보면 이스라엘이 포로인지 아닌지를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성전’에서 성전이 어떠한 역사를 거쳐왔는지 확인한 바 있습니다. 솔로몬이 다스리던 시절 성전은 그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고, 온 민족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뭐라고 하는 제국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경탄과 부러움의 시선이 있었지요.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포로가 되자 어찌 되었습니까? 성전은 이방 제국들에게 능욕당하고, 심지어 부서지기 까지 했습니다. 악한 압제자의 파멸에 이어, 이스라엘이 진정한 자유를 얻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바로 성전을 깨끗이 하여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시리아로부터 성전을 되찾아온 마카비 형제들을 기념 하는데에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카비 형제들이 시리아를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깨끗하게 해서 봉헌할 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현시대가 끝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성전 리모델링에 열을 올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전을 깨끗이 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이가 현시대를 끝장낼 메시아, 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오히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성전이 다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께 다시 드려져야,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의 종결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둡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악을 파멸시키는 일과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메시아가 와서 할 것이라 기대되었던 두 가지 미션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시대가 끝나길 바랐습니다. 이 일을 메시아가 이뤄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가 하는 일이란 이 두 가지, 악의 파멸과 성전 깨끗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요약하는 한 마디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말은 마침내 하나님이 오셔서 현시대를 끝장내시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신다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2. 오는 시대
만일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적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사람을 붙들고 “지금이 어느 때라고 생각하세요?” 물으면, “지금은 악이 다스리는 현시대가 아니오, 보면 모르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생각대로 인자가 와서 로마를 무찌르고, 성전을 다시 깨끗이 했다고 칩시다. 그럼 그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다음 그림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현 시대 다음 오는 시대를 가리켜 이렇게 부릅니다. ‘오는 시대’. 정리해볼까요, 인자가 오셔서 악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이 합니다. 이것으로 1) 짐승은 이 땅에서 사라지고, 2)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악이 다스리던 그 지긋지긋한 현시대는 이렇게 끝장이 납니다. 그리고 3) 악이 사라진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은 성전을 중심으로 새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가 바로 ‘오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해있었지만, 오는 시대가 마침내 왔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는 시대가 만일 정말로 온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오는시대가 되면, 마침내 출애굽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아브라함 약속도 다 지켜지는 것입니다. 출애굽으로 하자면, 1) 악한 압제자가 파멸되었고, 2) 포로생활은 끝나 자유를 얻었으며, 마침내 3) 약속의 땅을 차지했으니까요. 이 모든 일들이 0)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아브라함 언약으로 말하자면 1) 마침내 새 땅을 얻은 것이고, 2)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 나온 많은 자손들이 그 땅을 얻은 주인공들이 되며, 3) 바로 그 사람들이 복과 저주의 기준이 되어 성전을 중심으로 세상을 다시 다스리는 두 번째 아담들이 됩니다. 세상이 바로 잡히는 것이 오는 시대입니다. 타락이 해결되는 것이 오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 악이 사라진 오는 시대를 다스릴 아브라함 자손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들만 그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입니다. 자신들이 현시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로마를 끝장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의 승리와 성전봉헌을 통해서 그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갈망했습니다.
3. '영생을 얻다' - 부자 청년과의 대화
이렇게 배웠으면, 우리는 이제 다음의 짤막한 복음서 이야기의 한토막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8~27
어떤 지도자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생’이 바로 ‘오는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어떤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유대인이어야만 오는시대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오는 시대에서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죠?” 물론 그 전에 악이 파멸되어야 하고, 성전이 깨끗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도 아시고, 이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다.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저는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배운 것을 써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옆에 별표들이 있습니다. 이 별표들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오는시대로 들어갈 수 있느냐는 남자의 물음에, 우리에게 익숙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1층 이야기, 토라 이야기에 나오는 십계명입니다. 즉 토라대로 해야 오는 시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남자가 “저는 토라대로 어렸을 때부터 다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듣고 그는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토라대로 했다는 남자에게, 예수님은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런 다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라갔다면,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토라대로 살았다는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여기 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죽어서 천국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는시대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악이 심판 받고, 성전은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부자는 오는시대로 들어가 살기가 어렵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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