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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11~21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하늘이 열리는 것을, 그리고 보십시오, 빛나는 말을.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이는 '신실하고 참되다'고 불리는 이입니다, 그리고 그이는 의(義)로 심판하고 싸웁니다.


  새로운 환상이 요한에게 열렸습니다. 그 환상은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빛나는 말 한 마리가 나타났고, 그 위에는 '신실하고 참되다'고 불리우는 이가 앉아 계십니다.


  '신실'이라는 말은 약속을 전제합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 언약'으로 대표되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창조세계를 반드시 이스라엘을 통해 구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창세기 12:1~3). 그리고 마침내 신실한 이를 통해, 그 약속이 이뤄집니다. '참'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말한대로 지키면 참입니다(반대로 말한대로 지키지 않으면 거짓이요, 그릇됨입니다). 약속에 신실하니, 그이가 바로 참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신실한 이를 통해 어찌 이뤄질지 살펴봅시다.


  그 방법은 심판(판단)과 전투입니다. 심판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는 '전투'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전투'는 메시아에게 요구되는 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포로기에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메시아가 이스라엘 외부의 적들과 싸워 이겨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치 골리앗을 박살낸 다윗처럼 말입니다. 더 가깝게는 시리아의 지배를 몰아낸 마카비 가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셔서 하신 싸움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유다 민족은 이에 실망하고 지도자들은 예수를 그대로 두었다간 이스라엘이 외부 세력(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 판단하고, 예수를 모함하여 로마의 손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메시아 예수의 전투 방식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에 메시아의 전투 방식이 '의'라고 되어 있는데, 이 '의'가 바로 그러한 예수의 전투방식을 가리키는 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옳으심을 드러내는 것, 그것을 위해 자신을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죽는 것.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전투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나약해보이는 방식이고, 앞에 '전투'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방식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이의 두 눈은 타오르는 불꽃이고, 그이의 머리 위는 많은 관들이 (있으며), 그이 외에는 아무도 본적없이 기록된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피가 뿌려진 옷을 둘렀고, 그리고 그이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군대들이 빛나는 말 위에 있는 그이를 따랐고, 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방식으로 어둠의 권세에 맞썼던 예수를 무시무시하게 묘사합니다. 그이는 나약해서 그런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참으로 강하시기 때문에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는 기이한 방식으로 싸우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그이의 두 눈은 악의 정체를 분명히 꿰뚫어보는 타오르는 불꽃이었고, 그이의 머리 위에는 셀 수 없는 관들이 씌여있어, 어떤 권위도 그 위에 설 수 없는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이가 그러한 방법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비밀스러운 숨줄로 연결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하나님과 하나라서, 그 어떤 사람도 본적없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뿌려진 옷은 패배자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이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싸웠음을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옷입니다. 숨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을 올곧게 드러내는 그이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을 단단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신실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이고 이 기이한 방식으로 싸우는, 그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을 계시록은 "하늘의 군대들"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이 말에는 가운데 이렇게 생략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방식으로 싸우는) 군대"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이처럼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 즉 거룩한 이들의 의로운 삶을 입었습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옳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방식으로 악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들이 의롭습니다.


그리고 그이의 입으로부터 날카로운 양날검이 나옵니다, 그것으로 민족들을 치고, 바로 그이가 쇠지팡이로 그들을 목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화의 격함의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그리고 외투와 그이의 허벅지에는 기록된 이름이 있습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 예수, 그러나 그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날카로운 양날검입니다. 이 양날검은 사람을 쪼갭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사람을 갈라, 그의 그릇된 의도와 생각을 밝혀냅니다. 참이신 그 분께 어긋나는 무언가를, 우리는 그 분께 비쳐보아서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그이는 모든 민족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악을 용납하지 않는 순결함은 마치 모든 것을 부수는 쇠지팡이처럼 강력합니다(시편 2편의 인유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더러움을 다 깨뜨려버리는 깨끗함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온 민족에게 왕으로 알려진 그이이십니다.


  그리고 그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가장 먼저 자진해서 들어가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로마의 기병들을 섬멸하셨습니다. 그이의 피는 제국을 덮고 넘어서,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이의 외투와, 전사들이 칼을 숨겨두는 자리인 허벅지 안쪽에는(히브리인들이 중요한 약속을 할 때 그 자리에 손을 넣어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이의 정체가 쓰여있습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왕들 위에 군림하는 진정한 왕은 음녀와 짐승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한 제국의 집권자가 주들의 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고 이 본문에서 예수를 묘사하는 표현들은 우리가 이미 계시록 2,3장에서 확인했던 바입니다. 에클레시아들에게 명하신 이는 온 우주를 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셨씁니다. 이로서 에클레시아는 우주의 왕과 (숨으로) 직접 교신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이 성전들은 세상을 진정한 왕께 돌려드리는 전진기지이기도 합니다. 메시아를 따르는 이들이 모인 바로 여기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집니다. 그 치열함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이 아닙니다. 이 세상 전체가 메시아의 것이듯, 메시아의 것을 메시아께 돌려드리는 정당한 싸움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메시아의 방법을 사용하기 위한 치열함입니다.


  그리고 나는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소리로 중간하늘에서 나는 모든 새들에게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이리오라, 함께 모여라, 하나님의 큰 식사로, 너희들이 먹기 위함이다, 왕들의 살몸들과 군대장관들의 살몸들과 강한이들의 살몸들과 말들과 그들 위에 앉은 이들의 살몸들과 모든 자유인과 종들의 살몸들과 작고 큰 이들의 살몸들을."


  그러나 계시록은 삶에서의 치열함보다, 그 치열함의 결과를 보여주는데 주력합니다. 어쩌면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스스로 삶을 신부답게 준비하게 만드는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바벨론은 자멸했고, 음녀를 파멸시켰던 왕들은 그녀를 태우는 연기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있습니다.

 

  그들과 최종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전투에서의 이김을 확신했는지 한 천사는 이글거리는 태양 안에서 중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칩니다. 유대인들의 우주관 속에서, 인간의 세계는 "해 아래"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경계는 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해가 만드는 질서를 초월할 수 없고, 그 아래 살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해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차원이 갖는 그 질적차이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자리에서 천사는, 하나님께 맞서는 이들의 죽음과, 죽음 이후에도 비참한 결말이 찾아올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짐승과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을, 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그 말 위에 앉으신 분과 그이의 군대에 맞서. 그리고 그 짐승이 사로잡혔고 그 짐승과 함께 있던 거짓예언자도 (사로잡혔는데), 그는 짐승 앞에서 표적들을 만들어냈던 자요, 그 표적들로 짐승의 표를 취한 이들과 짐승의 아이콘에 경배하는 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자입니다. 산채로 그 둘은 유황으로 불붙은 불의 연못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말 위에 앉은 그이의 입으로부터 나온 큰 양날검으로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새들은 그들의 살몸들로 배불리 채웠습니다.


  짐승과 땅의 왕들과 그의 군대들은 승산없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바벨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인자와 그이의 군대에게 맞섭니다. 짐승에게 가장 큰 무기는 죽이는 것이겠지만, 인자의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들의 무기가 소용이 없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에덴에서 그들의 수장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속이는 것일텐데, 참되신 이와 함께 하는 군대들은 더 이상 속질 않습니다. 이미 사탄의 속임은 무수한 패러디 속에서 사골이 되도록 우려먹었고, 어린양의 군대들은 이미 그 속임을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죽음의 폭력과 속임. 이 두 가지 무기가 먹히질 않으니 전세는 전투 시작과 함께 급격히 기웁니다.


  일단 이 전투를 통해서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은 즉결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들의 군대로 삼았으니, 이들이 주범입니다. 이 두 부류들은 하나님께 맞선 이들은 불붙은 불의 연못으로 던져집니다.


다니엘 7:9~11

내가 바라보니, 옥좌들이 놓이고, 한 옥좌에 옛적부터 계신 분이 앉으셨는데, 옷은 눈과 같이 희고, 머리카락은 양 털과 같이 깨끗하였다.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고, 옥좌의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불길이 강물처럼 그에게서 흘러 나왔다. 수종 드는 사람이 수천이요, 모시고 서 있는 사람이 수만이었다. 심판이 시작되는데, 책들이 펴져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동안에, 작은 뿔이 크게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살펴보니, 넷째 짐승이 살해되고, 그 시체가 뭉그러져서, 타는 불에 던져졌다.


  그리고 대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그들에게 인자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들을 쪼개 그들의 살몸을 죽여버립니다.


  이 전투 장면은 에스겔 39장의 곡과 마곡의 전투의 인유입니다. 이 전투의 목적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에스겔 39:4~7

너는 네 모든 군대와, 너와 함께 한 연합군과 함께 이스라엘의 산지 위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는 날개 돋친 온갖 종류의 사나운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너를 넘겨 주어서, 뜯어 먹게 하겠다. 내가 말하였으니, 너는 틀림없이 들판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또 마곡과 여러 섬에서 평안히 사는 사람들에게 불을 보내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내 거룩한 이름을 알려 주어서, 내 거룩한 이름이 다시는 더럽혀지지 않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뭇 민족이, 내가 주인 줄,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인 줄 알 것이다.


  여기서 에스겔과 다른 점은, 예수의 말씀에 의해 죽임당하는 '살몸'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몸뚱이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갖는 부분적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관점적 사고를 합니다. 즉 사람을 형상과 질료로 구분했던 그리스 철학 전통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사람 전체를 통전적으로 봅니다. 다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몸'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중간하늘로부터 날아온 새들은, 이 타락한 인간성을 먹고 없애버립니다. 따라서 사람의 시체가 새들에 의해 뜯어먹히는 잔인한 장면의 진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죄를 없애 깨끗게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음녀와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이 사라진 세계가 되었고, 타락한 인간성은 소멸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19:11~20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하늘이 열리는 것을, 그리고 보십시오, 빛나는 말을.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이는 '신실하고 참되다고 불리는 이입니다, 그리고 그이는 의로 심판하고 싸웁니다. 그런데 그이의 두 눈은 타오르는 불꽃이고, 그이의 머리 위는 많은 관들이 (있으며), 그이 외에는 아무도 본적없이 기록된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피가 뿌려진 옷을 둘렀고, 그리고 그이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군대들이 빛나는 말 위에 있는 그이를 따랐고, 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아마포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이의 입으로부터 날카로운 양날검이 나옵니다, 그것으로 민족들을 치고, 바로 그이가 쇠지팡이로 그들을 목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화의 격함의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그리고 외투와 그이의 허벅지에는 기록된 이름이 있습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


  그리고 나는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소리로 중간하늘에서 나는 모든 새들에게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 너희들 이리오라, 함께 모여라, 하나님의 큰 식사로, 너희들이 먹기 위함이다, 왕들의 살몸들과 군대장관들의 살몸들과 강한이들의 살몸들과 말들과 그들 위에 앉은 이들의 살몸들과 모든 자유인과 종들의 살몸들과 작고 큰 이들의 살몸들을."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 짐승과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을, 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그 말 위에 앉으신 분과 그이의 군대에 맞서. 그리고 그 짐승이 사로잡혔고 그 짐승과 함께 있던 거짓예언자도 (사로잡혔는데), 그는 짐승 앞에서 표적들을 만들어냈던 자요, 그 표적들로 짐승의 표를 취한 이들과 짐승의 아이콘에 경배하는 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자입니다. 산채로 그 둘은 유황으로 불붙은 불의 연못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말 위에 앉은 그이의 입으로부터 나온 큰 양날검으로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새들은 그들의 살몸들로 배불리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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