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난 이야기
우리는 지난 주 이혼에 대한 본문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이혼에 관한 본문이 아니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정치적인 문제이자,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한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의 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법 조항 안에서 움직인다고 해서 마음의 완악함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끔찍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완악함을 해결하고, 그 완악함이 만들어낸 피해자들을 돌보는 나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는 날, 하늘과 땅이 결혼하는 위대한 역사의 결말을 인류는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입니다.
젊은 부자 관원(10:17~31)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남자가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한 선생님, 오는 시대의 생명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도 계명을 알지 않느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맹세 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시고는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지 더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할 것이다! 그 다음에 와서 나를 따르라."
그는 이 말씀에 근심하더니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아주 부자였다.
예수께서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크게 놀랐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그들은 더욱 놀라서 서로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께서 그들을 가만히 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시다."
베드로가 말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와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땅을 버린 사람은 반드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자녀나 땅을 현 시대의 100배 이상 돌려받고 박해도 같이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시대의 생명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던 많은 사람이 뒤로 가게 되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오게 될 것이다."
1. 영생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혼을 통해 사람의 완악함에 관한 이야기, 그것의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고 다시 길을 떠나셨을 때, 한 사람이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이 남자가 자존심 버리고 예수께 꿇어 엎드린 이유는 바로 이것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선한 선생님, 오는 시대의 생명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예전 성경에 보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의 절실함이 오늘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다는 데 있지요. 이 사람에게는 백주대낮에 길거리에 엎어질 만큼 절실한 문제이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우리에게 이 질문은 도통 무슨 말인지도 모를만큼 어렵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덮어두고 살 것이냐, 그러지 맙시다. 알아봅시다. 무슨 의미인지 들여다 봅시다. 그럼 성령과 글자는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니 말입니다.
우리는 이 남자의 질문 중 언급한, ‘오는 시대의 생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이 이해되고 해석될 것입니다. 이 남자가 예수 앞에 엎드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두 가지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현시대'라고 부르는 시간표 입니다. 이 현시대는 악이 활개치는 시대입니다. 진리가 패배하고, 등쳐먹는 사람들이 이기는 시간이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손해보는, 힘겨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는 시대'라고 부르는 시간입니다. 유대인들이 오기를 갈망하던 시간입니다. 이 ‘오는 시대’가 우리나라 성서에는 '영생'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흔히 영원한 생명이 영생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새 시대. 그 새 시대에서 사는 것을 가리켜 영생이라 불렀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새 시대에서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 현시대에서 새 시대로 바뀌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서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부른 앞쪽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현 시대의)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이 현시대의 끝과 새 시대의 시작의 시점에 한 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현 시대는 끝이 납니다. 현시대를 점령했던 악은 심판받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악이 극성을 부리던 현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성서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바로 이 날, 새로운 몸을 입어, 일어납니다. 그리고 부활과 함께 새로운 시대, 즉, 영생을 맞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 자신들이 집단으로 부활하리라 믿었습니다.
유대인인 이 남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옳은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현시대가 끝나고, 오는 시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 저도 부활해서 그 새로운 시대를 살 수 있을까요?
2. 계명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도 계명을 알지 않느냐?"
여기서 선하다는 말은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의 부탁 잘 들어준다는 뜻도 아닙니다. 저는 예전에 ‘하나님은 선하시다’하면, 모든 부탁 다 들어줄 것 같은 할아버지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문화권에서 ‘선하다’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선하다’, ‘절대적으로 옳다’ 이런 의미였습니다. 즉, 선함은 신의 속성이었습니다. 사정이 급했던 청년은 하나님에게만 붙여야 할 말을 엉겁결에 예수께 붙였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예수님은 이점을 놓치지 않으시고, 젊은 청년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것도 십계명 제 3계명을 인용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선하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징을 일개 선생에게 왜 붙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새 시대의 삶. 영생을 얻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방법. 바로 계명입니다. 십계명.
계명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말씀하시고, 왜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분은 일부러 어려운 미션을 내놓고, 그것을 해낼수 있는지 없는지 위에서 웃으면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맥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안에 계명이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가 써있습니다.
지금 청년은 오는 시대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한 시대위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들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심술이 아닙니다. 혹은, 우리가 지킬수도 없는 법을 주어서 우리가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계명의 진정한 의미는, 계명이 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에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오게 될 새 시대를 미리 사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만약 누군가가 계명을 지킨다면, 그는 오게 될 새시대를 미리 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광복이 되기 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서 조선의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 될 것이지만, 이것은 더불어 미래를 사는 일입니다. 압제의 현실 속에 자유의 미래를 가져오는 일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명은 오는 시대, 새로운 시대의 삶의 방식이고, 그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미래를 미리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계명은 현시대에서 지키는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은 반드시 미래에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활로 말입니다.
3. 들켜버린 청년의 알리바이
다시 정리해봅시다. 여기 청년은 예수께 영생을 물었습니다. 영생은 오는 시대, 새 시대입니다. 이 오는 시대, 새 시대에서 사는 삶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요, 부활로 그 인정이 나타납니다. 즉, 이 청년의 질문은, “제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부활하여, 새 시대를 살 수 있을까요?” 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계명이었습니다. 계명은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을 미리 살면, 그 사람은 새 시대에서 인정받습니다. 일제치하 아래서 조선의 광복을 믿고 임시정부를 새운 사람들이, 광복 이후 독립 유공자로 훈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훈장이 바로 부활이요, 오고 있는 새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현 시대에서의 진리를 붙잡고 박해를 견디어냈다는 훈장을 받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청년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그 청년에게 다음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재치가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청년의 약점을 꿰뚫는 트릭을 쓰시거든요. 예수께서 나열하신 계명들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맹세 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미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너는 십계명 3계명을 왜 어기느냐로 답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언급하시는 계명은 우선 6계명, 7계명, 8계명, 그리고 속이지 말라를 그 안에 끼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9계명. 그리고 아마도 이 청년은 미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웃집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열 번째 계명이 빠져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청년은 예수께서 나열하신 이 계명, 즉, 오게 될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을 다 지키며 살아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즉, 이 사람 말은, 자신은 이 계명들을 다 지키는 사람이고, 즉, 이 악한 현 시대 속에서 새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를 보시고, 예수께서 사랑스럽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데 열심인 사람입니다. 자신이 새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뭔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와중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길 거리 한복판에 엎드려 있습니다. 이 갈증이 이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갈증은 새 시대가 도래 했을 때, 그 새 시대의 삶을 살지 못할까 두렵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지 더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할 것이다! 그 다음에 와서 나를 따르라."
그는 이 말씀에 근심하더니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아주 부자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이 청년, 즉, 십계명, 6,7,8,9, 속이지 말라, 5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청년, 새 시대를 살고 있는데 불안하다고 말하는 청년에게 예수는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 사람이 하늘의 차원에서 귀한 것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나서 예수의 순회 사역에 동참하라는, 즉, 제자가 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의 풍요로움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이것 저것 새 시대의 삶의 방식을 산다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이 갈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하나의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가 6계명, 7계명, 8계명, 9계명, 5계명 다 지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느끼는 것은, 그가 1계명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 즉, 이 청년의 실상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풍요로움을 섬기고 있었음이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여, 예수께서 이 청년에게 왜 십계명에도 없는 ‘속이지 말라’라는 말씀을 서두에 집어넣으셨는지도 분명해집니다. 지금 이 청년은 자신도 예수도 속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부유함을 더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계명을 지키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 청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의 삶을 살고 싶지만, 정작 자신의 풍요로움을 버릴 수 없는 이 사람, 결국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를 따르라는 그 말씀에 절망하여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하면 새 시대를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얻을 수 있다는,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저버리고 돌아섰습니다. 그는 속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풍요로움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갖가지 계명 지키기에 열심이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계명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새 시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대인데, 하나님 보다 풍요로움을 더 사랑하니, 그에게 새 시대를 살지 않는 것 같은 불안감이 그를 덮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4.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고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크게 놀랐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구절의 바늘귀는 ‘바늘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의 성읍들은 두 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낮에 사람이나 짐수에등이 다니는 큰 문이었고, 다른 문은 밤에 사용하는 문으로, 사람은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낙타는 등을 구부려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쪽문을 말합니다. 이 문 이름이 ‘바늘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이 청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부자는 새 시대의 문턱에 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래를 사는 현재가 그의 눈 앞에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 예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영광스러운 여정을 시작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대로, 그는 더 이상 영혼의 목마름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들이 그의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좁은 문을 지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짐이 많아서 좁은 바늘문을 통과할 수 없는 낙타처럼, 그는 오는 시대의 성읍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짐을 짊어진채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그렇게 그는 현 시대에 남아 있습니다. 그가 자신이 가진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이상, 그는 새 시대를 살 수 없습니다.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녕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떠듭니다.
그들은 더욱 놀라서 서로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께서 그들을 가만히 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시다."
이 말은 이런 것이죠. ‘아니,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니 이것이 가능한가?’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을 가만히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가만히 보시는 시선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 역시 부자 청년처럼 무언가를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시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새 시대를 살게 됩니다. 버리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질급한 베드로가 나섭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와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땅을 버린 사람은 반드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자녀나 땅을 현 시대의 100배 이상 돌려받고 박해도 같이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시대의 생명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던 많은 사람이 뒤로 가게 되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오게 될 것이다."
예수는 분명 말씀하십니다. 현시대와 오는 시대. 이 현 시대에서 나와 복음 때문에 집을 버린 사람, 형제를 버린 사람, 어머니와 아버지를 버린 사람, 자녀를 버린 사람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돌려주십니다. 그것도 현 시대의 100배로 돌려 받습니다. 마치 욥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박해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마치 욥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는 사람들의 현시대 속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버리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려 받을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100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의 삶속에서 엄청난 것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오는 시대. 미래가 현실을 뚫고 이 사람의 인생으로 돌입합니다. 이 사람의 삶에 새 시대의 삶이 시작됩니다. 즉,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앞에 있던 많은 사람이 뒤로 가게 되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오게 될 것이다."
자신은 계명을 지킨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 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부자청년처럼 뒤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미 그 새 시대를 누리며 현 시대의 박해를 견디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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