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35~52

from 예언들 2019. 8. 2. 08:08

찬송가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에스겔 16:35~52

 

1.

  이스라엘 사람들의 천막들 한 가운데 성막이 있습니다. 그 성막은 네 가지 실로 수 놓은 휘장이 드리워있고, 물개 가죽으로 만든 덮개로 덮었으며, 아마포로 만든 울타리를 둘렀습니다. 이 성막 안에 우주의 창조자가 임하셨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남편인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이방 제국들과 돌아가면서 혼음하는 우상숭배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결과를 쫓느라 사랑의 맹약을 져버린 이 타락한 도시를 하나님은 “음녀”라 부르셨습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때문에 이수일을 버린 심순애를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이나 사랑은 한 분에 대한 충성입니다. 이 충성을 지키면 왕의 부인이니 "여왕"이고, 이 충성을 버리면 "죄인"이며, 이 충성이 남편 아닌 다른 것을 향하면 "음녀"입니다. 하나님은 피투성이 아이였던,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옷을 입혀주었던 여왕을 이제 “음녀”라 부르십니다. 한 분에 대한 충성을 버린 도시는 더 이상 여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여전히 남아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음녀는 하나님과 생각이 다릅니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헌 신짝처럼 버렸음에도 이 타락한 도시는 여전히 자신을 여왕이라 칭합니다. 여전히 자신은 화려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도시로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자신은 여전히 여왕인 줄로만 압니다. 그러나 사랑의 결과가 여왕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만이 예루살렘을 여왕되게 합니다. 자신을 여왕으로 칭하는 음녀에 대해 요한계시록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7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하나님과 생각이 정반대인 이 음녀를,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2.

  그 심판의 시작은 동류들의 배신입니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버리면, 사람들 사이에서의 충성도 없습니다. 그 관계의 중심에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돈과 명예를 가져다 놓았으니 서로 이 갈리고 싸우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 심판은 배신에 이어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이 타락한 도시는 동맹국에게 얻어맞아 다시 피투성이의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타락한 도시가 심판받을 때, 그 화려함과 명성은 이 타락한 도시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옷은 벗겨지고 보석들은 빼앗기며, 이방국가들과 화친을 맺던 산당들과 잘 지은 건물들은 모두 무너집니다. 그간 화려함 뒤에 감춰두었던 타락의 참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동맹국가들은 이 타락한 도시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으로 만듭니다.

 

  역사가가 볼 때는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사건으로만 보일 테지만, 예언자는 이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을 덧붙일 것입니다. 심판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을 때에 찾아오는 파국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망하게 함’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망하게 하심으로 자신의 질서를 바로 잡으십니다. 그래서 ‘심판은 바로잡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41절, 43절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엄중하면서도 참혹한 심판을 이야기하며, 에스겔은 이 심판의 목적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합니다. 41절에 “내가 너에게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43절에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배신으로 시작해서 폭력, 멸망으로 이어졌던 심판의 목적은 바로 죄를 그만 두도록 바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음녀가 다시 한 분과의 사랑 안에서 여왕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3.

  그러나 아직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 하기엔 이릅니다. 에스겔은 속담을 인용합니다. 44절이 말하는 속담은 “부전자전”입니다. 이 타락한 도시는 자신의 가족들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 가족이란 죄악으로 유명한 헷 족속, 아모리 족속, 사마리아, 심지어 소돔입니다. 즉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이 죄악으로 유명한 도시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아닙니다. 에스겔은 “부전자전” 정도가 아니라 “점입가경”이라 말합니다. 이 부패한 도시들보다 한 술 더 떠서 더욱 부패한 도시가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심지어 유명한 도시 “소돔”을 언급합니다. 소돔의 죄악은 교만과 거만입니다. 그래서 음식이 풍성하고 태평하면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었고, 하나님은 그 소돔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 소돔의 죄악을 능가합니다.

  또한 죄악으로 인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해서 모두 포로로 끌려갔던 사마리아도, 그 범죄가 예루살렘의 절반 밖에 안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이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타락은, 이 소돔과 사마리아를 의롭게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고 에스겔은 말합니다. 그럼 예루살렘이 겪게 될 부끄러움과 심판은 소돔보다 더할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은 역사 속에서 두 번 무너졌습니다. 한 번은 바벨론에 의해서 2600년 전에.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2000년 전에. 그 두 번 모두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 속에서도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욥, 노아,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으로 사랑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것만을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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