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from 창고 2013. 10. 23. 13:03

  우리는 말 할 때, '객관적으로'라는 말을 종종 쓰곤한다.

언쟁이 붙었을 때, 내 발언에 대한 힘을 싣기 위한 관용구처럼 쓰인다.

"그건 말이야. 객관적으로 봤을 때..."

허나 이제 이 객관적으로라는 말은 위기에 처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이 객관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이상 객관은 객관이 아니게 되었으며,

심지어 화자의 의도와 관점에서 벗어난 사실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말이 별로 효과가 있든 없든, 

우리는 앞으로도 객관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될 것이다.

객관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라. A와 B가 언쟁중이다. 그런데 도통 답이 안난다.

그럴 경우, 재판장이 필요하다. 그 재판장은 마치 이 대화의 '객'과같다.

A와 B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을 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객관적으로'라는 말은 언쟁하는 두 명의 상대 사이에 반드시 꼭 필요한 존재를 개입시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사실 우리는 "객관적으로"라는 말을 하면서 이러한 것을 갈구하고 있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제3의 존재.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관점을 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객관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누군가다.

그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더불어 그는 나와 너의 갈등 상황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는 존재다.

이 존재를 신이라 부른다면, 당신은 무어라 말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신이 없다는 말을 쉽게 하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객관을 필요로 한다. 세상을 바르게 보는 관점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인가?

없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인간 사이에서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답을 찾지 못하고, 이내 실망할 것이다.

급기야 회의주의자 이름표를 가슴에 달게 될지도 모른다.


  좀더 끈기있는 사람의 경우 

'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니까, 좀더 찾아봐야겠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 전체가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던 경우들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도 곧 낙담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흔하다. 나치에, 전쟁에, 축구에, 연예인들의 가짜 결혼에...)


  인류는 객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류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인류에 대한 객관을 누가 줄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인류가 인류에 대한 객관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아, 객관을 포기했기에, 이제 "본능적으로", "감정적으로"가 유행하는 것인가?)


  신이 필요하다. 인류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인류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지 않으면서도, 

인류 전체에게 절실한 새로운 관점을 누군가 주길 바란다.

모든 인간은 이것을 얻길 바란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라는 말을 포기 못한다.

(이 객관이 우리가 담지할 수 없는 것임이 밝혀졌음에도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여럿있다. 

  다른 권위를 빌어오면서, "00가 말하기를,"

우리는 탈권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말하지만, 사실 권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러한 표현 자체는 일시적인 힘을 갖는다.

우리는 사실,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올바르게 쓰이기를 기대하고 있다.(선거 때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우리에게 언제나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은,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전체를 조망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셸 푸코는, 의도 없는 역사는 없다고 말했고,

오늘날은 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역사적으로 보는 것은, 역사 자체가 객관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들을 추려서 나열한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에 이제 모든 사람이 수긍한다. 

그러나 우리는 저 말을 포기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말야."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류에 대한 객관. 인류에 대한 타자.

그럼에도 타자인 인류에게 가장 올바른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

권위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역사의 의미를 말해줄 수 있는,


  그 존재를 하나님이라 부르던, 신이라 부르던, 무엇이라 부르던지간에,


  우리가 그를 알아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사실 그를 갈구하고 있었다.

바로 그다. 그 객관의 그.  인류의 반대편에 서있는 그.  그럼에도 인류 안에 함께 하는 그.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모두는 그를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에 대한 오해를 잔뜩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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