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27~9:1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의 가이사랴에 있는 여러 마을로 길을 나서셨는데,

도중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기를,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 인자에 대한 가르침


  우리는 저번 주 '다니엘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등장인물. 네 마리 짐승, 옛 적부터 계신 자, 그리고 인자.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인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네 마리 짐승이 자신들을 괴롭게 하는 이방 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방 괴물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이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인자는, 그 이방 괴물들을 대신하는 새로운 통치자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장구한 포로의 역사 속에서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팔레스타인 땅을 밟고 다니시던 그 때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마를 대신할 새로운 통치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막 8:31~34)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2. 베드로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자가, 아니 자신들을 짐승들에게서 구출해줄 인자가, 고난을 받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배척을 받고, 게다가 죽임까지 당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말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지금 포로 생활 속에 핍절한 그들은 오직 인자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임당한다는 말은, 지금 그들더러 죽으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역할은 짐승의 역할이지 인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나다들까, 베드로로부터 곧바로 반응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는 이 말을 공공연하게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만 들을 수 있도록 조심해서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발언 자체가 파급효과가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말을 공개적으로 하시니, 가장 측근이었던 베드로조차 참지 못하고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등돌리고,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그것도 가장 심한 말로, 말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왜 베드로는 졸지에 사탄이 된 것입니까? 베드로는 인자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대 그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막으려고 할 때, 그를 가리켜 예수는 사탄이라 하였습니다. 사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가로 막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탄입니다.


3. 일반적인 생각 vs. 하나님의 생각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들을 괴롭게 하는 로마가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는 그 로마를 박살낼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고 인자는 그러한 인자일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사탄의 유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로마는 악도 아니었고, 하나님도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자신 역시 그런 인자가 아니었고요.


  이런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합니까? A그룹과 B그룹이 있습니다. A그룹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저 B를 처부술거야. '와~' 그런데 하나님은 A에 속한 사람들도 창조하셨고, B도 속한 사람들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저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건, 니 생각이지 하나님 생각이 아닙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그렇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주시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하실 것이라는 싸구려 사상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에 곧잘 젖곤 합니다.


  under the dome. 일종의 돔을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돔 안의 사람과 돔 밖의 사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도 그 돔 안에 가둬버립니다. 그래서 나의 목적, 우리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이 움직여주시길 바랍니다. 기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아닌 사람들이 있죠. 하나님은 이 선을 칼같이 그으셨습니까? 우리는 선이고, 그들은 악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개 교회에서 '세상'이란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그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돔을 깨뜨리고,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줘야할 책임이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 후손들이 하나님 편 될 생각 않고, 하나님을 내 편 만들겠다는 생각하고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이스라엘도 하고 있고 기독교도 하고 있습니다. 오십보 백보, 하나님의 독특한 생각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위에 살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로 막을 것인지. 전자는 크리스챤의 삶이요, 후자는 사탄의 삶입니다. 편을 만드는 사람이 되던지, 아니면 편을 깨뜨리는 사람이 되던지 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 폭력은 결코 돔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햇님과 바람 이야기>





  '당랑거철'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 한 복판에서 사마귀가 달구지를 당당하게 막고 섭니다. 그러나 사마귀가 막던, 막지 않던, 달구지는 길 위로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거절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그 역사는 진행됩니다. 하나님을 내 편 만들지 마시고, 당신이 하나님 편 되십쇼. 그 분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차별없이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 되는 일입니다.



4. 진실


  그럼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인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인자가 아니었습니다. 죽임 당하는 인자였어요. 핍박 당하는 인자였어요. 왜 인자가 죽임 당하고, 핍박 당합니까?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죽임당하고 핍박하려는 자들에게 핍박당하는 인자가 이스라엘의, 아니 온 세계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예수는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왜 우리도 그러한 길을 따라오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죠. 이것이 인생인 것이죠.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인생은 오리무중. 갈 길 몰라 헤매게 됩니다. 왜 인자는 죽임당하고 핍박당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라고 요청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고민하는 일주일 되시기를 바랍니다.


  힌트도 드립니다.


(막 9:1)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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