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 : 야만인은 그리스 사람들이 자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이라면,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방인)으로 세계를 나누듯, 그리스인과 야만인으로 세계를 구문하는 것이다. 우리도 동양과 서양, 한민족과 오랑캐등으로 세계를 분류하는데 익숙하다. 이 모든 분류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지금 바울은 '모두'에게 빚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너 모두, 우리와 너희 모두, 야만인과 그리스 사람들 모두에게 빚져있다. 즉, 세계에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좋은소식을 전달해야만 하는 빚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두에게 보냄받은 왕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은 폭군 네로가 자신의 숭배를 주장하는 와중이라, 예수를 말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목숨으로 인해 그 좋은소식을 구차하게 생각지 않는다. 이 말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라는 말로 나온 것이다.
*구원, 힘 : 좋은소식이 목숨보다 귀한 이유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체(體)요, 이를 이루기 위한 힘이 용(用)이다. '좋은소식'은 이 '구원'과 '구원을 이루는 힘'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소식이다.
구원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 작게는 현실의 문제로부터, 우상숭배자 황제의 폭정으로부터,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이제 하나님이 사람을 건져내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하신 약속이 이뤄지는 것이고, 모세로 말하자면, 거짓왕으로부터 출애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일이 가능한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특히 죽음에서 인간이 구원받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바울은 그 힘을 목격한 사람이다. 인간을 옭아매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것 마저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활이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에 이르는 방법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였다. 그 예수의 신뢰와 부활이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과 힘을 드러냈다.
*유대인 : 바울은 또 새로운 세계 구분을 말한다. 그리스인과 야만인으로 나눴던 세계 위에 유대인도 있다. '먼저 유대인이요'. 이 말은 유대인 우월주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앞서 말했던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그 힘'이 유대세계에 '먼저'(개역성경에는 '첫째'라 번역되어 있어 수정했다)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그리스인에게도 동등하게 주신다'
*하나님의 의 : '의'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약속을 지킴'이라는 의미다. '신실함'이 그 뜻이다. '약속지킴'. 바울은 "좋은소식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을 풀면,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약속 지키심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의미다. 어떠한 약속인가? 아브라함 언약이다. 세계가 타락한 이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은, 다시 세계를 바로 잡겠다는 뜻이었다. 타락을 반전시키고자 아브라함과 하신 인류에 대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지키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예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다움 : 구원이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만족시키는 참 인간으로 새롭게 지음받는 것.
*신실함 : 하나님의 약속 지키심은, 예수의 약속 지키심을 통해 드러났다. 그래서 신실함에서 신실함에 이른 것이다. 예수의 약속 지키심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이 '믿었다'는 말은, 자신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평생에 걸쳐 순종하고,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약속 지키심이 이 땅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의 약속 지키심이 이 땅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신실함은 신실함을 따라 드러난다. 결과에 의해서 원인의 진실함이 증명된다. 그래서 오늘 예수를 이 땅에 드러나게 하는 세계의 끄트머리가 바로 나다.
*의인 : 그 끄트머리를 가리켜 '의인'이라 부른다. 의인은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다. 무엇으로 인정하느냐, '신실함'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의인은 신실함으로 산다." 이 말씀은 하박국 2:4의 인용이다. 하박국의 맥락을 보면, 악이 득세하기만 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선지자가 하나님께 따지는 맥락이다. 세상에 악이 창궐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인은 신실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