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아론의 두 아들들이 죽었을 때입니다. 레위기는 법전으로 취급되지만, 레위기의 법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음을 16장의 시작이 보여줍니다. 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법이 16장입니다.

 

  아론의 정결을 위한 제의가 가장 먼저 언급됩니다. 휘장 안쪽으로 법궤 덮개(‘시은좌’라고 부릅니다)로 나갈 수 없는 그는 

 

  1. 수송아지 하나를 정결 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치고, 
  2. 몸을 씻은 후 모시로 만든 대제사장 옷을 입고 나서야, 
  3. 이스라엘 민중이 가져오는 정결 제물과 번제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제물은 정결 제물로서 숫 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서 숫 양 한 마리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정결‘의 의미를 재정의했던 것 기억나시나요? 정결은 이스라엘로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결에 사용되는 제물은 두 마리의 숫염소입니다. 한 마리는 주님께 바치지만, 다른 하나는 아사셀에게 내어줍니다. 

 

  이때 아사셀은 광야에 살던 귀신의 이름이기도 하고, 땅이 끊어진 곳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바위가 많은 벼랑을 일컫기도 합니다. 아사셀이 귀신 이름이다 보니, ”아사셀에게 숫염소를 보낸다“는 말이 마치 악한 존재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지만, 의미는 정 반대입니다. ”아사셀에게 보낸다“는 말은 이스라엘과 무관한 것에 대한 심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사셀과 함께 이스라엘답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파멸될 것입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레위기를 열심히 읽었을 바울은, 자신의 어머니와 잠자리를 가진 사람을 두둔하는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멸망하게 하고 그의 인격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아사셀에게 이스라엘 답지 않은 것을 실어보내는 것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하기 위함이듯, 바울은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회답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을 내쫓고 교회다움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정체성과 관련됩니다. 

 

  아사셀이라는 귀신이 실재로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힘겹게 기어오는 숫염소를 보는 광야의 괴물 아사셀을 상상해봅니다. 그에게 숫염소는 선물을 받은 기쁨은 커녕, 자신이 온갖 더러운 것과 함께 파멸될 것에 대한 확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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