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눈먼 거지를 치료하시다(10:46~52)

  그들은 여리고로 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상당수의 무리와 함께 그 마을을 떠나려고 하는데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고 하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그가 외치기 시작했다.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화를 내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쳤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다. "그를 불러와라."

  그래서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렀다.

  "기운 차리고 일어나라. 예수께서 너를 부르신다."

  그는 자기 옷을 옆으로 던져 놓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갔다.

  예수께서 그가 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눈먼 사람이 대답했다. "선생님, 제가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즉시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예수가 가시는 그 길을 따라나섰다.



1. 같은 질문, 다른 대답


  이번 주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해서 마가복음 10장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에는 유명한 거지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 이름은 '바디매오'. 저 어렸을 적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매오가 눈을 떴다네" 이 노래 엄청 불렀거든요. 이 노래에 등장하는 바디메오에 대한 원출처를, 10년이 넘게 지나고 청년이 되어서야 마주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본문을 들여다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저 '아, 눈을 뜨게 한 예수님은 대단하시구나' 정도? 그런데 발견한 충격적인 단서. 그것은 예수께서 바디매오에게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이 질문. 어디서인가 본듯한 질문 아닙니까? 데자뷰.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물으셨다.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당신께서 그곳에서 모든 영광 가운데 계실 때, 우리 중 하나는 당신의 오른편에 하나는 당신의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즉, 예수께서는 제자들 보란듯이, 제자들에게 던진 같은 질문을 이 눈먼 거지에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이 본문의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어떠한 대답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별이 되고자 했던 것이지요. 거대한 피라미드. 그들이 생각했던 예수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군림하는, 세상에서 소위 지도자라 불리우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다만 더 쎈 정도의 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별과 가까운 곳에 빛나는 트리 장식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길 바라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그런데 바디메오는 똑같을 질문에 다르게 답합니다. 


  눈먼 사람이 대답했다. "선생님, 제가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


  그는 보는 것을 원했습니다.



2. 수치심과 생계보다도 더 큰 열망



  '아, 눈이 안보이니까 당연히 눈이 보이는 것을 가장 바랬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다 버려두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돈이 없고 절박하다고 해서, 길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에게는 수치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내가 남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작년 겨울 그토록 노스페이스 패딩 잠바가 유행했던 이유도 그것이죠. 남들이 다 입는데, 내가 그걸 안입으면 열등해보이는 것이 싫어든요. 이런 자잘한 수치심에서부터, 인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수치심 또한 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사지가 멀쩡하던지 사기를 치든지 어떻든 간에, 그 수치심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내가 열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수치심을 버리기까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멀쩡했던 사람이 길바닥에 엎드리기까지.




노숙인과의 교감을 다룬 영화, <솔로이스트>



  이 거지 바디메오는 길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의 자손인 예수, 메시아인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립니다. 그가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바디메오를 인간 이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 소리칩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더 소리 높여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는 이 때, 자신의 수치심을 버린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남들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버린 것입니다. 그것만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마가는 거지 바디메오가 자기 겉옷을 옆에 치워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겉옷은 구걸할 때 쓰는 옷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던져놓는 깡통같은 역할을 하는 겉옷입니다. 이 사람의 생계와 생존을 위한 유일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것 마저도 옆으로 치워놓고, 한 번도 본적없는 그 사람의 음성에 따라 더듬더듬 길을 따라 움직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자기 자신의 생존? 그것보다 더 큰 열망이 있습니다. 나는 병들었다. 저 사람은 메시아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절망에서 나를 건질 수 있다. 이 하나의 열망.


  이 눈 먼 거지 바디메오는 제자들과는 달리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누구신지, 이 분이 어떠한 일을 하실 수 있는지, 그 분이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예수를 얻고자,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듣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하나님 아들의 위대한 질문.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3. 생전 처음 본 사람과 죽으러 가는 길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예수의 답변은, 바디메오가 무엇을 믿었는지를 다시 상기시키게 합니다. 바디메오는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 메시아라는 것, 그리고 그 메시아는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실 수 있다는 것. 제자들도 비슷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 그 메시아가 자신들을 높여주시리라는 것. 그러나 바디메오는 한 가지 더 믿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예수의 가치. 그래서 자신의 수치심마저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그저 높아지는 것에 관심 많은 제자들과는 달리 말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예수를 얻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 장면에서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했던 그 첫날을 기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모두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예수를 얻었고, 예수께서는 지금 바디메오를 보고 있는 제자들이 이것을 기억하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 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길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길을 걷는 것이 제자입니다. 그 제자의 길에 바디메오도 이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자꾸 옆길로 빠져나가려는 제자들 사이에서, 거지 바디메오는 가장 제자다운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따라갑니다. 저번 주 이야기 기억나십니까? 이제 마가복음은 마지막 막에 접어들었고,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께서는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죽으러 간다고. 바디메오는 그 죽으러 가는 대열에 동참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을 따라서 말입니다. 마침내 눈이 떠졌을 때, 바디메오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요? 아, 이 사람 정말 메시아구나. 그래서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었구나. 이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야겠구나. 그리고 마침내 바디메오는 한 가지 더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 정말 메시아구나. 그래서 내 죽음 마저도 깨뜨릴 수 있구나. 이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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