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난 주 못 전한 내용


  제물됨. 그 길 걸음, 아버지 만남. 그리고 우리는 다음 주에, 이 제물의 끝이 그 비참한 도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을 마침내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뚜렷이 나타내려는 제물들의 삶을, 온통 희망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그리고 왕께서 친히 길이 되시니 이제 탕자들의 유턴이 시작됩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보고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깨닫은 사람은 율법에 능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를 죽인 로마의 군대 지도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폭력을 섬기던 이방인이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가장 먼저 그의 진가를 깨닫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이방인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무엇이라 불렀는줄 아십니까? '개'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심하게 말하면 개나 소나, 다시 말하면 누구나 유대인들이 지켜온 그 가장 비밀스러운 곳, 하나님 계신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 뿐만 아닙니다.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적게 있지 않고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잘난 유대 남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 요한? 바울은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제 죽이러 다니게 될 것이고요. 길이 놓였는데, 그 길 앞에 아무도 서 있지 않습니다. 여자들만이 십자가 아래 모여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사람으로 계수 하지도 않는 그들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길을 떠나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교회는 전통속에서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그 길을 떠날 것을 가르쳐왔습니다. 바로 기도와 이야기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이제 그 길을 떠나겠다고 말씀 드리세요. 그 분은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야기입니다. 복음서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직접 예수의 삶의 방식을 살피는 것이 언제나 왕의 길을 걸음에 있어서 바른 시작이었습니다. 떠나세요. 생명을 따라.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5:42~16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주는지라


1. 모든 것을 걸고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입니다. 마가는 이 날을 '안식일 전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이었고 시간이 오후 세시였습니다. 유대인은 해질때부터 하루가 시작되므로, 한 서너 시간 지나면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리마대'라는 말은 이스라엘 동네 이름입니다.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즉 이 사람은 유대인인데, 공적인 일도 돌보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이뤄지길 고대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사람을 '당돌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왜 당돌해요? 지금 아리마대 요셉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는 방금 혁명군 지도자들이나 매는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제자들은(특히 베드로) 모두 그 예수와 한통속으로 엮이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를 등 뒤로 하고 숨어 있거나 도망가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시체를 내놓으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생각해봅시다. 그는 공회원이라 했습니다. 이 공회가 어디입니까? 예수를 밤새 심문하여 로마에 고발하자고 결정한 이스라엘 산헤드린 공의회입니다. 만약 누군가 요셉이 예수와 한통속이라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지금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그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요구하는 사람은 빌라도입니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더라도 손씻고 물러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용기를 단단히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 지도자에게 사형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 지금 요셉이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을 죄다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입니다. 자신의 지위, 이태까지 쌓아온 명망, 그리고 목숨.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렇게 씁니다. '당돌히'. 마치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가듯. 


  골리앗 같은 빌라도가 백부장을 불러 예수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시간만 6시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죽었다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의아해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정말 끔찍한 형벌인지라, 매달린 사람은 하루 반나절 내내 십자가에 매달린채 숨만 꼴딱꼴딱 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온 몸이 아래로 쳐져서 폐를 압박하게 됩니다. 그럼 갑갑하게 숨을 쉬지 못하게 됩니다. 이 때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다시 들어올려서 숨을 쉬고, 다시 몸은 아래로 쳐집니다. 이 행동을 계속 반복하다가 결국 진이 빠져서 죽는 것이 십자가라는 형틀입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사형수가 빨리 죽도록 방법을 취하는데, 그것이 다리뼈를 부러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다리뼈가 부러지면 더이상 몸을 지탱해서 들어올릴 수 없어서, 곧바로 질식사합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예수의 다리뼈도 부러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기도 전에 벌써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 병사가 예수의 심장 근처를 창으로 깊게 찔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것을 백부장이 확인합니다. 사형수가 정말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빌라도에게 보고 합니다. 왜 마가가 이토록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설명하는지 알겠죠? 예수는 정말 죽으셨습니다. 때로는 예수가 죽지 않으셨고,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와 간호했다는 소리를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마가는 아예 그러한 생각이 말도 안된다는 사실을 목격자의 입장에서 밝혀줍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의 시체가 그 당돌한 이에게 건내집니다.


2. 장사지내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요구한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의 장례를 치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에 대해서는 일전에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시체를 얇은 세마포로 싸서 돌무덤 안에 안치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신 3,4구 정도가 한 돌무덤 안에 놓이게 되는데, 예수님의 경우 아리마대 요셉이 가지고 있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새 무덤에 안치 되십니다. 그 다음, 그 시체에 곧바로 향유를 부어줍니다. 향유를 붓는 이유는 시체가 썩을 때 냄새가 무척이나 지독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뒤 3일 후부터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가끔 독거노인 돌아가셨는데, 그것을 이웃 주민들이 이상한 냄새가 나서 알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그만큼 시체 썩는 냄새는 지독하다고 합니다. 하여간, 그래서 세마포로 싸는 것이 1단계요, 무덤에 안치하는 것이 2단계요, 향유를 붓는 것이 3단계입니다. 그러고는 1년이나 2년이 지나면 시체에서 살은 다 썩어 없어지고 뼈만 남습니다. 그 뼈를 추려서 납골함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이제 방금 설명드린 단계를 따라서 예수를 장사지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깁니다. 무엇입니까? 시간입니다. 지금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건내받은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네시는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시에 죽으셨는데, 그가 정말 죽었는지 옆구리를 찔러서 확인하고, 빌라도에게 보고한 뒤, 예수를 다시 땅으로 내려서, 손목과 발에서 대못을 뽑아다가, 아리마대 요셉에게 건내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여간 4시라고 봅시다. 그런데 이제 이 날 해가 떨어지면 어떤 날이 됩니까? 안식일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인입니다. 안식일 규례를 어길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죽은 시체를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룬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해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 


  서둘러서 요셉이 세마포를 사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세마포로 쌉니다. 그리고 들쳐업고서 자신이 사놓은 돌무덤으로 달립니다. 그 뒤를 여자들이 따라 달립니다. 마가는 그 여자들의 이름도 기록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요셉의 뒤따라 함께 뛰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무덤에 당도했습니다. 예수를 무덤에 눕히고 나니, 벌써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습니다. 아차, 향유를 사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항유를 살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이 힘을 써서 돌무덤을 그 옆에 큰 돌로 막아둡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예수를 둔 무덤 위치를 기억해둡니다. 왜요? 안식일이 끝나면 마저 장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미완의 장사를 남겨두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날은 이렇게 해가 저물었고, 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지요. 이 날 하루 엄청나게 고생하셨던 예수도 쉬십니다. 예수를 업고 오느라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요셉도 쉽니다. 여자들도 집에 돌아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예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던 군병도 창을 씻어놓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쑤셨던 군병도 잠자리에 들며, 빌라도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어디선가 누워서 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 날 하루가 저뭅니다. 아무도 일하지 않는 밤, 모두가 이 날에 대한 각자의 상념들을 간직한채 그렇게 밤이 깊어갑니다. 


  지금까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그간 이 한 사람의 삶을 살펴왔습니다. 무려 1년 반이 걸렸습니다. 2013년 1월부터니까요. 마가가 목격한 이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간 쭈욱 살펴보았죠. 세례요한의 이야기부터였습니다.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그 왕이라 말하는 자는 오셔서 군림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짜먹은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꺼려 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고자 하셨고, 이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각오하셔야 했습니다. 병자들을 끊임없이 고쳐주셨고, 바리새인과 서기관 헤롯당원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계속 답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 속에서 무언가 가르치기 위해,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조차 그는 의미를 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제자들의 배신, 동족들의 배신, 부당하게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 그렇게 그는 십자가를 지고, 온갖 고생을 다 하고선 죽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한 길. '왕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게 왕의 길이야? 이게 왕의 길입니다. 죽도록 섬기다가 정말 죽는 사람이 진정한 왕입니다. 이 왕의 길의 끝에서 만난 것은 무엇입니까? 해골언덕 위 사형틀입니다. 누가 이 길을 걷겠습니까? 누가 이 길을 가겠습니까? 낮고 천한 사람들과 같이 밥먹고, 어깨에 힘주고 있는 사람들의 허위를 폭로하며, 결국 자신은 아무런 폭력도 쓰지 않은 채 죽임당하는 이 길을 누가 가겠습니까? 이 길이 여기서 끝난다면 말입니다. 


3. 떠오르는 태양


  그 날은 하루종일 어두웠습니다. 오후 9시부터 세시까지 어두웠으니, 이 날 밝았던 적은 없던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죄 없는 사람의 죽음. 이것만큼 어두운 것이 뭐가 있을까요? 세상은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16:1~8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쉼이 끝나고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안식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자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미나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이들은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향유를 사두었습니다. 그리곤 그 날 해가 뜨기 무섭게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무덤이 아닌 다른 무덤으로 갔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금요일날, 이 무덤의 위치를 확인해 두었거든요. 마저 장사를 치루기 위해 그들은 무덤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힘없는 여자들에게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돌무덤을 막고 있는 무거운 돌을 어떻게 치우고 그 안에 들어가나',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걱정할 거리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돌은 치워져 있고, 무덤에 예수는 안계셨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동굴 오른쪽에서 말하기를


"놀라지 마세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고 있군요.

그런데 그가 살아나셔서 여기 안계세요. 여길 보세요. 당신들이 그를 눕혔던 자리에요."


 여러분은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격자 마가는 신중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분명히 죽으셨다는 사실을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시켰고, 예수께서 아리마대 요셉이 마련한 무덤에 장사되셨다는 것을 그 날 사건 정황을 이야기함으로 드러냈습니다. 다 이 장면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정말 역사이고, 사실이며, 확실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마가는 신중하게 기록했습니다. 이 사실이 거짓이면, 성경 전체가 거짓이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사기꾼이 되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참이라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성경 전체가 사실이며, 이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맞았고, 역사는 분명한 뜻을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죽음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와 우리 예수님 살아나셨네, 역시 최고다. 우리의 왕이시다!" 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그러나 이 부활 앞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며 벌벌 떠는 여자들이, 부활의 첫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의 남자 제자들, 그리고 배신자 베드로에게 보내졌습니다. 사도에게 보냄받은 사도. 이 여자들이 말입니다. 만약 복음서 기록이 누군가 지어낸 것이었다면, 부활의 첫 목격자를 여자로 설정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여자는 법정 증인으로 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여자들의 말에 신뢰하지 않는 당시 역사적 정황은 오히려 우리에게 확신을 더해줍니다. 이 말이 진짜라 말입니다. 왕의 길의 끝에 십자가가 있었고, 그 십자가 뒤에는 모든 어둠을 살라먹는 생명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2014年 7月 첫째주 성도교회 청소년부 설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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