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편

from 2012年/주기도문 2015. 1. 13. 11:25

0. 큰 하늘, 더 큰 하나님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우리는 지금 주기도문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는 하늘이 무엇인지 배웠지요. 하늘은 '비인 데'입니다. 그래서 저 푸른 하늘도 하늘이고, 이번 주에 우리가 그려온 우주도 하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도 하늘입니다. 비어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온갖 비인데가 하늘이니, 하늘 아닌데가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도 참 재밌습니다. '하'는 어떤 느낌인가요? 이 'ㅎ'은 목구멍 소리입니다. 뻥 뚫린(여기도 ㅎ이 들어있다) 목구멍으로 소리를 냅니다. '늘'이라는 말은 언제 씁니까? 영어로는 'always' 입니다. all + ways입니다. 어디에나 다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이라면, '비어있는 것이 어디에나 다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일본에 갔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파벳 P가 보이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P가 많았어요.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유료 주차장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P를 찍다보니, 같이 찍게 되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空이었습니다. 비었다는 뜻의 한자니, 주차장이 비었다는 말이지요.  



  그 생각을 하고나니 하늘은 거대한 주차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구슬은 유치원 버스이고,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있는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이 버스를 타고 거대한 주차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주차장의 이름이 하늘입니다. 그런데 이 주차장 안에는 우리만 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주차장 주인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늘보다 크신 하나님이 이 하늘에 계십니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이 우주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첫 구절이 "하늘에 계신"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생각

  우리는 두 가지 잘못된 사실을 주의합시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신 분이지, 하늘이 아니십니다. 심지어 이 땅구슬이 하나님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늘도, 땅구슬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만드셨지요. 우리가 그린 그림을 우리 자신이라 말하면 곤란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늘 밖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점과 같은 땅구슬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러한 내용들을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일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입니다.


  오늘은 한 편의 시를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시들만 모아놓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입니다. <성경> 옆면에 보면, '시'라고 써있습니다. 이 시들 중에, 우리가 요즘 배우고 있는 내용이 절묘하게 들어있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8편입니다.


1. 하나님의 힘은 생명


[1]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뛰어나신지요.

저 하늘 꼭대기까지 주의 장엄함으로 채우셨습니다.

아가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힘을 세우심은,

적과 원수 갚는 이들을 잠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主, The Lord)'라는 말은 '땅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첫 줄은 '땅구슬의 주인이신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 땅구슬을 만드신 그 분의 이름이, 땅구슬 전체에서 너무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 분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자꾸 얘기합니다. 성경에서의 하늘은 '비인 데(空)' 입니다. 하나님은 그 비인 데로 들어오셔서 그 비인 데 꼭대기까지 자신의 위엄을 채우셨습니다. 비인 데 어딜가나 그 분의 위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로마서 1:20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성품인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은 

그가 만드신 만물을 보고서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 다음 구절이 신비롭습니다. 


아가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힘을 세우심은,

적과 원수 갚는 이들을 잠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힘은 생명

  하늘을 만드시고, 그 하늘 꼭대기까지 자신의 장엄함으로 채우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있는 장엄함을 세우는 기둥이 있습니다. 바로 '힘'입니다. 하나님의 장엄함을 이루는 그 힘! 그런데 그 힘을 무엇으로 세웁니까? 아가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세우셨습니다. 아직 치아도 나지 않아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아기가 힘이 있나요? 게다가 아이의 팔도 아니고, 다리도 아닙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주름이 많고 부드러운 부위가 입술입니다. 그 아기의 입술로 하나님의 힘을 세우십니다. 하늘 꼭대기까지 말입니다.


  그 힘은 어디에 쓰이는 힘입니까? 적과 원수 갚는 이들을 잠잠하게 하는데 쓰입니다. 이상합니다. 서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싸우려고 드는 힘 센 사람들을 아기가 입만 가지고 멈추게 할 수 있나요? 그런데 왜 아기에게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일까요?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힘은 무엇일까요? 머리 좋은 것입니다. 돈 많은 것입니다. 자기 편이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머리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세웁니다. 돈 많아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합니다. 자기 편 많아서 소수의 사람들을 압박합니다. 이게 적, 원수 갚으려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그러나 아기는 어떻습니까? 아기가 무슨 지식이 있습니까? 아기는 유식한 말, 학자들의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저 울거나, 울지 않거나 할 뿐입니다. 아기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아기는 돈 때문에 기뻐하거나 울음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아기 앞에서 돈은 그저 먹지 못하는 더러운 것일 뿐입니다. 아기가 무슨 자기 편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그 아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의 이름이 이러합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기어코 땅을 뚫고 올라오는 매미, 아기의 힘찬 울음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느끼지 않습니까? 바로 생명이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지식과 돈과 편 나누기를 잠잠하게 합니다. 생명과 연결되지 않은 지식과 돈과 편 나눔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기억합니다. 생명이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 창조하신 하늘에 가득합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의 장엄함을 드러내는 힘입니다. 아가부터 시작해서 이 하늘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명으로 숨 쉬고 있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삼고, 원수 갚으려는 사람들은 이 생명을 해하려는 사람들이니,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힘이 없습니다.


2. 그 생명으로 사람이 살지. 사람이 무엇이기에?


[2]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생각해보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생명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 없겠습니다. 지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세요. 들이마쉬고 내뿜는 그 움직임 속에, 내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 속, 그 점과 같은 땅구슬 위에, 오늘 내가 생명으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내가 숨 쉬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선 산소를 담고 있는 공기탱크, 하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땅구슬과 질서 속에서 돌아가는 행성들이 필요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숨 쉬며 사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주도, 하늘도, 대기도, 땅도, 내가 먹는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있기에, 오늘 내가 생명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이 시를 지은이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십니까?


  이 드넓은 우주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생긴 우주는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 시작과 끝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주는 사람을 섬기도록 있는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우주 속 미아입니다. 우연히 그냥 생겨버린 아빠 없는 자식이 되어버립니다. 처음을 굳게 붙잡읍시다. 하나님을 붙들면, 우리도 이 시인처럼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가 누구이기에!" 930억 광년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두셨단 말입니까? 


3. 주와 함께 다스리리

 

  이제 그 이유를 찾아나섭시다. 일단 하나님은 우리를 천사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사처럼 만드셨다면, 우리는 땅 위를 걸으며 다닐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두 발을 이 땅 위에 중력으로 붙여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3] 또 주께서 사람에게 손수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으니, 

그 모든 것이란,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스리는 일은 누가 하는 일인가요? 왕이 하는 일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사람을 왕으로 부르셨군요! 그래서 사람의 머리위에는 존귀하고 영화로운 관을 씌우셨던 것이군요! 하나님도 왕이시니 다스리시고, 사람도 왕이니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은 일을 하려고, 이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바로 다스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다스리는 일이 사람이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일'이라는 글자가 그렇습니다. 비어있는 하늘에 계신 이(ㅇ)와 사람(ㅣ)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움직입니다(ㄹ). 그럼 일입니다. 요새는 '일'하면 '돈'부터 생각나지만, 사실 돈 있고, 일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 있고, 그 다음 일이 있습니다. 돈은 그 다음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사람과 함께 다스리며 사람과 사랑하고자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빠 왕이요, 우리는 왕자, 공주들입니다. 이 왕자, 공주들은 궁궐에서 대접받는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우주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우주 속에서, 생명으로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의 아들로서, 어찌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뛰어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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