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마태복음 21:14~17, 개인번역
그리고 성전 안에서 시작장애인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이 그이에게 나아왔다,
그리고 그이는 그들을 치료해주셨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문법학자들이 보았던 것은,
그이가 하시는 놀라운 일들과
성전 안에서 소리치며 "호산나 다윗의 아들께"라고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성질이 났고 그이에게 말했다.
"네 놈은 저 녀석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가?"
그런데 예수는 그들에게 답했다.
"그렇다. 너희들은 읽어본 적도 없느냐?
'유아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부터 당신은 찬양을 갖추어 이루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 그 도시 밖으로 가셨고 베들레헴으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밤을 보내셨다.
시편 8:2 LXX
유아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부터 당신은 찬양을 갖추어 이루게 하십니다,
당신의 적들 때문입니다(당신은 적과 복수하는 이를 파멸시킵니다)
καταριζω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κατα +αρτιος 아르티오스는 αρτι "이제, 방금, 순간"의 의미가 있고, 이게 명사화되면서 "신선한, 온전한, 완전한"의 의미가 되었다. '그 신선함/온전함/완전함을 따라/아래'. 이 단어마저도 시간을 언표하는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지 미처 몰랐다. "때에 맞도록 하다"로 번역하면 어떨까?
여기서 의미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수령은 '맞도록'이다. 때에 맞도록 하지만, 아직 때에 맞지 않았다면, 이 맞도록이라는 말에는 시간의 지속이 포함되어 있고, 때에 맞음은 미래로 지연된다. 여기서 "준비하다"라는 뜻이 파생된다. 즉 κατα는 αρτιος로 가기 위한 과정, 길인 것이다.
그러나 κατα가 강조 혹은 '되게 만들다'의 의미로 읽는다면, αρτιος 그 자체가 된다. 때에맞음을 위한 능동적인 움직임을 가리킬 것이다. 이때 κατα는 위에서 '준비하다'와는 달리, 준비를 불필요하는 만드는, 즉 준비를 일소시키는 작업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서 '완성'의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한 단어는 '준비'로도 읽힐 수 있고, '완성'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반복하는 시차적 관점 아래서, 카타리조는 읽혀왔던 것이다.
개역한글에서는 "(그물을) 깁다/온전케 하다/갖추다/연합하다/바로 잡다"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아래는 카타리조가 사용된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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