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깁니다. 단락 구분을 보여주는 O 표시를 기준으로 본문을 나누었더니 5장을 훌쩍 넘어갔네요. 하지만 이렇게 나누어야 바울의 문맥을 파악하기에 용이하고, 그가 보여주려는 큰 그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25~5:14, 개인번역
그러니 그 거짓을 벗은 여러분은
"각각이 자신의 그 이웃과 함께 참을 말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서로 멤버이기 때문입니다.
"성을 내십시오, 그리고 비뚤어지지 마십시오.
해는 우리들의 화 위로 떨어지지 말지어다",
그 고발자에게 장소를 주지 마십시오.
훔치는 자는 더 이상 훔치지 말지어다,
오히려 자기 손들로 그 선을 만들며 고생할지어다,
이는 그가 필요를 가진 자에게 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의 입으로부터 있는 모든 썩은 말은 떠나보낼지어다,
오히려 그 필요의 집짓기를 향하여 좋은 무언가가 있다면,
이는 듣는 이들에게 거저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그 거룩한 숨결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그분 안에서 여러분은 풀려남의 날 속으로 인맞았습니다.
모든 악과 욕망과 화와 절규와 중상모략이 여러분으로부터 들릴지어다,
모든 악과 함께.
그런데 서로서로 속으로 적합한 자들이 되십시오,
속 좋고, 자신들을 용서하며,
마치 하나님도 메시아 안에서 여러분에게 거저 그리 하셨듯이.
바울은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냥 내용만 읽어서는 눈치채기 어려운데, 바울의 이 명령들은 구약성경의 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본문은 스가랴 8장입니다.
스가랴 8:15~17, 새번역
"...그러나 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기로 작정하였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하다.
서로 진실을 말하여라.
너희의 성문 법정에서는
참되고 공의롭게 재판하여, 평화를 이루어라.
이웃을 해칠 생각을 서로 마음에 품지 말고,
거짓으로 맹세하기를 좋아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개역성경의 난하주에는 "슥 8:16"이라고만 쓰여있지만, 지금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바울은 스가랴 8장의 문맥을 통채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난하주에 나온 구절 하나만 읽어선 안돼요. 스가랴 8장은 15절부터 저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이스라엘의 실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내용을 고스란히 에베소 교회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들이 새로이 언약을 체결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몇 가지 고쳐놓은 단어들이 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가랴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이라 말한 것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미워한다"를 "성령이 슬퍼하신다"로 옮기고 있다는 것. 이로써 우리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주신 성령을 통해서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미메테스들이 되십시오,
사랑받는 아이들처럼,
그리고 사랑 안에서/으로 걸어야 합니다,
메시아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자신을 우리를 대신하여/위하여/대표하여 넘기셨던 것처럼,
봉헌물, 곧 하나님께 향기나는 희생으로.
본문을 차분히 읽으시면서 쉼표와 마침표를 신경 써주세요. 마침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문장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에 제가 일곱 줄로 배치해놓은 본문은 본디 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들여쓰기도 잘 봐주세요(개역성경도 한 문장으로 잘 번역하고 있네요). 주요 내용과 그 주요 내용을 뒷받침 하는 세부 내용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이건 개역성경만 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크게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미메테스들이 될 것", 다른 하나는 "사랑 안에서 걸을 것". "미메테스"는 거칠게 번역하면 '복사본'입니다. 개역성경은 "본 받은 자"라 번역했네요. 바울은 마치 자녀들이 부모를 닮듯,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이들답게 하나님을 닮을 것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을 모방함'이란 "사랑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여기서 번역은 사랑"으로"도 가능하고, 사랑 "안에서"도 가능합니다. 즉 사랑은 우리의 방법이기도 하고, 우리의 존재 상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사랑을 적자마자 메시아를 언급합니다. 메시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그의 죽음으로의 "넘겨짐"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 사건의 의미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사였다. 그 결과로 거짓을 따라 이방인으로 살던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과 온갖 씻기지 않음 혹은 탐욕이
여러분 안에서 이름불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거룩한 이들에게 맞는 것 같이,
그리고 외설이나 저속한 말이나 희롱, 이것들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감사가 (맞습니다).
즉 이것을 깨달아 아십시오,
모든 음행한 사람이나 씻기지 않은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은, 그림자 숭배자이며,
하나님의 그 메시아의 그 통치 안에 있는 상속을 갖지 못합니다.
누구도 여러분을 빈 말들로 속이지 못하게 할지라,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그 화가
설득되지 않는 그 아들들에게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과 엮인 이들이 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때는 여러분이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아이들처럼 여러분은 걸으십시오,
왜냐하면 그 빛의 그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와 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 무엇이 들어맞을까를 생각하며,
어둠의 열매없는 노동들에 함께 참여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잘못을 찾고 반박하십시오 .
왜냐하면 그들에 의해 몰래 되는 그 일들은
말하기에도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빛에 의해 반박되는 모든 그 일들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모든 그 드러난 것이 빛입니다.
이렇게 띄어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본문 전체의 의미가 한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이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서 함께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바울의 명령문들이 이어집니다. 더 첨언할 것이 없을만큼 분명한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일어나라, 자고 있는 자여,
그리고 그 시체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고 그 메시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
바울이 오늘 본문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구약 본문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61:1, 26:19, 9:2, 그리고 요한복음 1:6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죽은 이들로부터 일어난 사람들, 그래서 메시아의 빛이 비추이는 사람들, 그들이 곧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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