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에디터가 바뀌었습니다. 전과 같이 회색 네모칸을 만들 수 없네요. 유감😞
지난 번에 이어 에베소서를 읽습니다. 에베소서 4:17~31 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내가 말하고 주 안에서 증언합니다,
결코 여러분들이 걷지 말라고,
마치 그 민족들이 자신들의 생각의 허망함 안에서 걷듯이,
(그 민족들은) 이해를 가지고 어두워지고,
그 하나님의 그 삶의 외인입니다,
자신들 안에 있는 그 무지 때문에,
그들의 그 가온의 굳어버림 때문에,
그들 자신이 탐욕 속에서 온갖 더러움의 일들 속으로
방탕으로 넘겨졌다는 사실에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희랍 원문을 들여다보며 문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장점은 문장 전체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칠게 번역한 본문을 올려두는 것은, 여러분도 그러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는 의미로는 구분이 되지만 실제로 문장이 끝나지 않았을 때 사용한 문장부호입니다. 그러니 저 위의 문장은 (놀랍게도) 희랍어로는 한 문장입니다.
이 한 문장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들여쓰기로 문장의 종속관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증언합니다
걷지 마세요!
허망한 생각으로 사는 이방인처럼
그들의 허망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다'를 '걷다'로 표현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세요. 삶은 걸음입니다. 매일 시간 위를 공간 안에서 걷고 있는 것이 삶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생각하게 되는데, 바울은 이방인의 허망한 생각으로 걷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 허망한 생각 또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도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그 삶"에서 외인입니다.
(이것은 다음의 이유가 있는데)
무지 때문에
마음의 굳어짐 때문에
(다음의 결과가 있습니다)
탐욕 속에서, 더러운 일들 속에서, 방탕으로 "넘겨졌다"는 사실에
아파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그 삶"이란, 하나님께서 믿는 이에게 주시는 영생을 가리킵니다(개역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무지는 인격을 굳게 하고,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아파하지 않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메시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실로 여러분들은 그이를 들었고
그이 안에서 배웠습니다, 참이 그 예수 안에 있듯,
-여러분이
이전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그 속임의 욕망들을 따라 썩는
그 묵은 사람을 벗기,
-그런데 위로부터/다시 새롭기,
여러분의 그 생각의 숨결로,
-그리고 새 사람을 입기,
하나님을 따라 의와 그 참의 충직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바울은 메시아를 배운 사람들을 정반대편에 제시합니다. 메시아를 배우는 시작은 "들음"입니다. 그의 소식을 들음으로써 그에 대한 학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 있는 참(진리, 진실)을 얻습니다. 그 '참'은 다음 세 가지의 "~하기"로 제시 되는데, 먼저는 벗기입니다. 그 다음은 새롭기, 결론은 입기입니다. 이렇듯 옷을 갈아입는 이미지를 사용해서 바울은 욕망들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위로부터의 변화에 이미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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