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가르침(10:1~16)

  예수께서 그 지역을 떠나 요단 강 근처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 큰 무리가 모여들었고, 이번에도 예수는 늘 하시던 대로 그들을 가르치셨다.

  몇몇 바리새인들이 다가와서 물었다.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해도 됩니까?"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려고 이 질문을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했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아내와 헤어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그러한 명령을 준 이유는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고 그러므로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을 때에 제자들이 이것에 대해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자기 아내에 대해 간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것을 보시고는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내게로 오게 내버려두어라!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않는 사람은 결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께서 아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해주셨다.



1. 예수께 이혼을 묻는자들의 꿍꿍이



  여기는 요단강입니다. 강줄기가 흐르는 소리를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이 자리. 사실 이 자리는 얼마전 까지 '소리'로 가득했던 곳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요단을 지나시면서, 마치 죽은 아들의 빈 방을 들어가는 듯한 부모의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요한과 예수는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나 지금 세례요한은 이 자리에 없습니다.





  자신을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며,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소리쳤던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죽임 당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헤롯 안티파스'라는 왕(이 사람은 헤롯의 넷째 아들입니다)은 자신의 동생(다섯번째 아들, 빌립)의 아내, 즉, 제수씨와 결혼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아마도 헤롯은 헤로디아의 미모에, 그리고 헤로디아는 헤롯의 권력에 반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그렇게 부적절한 결혼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전 이미 이스라엘의 정치권에서는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어쨌거나, 한 나라의 왕인데, 그 왕이 제수씨와 결혼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 그러나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세례요한은 불의를 폭로했습니다. 다 알면서도 하기 어려운 말, 헤롯과 헤로디아의 결혼은 옳지 않다고 말한 것이죠. 즉, 그들의 이혼을 말했습니다. 이것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자기 딸로 하여금 헤롯에게 청하여 세례요한의 목을 선물로 달라는 끔찍한 소리를 하게 합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는 그렇게 욕망과 권력의 톱니바퀴 사이에서 죽음으로 입막음 당했습니다.


  그 세례요한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를 예수께서 걸으십니다. 그리고 또다른 위협이 그에게 닥칩니다. 몇몇 바리새인들이 와서는 예수께 이렇게 질문한 것이죠.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해도 됩니까?" 


  이 질문의 저의를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세례요한이 걸렸던 덫에 예수도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이혼하면 안된다고 말하면, 헤롯 안티파스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 예수께서 이혼해도 된다고 말하면, 그들은 그들이 쓰기 좋아하는 다음의 카드를 꺼낼 것입니다. 그 카드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혼을 해도 된다고 말했거든요. 따라서, 예수께서 이혼을 불허하시면, 예수는 모세를 반대하는 사람, 즉, 율법의 반대자가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빠뜨리려고 합니다. 덫입니다. 사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로마를 싫어한다 말하지만, 그 로마의 동전으로 물건을 거래할 수밖에 없는, 출애굽을 말하지만 정작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않은 그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예수께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2. 모세가 우려했던 자들이, 모세를 들먹이며



  오히려 예수께서 역공을 펼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했느냐?"


  그들은 아마 이 질문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예수는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와 헤어지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모세의 이혼증서를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했겠습니까? 이혼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사회는 여성 착취가 일반이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많은 여성은 이혼당했고, 이혼당한 여성은 홀로 생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의 이혼증서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과 비슷합니다. 제가 요새 <왕가네 식구들> 이라는 드라마를 봅니다. 이 드라마에서 자기 부인보다 돈 많고 이쁜 사람이 나타나자, 자기 부인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오만석이라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 처음에는 장모님 앞에서 자기 부인 괄시하지 말라고 눈물을 쏟으며 일갈하던 사나이였으나, 곧 돈에 대한 욕심과 여자에 대한 욕망에 눈이 멀어, 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서 삽니다. 그런데도 이태란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실낯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혼 안해줍니다. 이 남자의 무기는 이태란이 도장 찍어준 이혼 합의서입니다. 빨리 이혼해서, 돈 많은 여자와 함께 요트 타고 여행하면서 사는 것이 이 남자의 꿈입니다. 그래서 이 이혼 합의서를 들고, 일요일인 것도 잊은 채 법정에서 부인을 기다립니다. 법적인 과정만 거치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며, 빨리 법원으로 오라고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결혼한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오늘날, 법은 이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럼 법적 절차만 거치면 그 사람은 문제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진정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까?





  모세가 사람들에게 이혼하려거든 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 한 법은 이혼을 조장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이혼증서를 쓰기까지 여러가지 까다롭고 엄정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여자는 성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을 했을 경우에만 이혼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이혼한 부부가 다시 재결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일이라 했습니다.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면서 이혼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혼을 무겁고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셋째로 이혼증서를 받은 여자라면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은 이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는 모세의 의미를 완전히 거꾸로 읽고 있습니다. 이혼을 어떻게든 최소화 하면서도 여자의 삶을 보장하려는 모세의 의도는 온데간데 없이, 법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본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의 층은, 이혼증서만 있으면 이혼해도 된다는 사람들은 헤롯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세의 법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이혼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죽이고 제수씨를 욕망하는 헤롯과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욕망을 가리켜 간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를 들먹였지만, 정작 모세가 우려했던 간음하는 모습들을, 그들 자신의 삶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내면에 죄가 있습니다. 이것이 쌓여갑니다. 나는 법에 저촉되지는 않았는데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3. 모세를 바르게 읽는 법



  그들에 대한 예수의 지적이 적실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그러한 명령을 준 이유는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고 그러므로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모세가 그 옛날 '수치스러운 일을 한 여자에게 한하여, 이혼증서를 주어 재가할 수 있게 한후, 이혼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이혼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드렸습니다. 오히려 이혼을 어렵게 합니다. 나의 처가 내 맘에 들지 않아, 그냥 냉대와 푸대접으로 일관하던 남자가 이혼을 결심했다고 가정합시다. 만약 모세의 율법이 없었다면,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는 어려운 일이 됩니다. 반대로 이혼하려던 남자에게 모세의 율법이 어떻게 적용될지도 생각해봅시다. 우선은 자기 여자가 수치스러운 일을 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수치스러운 일은 성적인 범죄행위, 간음입니다. 간음을 저지른 여자에게 남자는 이혼증서를 써주는 아량을 베푸는 수고도 감내해야 합니다. 당장 인연 끊고 이 끓어오르는 배신감을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는 이혼을 원한다면, 그 여자가 다시 재가할 수 있도록 하는 이혼증서를 써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그러한 명령을 준 이유는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 이혼증서의 법을 받은 이들은 범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범죄자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모세의 법이라는 감방 안에 가두어 놨습니다. 그 법 안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를 가둔 목적입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에게 왜 이러한 법이 주어졌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이 법을 이용합니다. 마치 그 감방 안에서 어떻게 범죄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감방 안에서는 괜찮지'라고 말하며, 그 안에서 더 무겁고 끔찍한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이 법의 의미에요'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범죄자들이 모세의 법을 완전히 잘못 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이 모세의 법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입니다. 창조와 상관없이 모세의 법을 읽는 것은, 알파벳을 배우지 않고 영어를 읽어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떠한 그림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욕망의 투사일뿐 진정한 의미일리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창세기를 인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이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가 합하여 한 몸이 되게 하셨다는 구절 말입니다.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는 구절 말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뜻이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 창조의 뜻따라 살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혼증서는, 악한 그들이 더 악해지지 않도록 그들을 묶어두는 일종의 사슬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혼이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즉,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 이혼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자기 아내에 대해 간음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혼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싫어합니다. 자신들은 간음이라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법을 지켰다 말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이야기합니다. 이혼은 창조의 뜻이 아니다.(따라서 헤롯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혼을 허용한 것은 너희가 완악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모세를 운운함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혼법은 너희의 완악함을 고쳐줄 수 없다!(이것이 모든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세를 들먹일지언정, 모세가 말한 법을 어긴 사람들이 바로 모세를 어기는 사람들, 즉, 간음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창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뜻은 일관됩니다. 그 뜻은 한결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세는 왜곡되어 읽힐 뿐입니다. 성서는 언제나 그대로 입니다. 다만 왜곡되어 읽힐 뿐입니다.




4. 희미하게 드러난 역사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들을 꾸짖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러한 제자들에게 화를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것을 보시고는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내게로 오게 내버려두어라!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않는 사람은 결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께서 아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해주셨다.


  이혼을 했을 때,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당사자들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원인과 가까이 있습니다. 그 원인과 상관없이 억울하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헤롯과 같이 욕망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을 찾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찢긴 마음으로 비참한 현실을 맞게 됩니다. 당시 이러한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바로 이런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다시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혼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부부에 관한 덕담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연결되어 왔습니다. 


창조 -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 - 모세의 법 - 그 모세를 잘못 읽는 일 -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  세례요한 - 예수 - 하나님 나라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저는 두 가지를 봅니다. 역사와 해결책.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은 일련의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창조의 뜻,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타락) 그들이 더이상 악해지지 않도록 모세의 법이 주어졌으나, 지금 사람들은 그 모세의 법을 오히려 자신들이 범죄하는데 악용하고 있었습니다.(포로기)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 가난하고 약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지금 이스라엘의 상황) 그런데 예수께서 나타나셨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다스림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간음의 문제를 모세의 법이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하고픈, 다른 여자와 자고 싶은 간음의 마음으로 가득찬 사람들에게 모세의 법은 그저 미봉책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큰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 간음하는 사람 때문에 아프지 않도록 방지책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음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금 전에 보았던 역사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창조되었고, 타락했습니다. 그들에게 법이 주어졌으나, 그들은 법을 악용합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임. 내면의 간음을 균열내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을 '결혼'이 관통합니다. 성서에서의 결혼은, 하나님의 차원과 땅의 차원이 만나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 날은 신랑이 하늘의 다스림을 온통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나는 날, 하늘이 새로워지고, 땅이 새로워지는 하늘과 땅의 결혼식입니다. 그 날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마음이 완악하여 작은 자들을 넘어뜨린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괴롭게 살았던,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과 아픔을 함께한 사람들도 두 눈에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결혼 속에서, 인간의 간음이 만들어낸 이혼의 아픔들은 모두 치유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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