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토라.pptx


11868日.


1. 어려운 시절 이스라엘의 생각


  마카비 혁명과 바르 코크바 사이. 즉 시리아와 로마가 다스리던 시절 이스라엘의 생각에 대해서 우리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시절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각을 알아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그림도 뚜렷해집니다.


  포로기 시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탄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게 되었을까?' 그들이 자랑하던 성전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무너졌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해주신 땅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이제 딱 하나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토라'였습니다. 즉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았던 하나님과의 계약문서 말입니다. 이제 토라에 충실하게 사는 것말고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옛날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의 시대, 이스라엘이 전세계를 호령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토라를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토라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유대인들은 토라 이야기 안에서 지켜야 할 내용들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미쉬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쉬나'는 '반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반복해서 보고, 또 봐서라도 토라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토라에 나오는 절기들을 다 지키고, 토라에 나오는 법들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며, 토라에 나오는 대로만 살고자 했습니다.


  토라대로 살겠다는 것은 참 좋은 말입니다.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입니다. 정말 사람은 그래야 합니다. 이 말에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언자들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쳤습니다. 토라대로 살면, 다시 하나님이 돌아오실 것이고, 악한 압제자는 파멸될 것이고, 그들은 자유를 얻을 것이며, 아름다운 땅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새로운 출애굽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시금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라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고, 토라를 지키면 다시금 출애굽이 일어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출애굽은 무언가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토라를 열심히 지키는 우리는 옳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옳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저 이방 제국은 파라오와 같다. 파멸되어야 할 악이다.


0) 하나님은 인자를 보내주실 것이다. 


2) 그럼 이방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3) 그렇게 다시금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새롭게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출애굽을 이루셨으므로, 저러한 출애굽이 벌어지면 아브라함 약속도 이뤄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1) 새 땅을 얻었다. 이방 제국에게 빼앗겼던 가나안이 바로 우리의 새 땅이다.


2) 아브라함 후손인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많은 후손"이다.


3) 토라가 복과 저주의 기준이니, 모든 민족은 토라를 지키는 이스라엘 아래 놓일 것이다. 


  차근차근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토라를 열심히 지키려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라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대로만 살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말 된다면 '타락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2. 토라를 지킨다는 거짓말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이해했던 첫번째 항목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1) 토라를 열심히 지키는 우리는 옳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옳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저 이방 제국은 파라오와 같다. 파멸되어야 할 악이다.


  저 첫 줄이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던 시작입니다. 진실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은 토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토라대로 사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십계명 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상하게 '무언가 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것을 더욱 하고 싶어지고, 그것을 결국에는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거짓말 한 번 안한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 절대 거짓말 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분명 거짓말을 할 것이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없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하나님의 올바른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바로 이 사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지킨다고 했습니다.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아담의 후손은 토라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살고 있다고 하니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거나, 이스라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쪽일까요?


  이스라엘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비뚤어져 있습니다. 비뚤어져있기는 이스라엘이나 이방민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아담처럼 그 말씀대로 살 수 없는 비참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그런대도 이스라엘은 토라대로 살고 있다고 말하니 거짓말쟁이입니다. 차라리 토라를 모르는 이방민족이 낫습니다. 이 거짓말쟁이들은 그러면서도 토라를 지키지 않는다며 이방사람들을 미워하고, 심지어는 싸워서 죽이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본래 '토라와 상관없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토라를 가지고 서로를 판단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은 토라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결국 토라를 지키는 자신들의 발 아래 모든 민족이 무릎을 꿇는 날이 오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지 모릅니다. 


  그럼 이들이 토라를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겉으로만 지키는 체 하는 것입니다. 정작 속으로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말입니다. 이 '아닌 척'이 무섭습니다. 속에 문제가 있으면 아닌 척하는 것이 습관입니다. 그러나 못된 습관입니다. 이 아닌 척을 어려운 말로는 '위선'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닌 척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도 토라와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닌 척하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아닌 척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아닌 척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에 가래로도 못막게 됩니다.


 잘 나지 않았는데 잘난 척, 모르는 대도 아는 척, 할 수 없는대도 하는 척, 이렇게 척척척 하다가 이 척들이 모이면, 이것이 자부심이 되어버립니다. 이 자부심은 내 더러움을 감출 수 있는 가면 같은 것입니다. 비뚤어져 부끄러워진 아담과 하와가 입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같은 것입니다.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감춰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은 포로기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글자로 돌아갔습니다. 글자만 겉으로 지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글자가 자부심이 되었을 때, 그들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면, 그것은 참말로 무서운 것입니다. 토라가 자부심이 되었더니, 정작 자신들은 토라대로 살 수 없는 비뚤어진 인간이면서도 이 점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자부심가질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식, 돈, 명예, 외모, 내 편 많은 것, 내가 잘 한 것,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 마저도 자부심 삼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신 이유는, 토라를 지킬 수 없게 하는, 자기 속에 있는 그 비뚤어짐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토라를 지키고 있다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는 커녕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싸우려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글자들을 자부심 삼아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타락의 문제를 해결하고, 온 세상이 하나되게 하기 위해 부른 사람들인데, 정작 그들 때문에 세계가 분열하고 있으니, 하나님 마음이 오죽 하셨겠습니까?


3. 제가 아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책으로 죄를 가리고 있으면,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까? 성경책은 그러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면, 그 전쟁이 죄가 아닌 줄로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럽을 쑥대밭을 만들면서도 잘한다 잘한다 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인정합시다. 내가 자부심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내더져야 합니다. 여기가 바로 시작점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리자는 말도 아닙니다.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건,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힘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 할 수 없는 죽은 것같은 나를 일으켜, 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말씀대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바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잘 했다면, 그것은 나의 자부심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됩니다.


  할 수 없는 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내가 아담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이 바로 나 입니다. 이 점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하십니다.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을 때에는 그것이 내 능력이 아님을 알고 나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하나님 드러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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