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시간 입니다. 진도가 안나가는 것 같지만, 시간 날 때마다 짬짬히 하다보면 어느새 끝장에 도달해있을 거에요. 그 날의 기쁨을 생각하며 오늘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2. 세례요한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1:5~4:13

(1) 세례요한이 태어났다(1:5~80)

(2) 예수님도 태어났다(2:1~52)

(3) 세례요한의 사명(3:1~20)

(4) 예수님의 사명(3:21~4:13)

 

1. 권력 위에 권력, 또 그 위에 권력

 

  예수님 이야기와 세례요한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던 누가는 이제 세례요한의 사명에 대해서 요약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절에서 누가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지요.

 

누가복음 3:1,2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모르는 외국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오면 우리는 정신없지만, 사실 이것은 데오빌로를 위한 누가의 친절입니다. 세례요한이 활동할 때의 로마와 유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지요. 그만큼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거에요. 이 누가의 친절 덕분에 우리도 연대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였고요. 그는 A.D.14년에 즉위했으므로,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는 A.D.29년입니다. 그리고 이 때 헤롯은 로마의 수족 역할을 하며 유대를 통치하는 분봉왕으로 있었습니다. 헤롯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아버지 헤롯과 헤롯 안디바를 구분해야 해요. 예수님 태어났을 때의 헤롯은 아버지 해롯(대해롯이라고도 합니다)이고, 세례요한 때의 헤롯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또 동생 헤롯 빌립은 유대의 서쪽을 통치하고 있었어요. 또 이때의 유대의 대제사장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역임했습니다. 누가는 권력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꼭대기에는 로마 황제가, 그 다음에는 분봉왕들이, 그 다음 대제사장들입니다. 황제 아래 분봉왕의 발 밑에 놓인 대제사장이라니요! 유대인들이 로마의 포로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 A.D.29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2. 진정한 권력이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게 임했다"는 표현은 그 사람이 예언자로 임명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나 이사야나 스가랴의 첫 장을 펴서 읽어보세요. 모든 예언자가 이렇게 임명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임명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예언"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언'이라고 하면 미래를 맞추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예언이라는 말의 범위는 훨씬 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한 말이 예언이에요.

 

누가복음 3:3~6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침내 기다리던 예언자가 등장했는데, 그 예언자의 등장 자체가 예언이었습니다. 누가는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 전파하는 사역"이 이사야 40장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누가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거에요. 세례요한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받는 "회개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사야의 문맥은 포로생활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마침내 하나님이 돌아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는 내용입니다(40장부터 맨 뒷장까지 읽어보세요). 그리고 이 일의 시작은 "외치는 자의 소리"가 광야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읽어왔던, 바로 그 이사야 예언의 성취의 시작으로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배치가 재미있어요. 앞에서는 로마 황제가 가장 꼭대기에 있고, 그 다음 분봉왕, 그리고 꼬래비로 대제사장이 있는 권력구도를 설명했던 누가인데, 바로 그 뒤에는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예언에서의 "산"은 권력자이거든요. 권력자가 낮아져서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앞에서 로마를 좀 띄워주는듯 하더니 바로 하나님 앞에 꿇려놓는 배치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이후 끊어졌던 예언자의 계보가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이사야 40장으로.

 

3. 진정한 권력 : 사람을 사람답게

 

  그래서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옵니다. 하나님 맞이를 위해 자신들을 준비시키는 세례를 말입니다. 그러나 세례라는 의식은 이스라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누가가 전하는 세례요한의 말을 들어보세요.

 

누가복음 3:7~9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장차 올 진노"는 확실합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 하나님은 구원자로서 오시기도 하지만, 심판하시는 분으로도 오십니다. 즉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때야 말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날 때입니다. 세례요한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돌아오시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치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없이 세례 받고 화만 면하려는 태도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라는 자부심

 

  즉 자신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미봉책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맞이하는 준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 자체가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으니, 그 문제의 본질부터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것이 정말 회개이지요. 세례요한의 세례는 이것을 깨달으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자신들은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저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그리고 로마에 대해서는 적개심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 이후 30년이 지나면 유대는 로마와의 큰 전쟁을 치루고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세례받으러 왔다가 된통 혼이 난 유대인들이 이렇게 세례요한에게 되묻습니다. "따옴표"를 사용하여 세례요한과 무리의 대화를 시각적으로 잘 재구성해볼게요.(제가 성경 볼 때 쓰는 방식입니다)

 

누가복음 3:10~17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 대화를 보시고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내리시겠어요? 하나님 맞이는 결국 무엇입니까? 세례요한은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짧은 대답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반인이든 세리든 군인이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세례요한이 메시아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세례요한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아는 어떤 일을 하는 분인지 엿볼 수 있는 발언이 이어집니다. 

 

누가복음 3:15~17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해서 알곡을 모으실 것

-쭉정이는 태우실 것

 

  이 세 가지 내용을 유대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성령을 아직 받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또 "알곡", "쭉정이", "불"이라는 심상은 또 세례요한을 포함한 당대 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건 여러분에게 숙제로 남겨둡니다.

 

4. 부패한 권력의 참상 : 무고한 사람의 희생

 

누가복음 3:18~20 

또 (세례요한은) 

기타 여러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누가는 세례요한 사역에 대한 요약을 위와 같이 마무리 합니다. 백성에게 여러가지로 권하는 일, 또 왕이 오실 것이라는 '복음(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세례요한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잘 하고 있던 세례요한과 달리, 분봉황 헤롯 안디바는 요한의 책망을 받고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누가는 세례요한이 옥에 갇힌 것에 대한 책임을 세례요한에게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헤롯이 자신이 행상 악한 일 때문에 요한을 가두었다고 말하고 있지요. 

 

  앞에서 세례요한이 권력 구도를 보여주며 누가복음 3장을 시작했지요? 로마 황제 - 분봉왕들 - 대제사장들. 그리고 누가는 앞으로 이 권력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부당한 이유로 옥에 가둔 분봉왕부터 시작해서, 당대 대제사장들, 또 로마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누가복음에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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