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우리가 사는 세계다. 사람의 차원, 성서에서 말하는 "땅". '계(界)'는 하나님의 차원이다. "하늘". 높은 분의 존재를 말할 때도 "계시다" 할 때도 '계'가 들어간다. 내가 속한 차원 위의 차원이 곧 '계'인 것이다.
그래서 "여기 계신" 이라 말하면, 땅의 차원과 하늘의 차원 양쪽에 존재함을 이르는 말이 된다. 누가 그리 계시는가? "우리 아빠". 하나님이시다. 곧 주기도문은 자녀들의 고백이다.
우리가 그 이름 닦아 드립니다.
에스겔서 36장에 보면, 하나님 이름의 거룩을 위해서 부름받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자녀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아버지 이름의 거룩'을 위해서 살 사람들. '거룩'을 "닦아 드립니다"로 고쳐 읽었다. 우리가 먹칠을 해놓은 그 이름을 다시 닦아드린다. 내가 더럽혀지는 것을 아랑곳않고 여기저기를 닦아내는 걸래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닦아 드린다.
우리를 다스리시어,
계에서 이루심을
예서도 이뤄주옵소서.
그런데 하나님 이름을 닦아드리는 일은 우리 생각과 힘으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끄신다. 다스리신다. 하나님 이름을 닦아드리는 것이, 곧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아빠가 앞장서신다. 그렇다고 그 분은 인간과 무관한 신이 아니시다. 그 분의 이름을 회복하는 것이 곧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사람살이의 거짓된 중심을 치우고, 그 분을 모시면, 사람이 사람답게 된다. 그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늘의 차원인 '계'에서는 벌써 그 일이 이루어졌다. 계시록 12장에 나온다. 하늘로 올라가던 철장권세 가진 어린이를 추격하던 용이, 미가엘이 군대에 막혀 땅으로 추락한다. 참소자인 용이 쫓겨난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리고 땅이 남았다. 땅에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 추락한 용이 있다. 아빠의 다스림 속에서 그 용을 이긴다. 계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예서도 이룬다. 자녀들이 아빠 위해서 용과 맞선다.
오늘
우리에게 먹이를 주시고,
이것을 막고자 용은 시험했다. 먼저는 먹거리를 가지고 자녀들을 꺽어놓으려 했다. 자녀들을 빚더미 위에 앉혀놓고서 삶을 저당잡아, 더이상 그 이름의 닦음을 위해서 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녀들은 기도한다. '오늘'을 기도한다. 그 오늘은 아빠가 먹여주시는 오늘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자녀가 예서 사는 것을 책임지신다는 확신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먹이 되심 같이,
우리도 다른 이의 먹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생존이 보장되기만 하는 오늘이 아니다. 우리가 남에게 먹이가 되는 오늘이다. 내가 남에게 먹혀 다른 이를 살린다. 그도 용에게 저당잡힌 불쌍한 사람. 그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온 인류의 먹이가 되셨다. 인자의 살점과 피를 모든 사람에게 만찬으로 베풀어주셨다. 고로 "그를 먹고 그처럼 용서한다."
우리를 사탄의 허튼 생각에서 건지사,
폭력 마저도 이기게 하소서.
사탄의 허튼 생각은 계속된다. 이것이 '시험'이다. 자녀의 정체성, 아버지의 이름 닦음, 오늘의 생존이 보장됨, 타인의 먹이됨, 이러한 가치들을 망각하고 다른 것을 추구하게끔 하는 것이 사탄의 허튼 생각이다. 이 허튼 생각은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한다. 자녀들은 이 허튼 생각에서 건저달라 기도한다.
사탄의 최후 방법은 폭력이다. 물리적 힘을 사용해서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사탄이 쓸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러나 이 폭력에 맞서 폭력을 질식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 왼뺨을 돌려대는 것이요, 부당함을 사랑으로 감내해내는 것이요, 그 궁극이 십자가다. 폭력마저도 이기게 하소서. 우리도 십자가의 예수처럼 되게 하소서.
생존의 보장, 다른이의 먹이됨, 폭력을 비폭력으로 이김. 이 세가지가 '오늘' 자녀가 구하는 다스림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모든 다스림과
그 다스림의 권한과
그 다스림으로 드러내시는 뜻이
아버지께만 세세토록 있사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스림과, 이 다스림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힘, 그리고 이 다스림으로 드러내시는 그 뜻이 아빠께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다. 아빠를 믿고 따르는 자녀들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 현시대에서 시작된 이 다스림은, 오는 시대에 이르도록, 곧 세세토록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 이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