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다 : 지금 바울 편지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과 로마 사람들을 언급하고,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 믿음에 대해서 논한 뒤, 이제 창조 이야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단순 동성애에 대한 논쟁거리가 아닌, '창조와 인간'이라는 차원에서 숙고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에 두 번이나 나온, '내어버려두다' 라는 움직씨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인간은 창조되었고, 이 땅을 다스릴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었다. 마치 인간은 하나님의 대저택의 관리를 맡은 집사와도 같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은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러하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 뜻 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려야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고집할 때다. 지금은 상대주의고, 다원주의 사회라 하여, 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르지 않은 선택'은 분명히 있다.(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 말하는 세계에도 올바름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올바름을 따르지 않을 때,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이것이 '내어버려 둔다'의 의미다. 다스림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고스란히 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앞서 말했듯, '올이 바른 뜻'이 이미 알려졌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숙고하여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유를 통해서 자기 선택을 정당화하는 길을 걷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반드시 그 선택의 결과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어버려두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어버려두셨다는 말은 방관이나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림이다. 문제를 보고 자신을 깨치길 바라신다는 것이다.
*몸을 서로 욕되게 하다 : 몸은 매개다. 창조된 몸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이고, 정신계와 물질계의 교집합이다. 마치 몸은 프리즘과 같아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추임을 얻고, 아래로 세상에 그 빛을 방사한다. 문제는 위로부터 오는 빛을 거부할 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피조물에게서 빛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매개로서의 몸의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다. 바울의 말대로라면, 욕되게 하는 것이다.
*찬송 : 따라서 찬송은 위로부터 빛을 받는 존재의 감사요, 곧 창조질서를 회복함이다. 위로부터 빛을 얻음이다.
*역리 : 흔히 위 본문은 동성애를 뜻한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성간의 성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동성간의 사랑과 우애를 싸잡아서 죄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와 몸의 사용에 관한 말씀이다.
동성간의 성관계는 지금까지 바울이 말했던 것의 예가 된다. 두번째 문단을 보라. 하나님께 지음받아, 이 땅을 다스릴 책임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피조물에게서 만족을 찾을 때, 세계를 하나의 뜻따라 다스리기 위해 매개로 주어진 몸은 제대로된 소임을 다 할 수 없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역리(逆理), 즉,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 번역했다. 만물에 '리'를 주신 분인데, 그 분을 버리니, 이치를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그 그릇됨에 대한 보응을 스스로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