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혼란스러운 천국

  마태복음 24장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 배웠던 것을 병행본문들과 함께 복습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을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21장에서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연구하기 전에, 가볍게 우리가 자주 부르던 찬양 가사를 통해 천국 개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셨네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이 가사의 앞부분은 참 좋습니다. 예수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이사야 24:23). '시온'이란 장소를 빠뜨리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예수께서 왕이 되시기 위해 거치셨던, 죽음-부활-승천 이란 과정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렴에 가면 가사가 산으로 갑니다. "주 오시면" 이란 말은 주가 아직 안오셨다는 말이므로, 재림을 염두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뒤의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는 천국은 이미 도래한 성도들의 삶이라는 신약성경의 중요한 주제를 비껴나갑니다. 재림하시면 주님과 영원토록 사는게 아니라, 이미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사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다른 늬앙스를 가진 찬송가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 오시면 천국에서 살 것'이라는 가사와는 달리, <내 영혼이 은총 입어>는 주 예수와 동행하는 것 자체가 천국임을 바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예수와 함께할 때 뒤집히게 되고, 이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뒤집는 것이 천국입니다. 불가능성에서 가능성으로의 전환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하는 새로운 관점과 그 가능성 때문에 "할렐루야"라는 찬양이 터져나옵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부합한 가사입니다. 다른 곡들도 이런 방식으로 비평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지난 주 주제들

1) 제자들의 질문

  예수께서 성전이 무너진다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했던 질문이 있었지요.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봅시다.

마가복음 13:4

 누가복음 21:7

 마태복음 24:3

 "선생이여, 그래서 언제 그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이 금세 되려고 할 때어떤 표적이 (있겠습니까?)"

 "선생이여, 그래서 언제 그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이 금세 되려고 할 때, 어떤 표적이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언제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파루시아에 관한 표적과 이 시대의 끝에 관한 표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일단 "언제"를 묻는다는 점입니다. 이 언제는 물론 예루살렘 성전 붕괴의 시점을 묻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 예루살렘 성전이 "금세 무너지려고 할 때" 어떤 표적이 있을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표적을 묻는 지점에서 마가, 누가가 기록한 질문과 마태가 기록한 질문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그것들이 금세 되려고 할 때 어떤 표적이" 라고 한 것을, 마태는 "당신의 파루시아와 이 시대의 끝"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지난 주 설명드렸던 바와 같이, "당신의 파루시아"는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의미하고, "이 시대의 끝"은 올람하제의 끝과 올람하바의 도래를 의미합니다(συντελεια). 그리고 성전을 중심으로 벌어질 옛 시대의 종결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마가와 누가에게 "성전 붕괴가 금세 되려고 할 때"라는 표현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개역한글 번역은 제자들 질문이 갖는 긴박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개역한글 :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때 "이루려 할 때"는 "금세 되려고 할 때"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희랍어는
'멜로(μέλλω)'인데 어떤 일이 금세 막 일어날 것(be about to)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개역한글처럼 "~하려 할" 이라는 번역은 긴박성을 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건물 성전들이 무너진다는 말씀을 하자, 긴박하게 "그것들이" 언제 일어날지를 묻고 있습니다. 새번역성경과 쉬운성경은 파루시아를 "다시 오심"으로 번역하면서, 이 긴박성을 마찬가지로 놓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임당하실 사실조차 믿지 않았던 제자들이 재림을 물어봤을 일도 만무할 뿐만 아니라, 이 긴박성을 번역 때 살렸어도 마태복음 24장을 재림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 끝은 언제인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본문을 분석해보면, 예수께서는 거짓 메시아들이 출몰하더라도 아직 끝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다" 이후에 "끝"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데, 이때 모든 본문들이 한결같이 언급하는 것이 바로 '증언'입니다.

마가복음 13장 발췌

 누가복음 21장 발췌

 마태복음 24장 발췌

 ...그러나 그렇게 끝은 아니다

...이것들이 산통의 시작이다


...너희들을...나 때문에, 그들에게 증언을 위해서. 그리고 먼저 모든 민족들 속으로 그 복음이 포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끝 속으로 견디는 이, 바로 그가 구원받을 것이다.

 ...곧장 그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모든 일 전에

.
..그들이 너희들을...회당들과 감옥들 속으로 팔아넘기면서,
...이것이 너희들에게 증언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다...바로 내가 너희들에게 입과 지혜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그 견딤 안에서 너희들이 너희들의 프쉬케들을 얻으라.

 왜냐하면 그것(전쟁소문)이 있어야만 하지만, 끝은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산통의 시작이다.

...그리고 무법이 넘치게 됨을 통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그런데 끝 속으로 견디는 이는 온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왕권의 복음이 하달될 것이다, 온 거주지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의 증거를 위하여, 그리고 그때 그 끝(το τελος)이 도래할 것이다.


  순서가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대체로 이런 순서입니다.

ㄱ. 끝은 아니다(산통의 시작이다)
ㄴ. 끝이 오기 전에 너희들이 나 때문에 심문당할 것이다 (그것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증언의 계기이다)
ㄷ. 너희들은 끝이 도래할 때까지 견뎌야 한다.

  이때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에 포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마가복음에는 ㄴ과 함께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ㄷ이후에 나옵니다. 이때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하는 오해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말을 다시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끝"은 제자들에게 금세 다가올 끝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증언 이후 도래할 끝은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이때 "모든 민족"은 미전도 종족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가 아니라, '유대인/비유대인(이방)' 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민족"이란 말은 '우리'와 '원수'의 조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패를 갈라 싸우려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에게 끌려갔고, 그들에 의해 심문당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시온으로 돌아오신 하나님, 메시아 예수의 이름으로 싸우지 않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을 끌고온 원수, 곧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시편 23편의 구절을 가리키지 않습니까?


시편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리고 그 전달 이후, "그 끝"은 이미 A.D.66~70년에 도래했습니다. 그 끝이란 미래의 파국이 아닌 예루살렘은 멸망과 성전 파괴, 그리고 증언에 의한 오는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3) 멸망의 가증한 것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 9장의 인용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마카비 혁명을 통해 '이 단어를 유대인들이 어찌 이해했을지'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다니엘 9장의 맥락을 확인해봅시다.

다니엘 9:25~27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ㄱ.

예순두 이레가 지난 다음에,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ㄷ.
한 통치자의 군대가 침략해 들어와서,
도시와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홍수에 침몰되듯 성읍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끝까지 계속되어,
도시가 황폐하게 될 것이다.

ㄴ.
침략하여 들어온 그 통치자는 뭇 백성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굳은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반이 지날 때에,
그 통치자는 희생제사와 예물드리는 일을 금할 것이다.
그 대신에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인데,
그것을 거기에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끝 날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이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자신의 말씀을 다니엘 9:25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본문의 이후 내용도 다니엘 9:25,26의 맥락 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니엘 9장을 마키비 혁명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했으나,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의 계보가 끊어진다는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메시아가 죽임당한다는 낯선 사실은 우리에게만 익숙합니다. 
  예언대로 기름 부음받은 자가 끊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예루살렘 성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만든 장본인이 성전 제사를 중단시키고, 성전에 세우게 될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다니엘 9:25~27을 시간 순서대로 연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 기름 부어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됨
ㄴ. 침략자가 성전 제사를 중단시키고 "멸망의 가증한 것"세움
ㄷ. 도시와 성전을 파괴함

  이 ㄱ,ㄴ,ㄷ이 "멸망의 가증한 것"과 관련된 "환란"입니다. 마태와 마가가 'ㄴ'을 언급했을 때, 유대인은 자연스럽게 다니엘 9장의 맥락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는 이 유대인들에게나 익숙할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단어를 피해서, 이방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다니엘 9장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음을 놓쳐선 안됩니다.


누가복음 21:20, 개인번역
그런데 너희들이 군대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된 것을 보면

그때 너희들은 깨달아라, 바로 그 황폐함이 도래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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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니엘 9장의 압제 후에 곧장 '야훼의 날'


[3] 이뤄질 예언들(24:29~35)

그런데 그 날들에 속한 압제 후에 곧장


  "해가 어둠에 덮힐 것이고,

  달이 그 빛을 주지 않을 것이며,

  별들이 그 하늘로부터 떨어질 것이고,

  하늘의 힘들이 흔들릴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 다음으로 등장하는 "그 날들에 속한 압제"는 다니엘 9장이 제시하고 있는 압제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는 'ㄱ, ㄴ, ㄷ'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제시하는 독법은 이사야 24장과 다니엘 9장을 함께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그 날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압제"는 다니엘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25~27

ㄱ. 기름 부어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됨

ㄴ. 침략자가 성전 제사를 중단시키고 "멸망의 가증한 것"세움
ㄷ. 도시와 성전을 파괴함

-이사야 24:21~23

4)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의 형벌, 죄수 갇혔다가 형벌받음

5) 이때 해, 달, 별이 어두워짐

6) 여호와께서 시온산 곧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7) (이스라엘의) 장로들 앞에 그 영광 나타내심

  이 "압제"는 다니엘 9장의 맥락에 따라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할 것"을 의미하고, "그 날들"은 이사야 24장 예언의 4)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의 형벌, 죄수 갇혔다가 형벌받는 "야훼의 날"입니다. 그리고 이 야훼의 날과 심판의 결합은 다른 본문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13:6~11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이사야 24장에서 언급되었던 "그 날", 곧 야훼의 날입니다.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신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사람들은 이 날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경악하고, 괴로워하며, 슬픔에 사로잡힙니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이 야훼의 날은 하나님의 화와 진노가 쏟아지는 날이고, 그 화와 진노는 죄인을 멸하는 날인데, 그날 멸망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메시아 예수. 야훼의 날에 대해서 아모스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아모스 5: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그리고 이사야 24장에서 야훼의 날의 심판 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어집니다.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예언서에서 해, 달, 별 어두워짐은 특정 민족의 심판의 맥락에서 쓰였습니다.[각주:1] 그런데 이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떨어졌고, 예수는 그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이의 심판받음과 더불어, 예언은 성취됩니다.


마태복음 27:45,46, 개역한글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리고 이어지는 이사야의 예언은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바울의 주장(고린도전서 1:23,24)의 레퍼런스였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따라서 이 때 "그 날들에 속한 압제"를 예언의 문맥과 동떨어져서 A.D. 70년의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해해선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산으로 도망가라"라고 말씀하신 '예루살렘 멸망'은 A.D.66~70년에 발발한 유대전쟁보다 이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굽어볼 수 있는 감란산과 스코프스 산을 점령했으므로, 이때 산으로 도망갔다간 오히려 그 길로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각주:2]  마태가 "그날들에 속한 압제"라고 말할 때, "그날들"은 이사야 예언의 '야훼의 날'을 반영하고 있으며, "곧장"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만든 목록에서 '4번 항목'에 이어 "곧장" '5번 항목'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의 맥락은 이사야 24:21~23 목록의 다음 항목으로 이어집니다. "6) 여호와께서 시온산 곧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3. 인자의 표적, 승천

그리고 그때 하늘에 인자의 표적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종족들이 가슴을 치고

인자가 하늘의 구름들 위에서 많은 힘과 영광과 함께 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인자는 자신의 천사들을 큰 나팔과 함께 보낼 것이다,

그리고 인자에게 속한 선택된 이들을 네 바람으로부터 불러 모을 것이다,

하늘들의 끝점들에서부터 그것들의 끝점들까지.


  "하늘에 드러난 인자의 표적"은 다니엘 7:13,14의 성취인 "승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승천'을 구약 예언들의 총결산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시온으로 돌아오신 하나님께서, 시온산 곧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신 사건이 바로 승천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건물 성전 붕괴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불안에 떨며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 표적은 "파루시아"와 "현시대의 끝"에 대한 표적이었는데, 예수는 제자들의 질문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승천으로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임하셨(파루시아)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앞에서 해, 달, 별이 어두워졌던 십자가 사건과 인자의 표적인 승천을 결합시키기 위해서 스가랴 12:10과 다니엘 7:13,14를 연결시킵니다.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스가랴 12:10은 '다윗 왕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스가랴가 예언했던 시기는 바벨론 유수시기로 이미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소실된 이후였습니다. 이때 이미 다윗 왕조 열 두 지파의 회복은 혈통적으로는 불가능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통해, 야훼의 날 심판받으신 메시아에 대한 애통함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다윗 왕조의 구성원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승천하신 인자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다니엘 7: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신 메시아를 섬기는 이들이 곧 새로운 다윗 왕조입니다. 이 사실을 두 구약 본문을 인용하면서 제시한 마태는, 다른 구약 본문을 사용하여 '지금 그 새로운 다윗 왕조의 구성원을 소집하기 시작하셨음'을 알립니다. 이때 보냄받는 천사들은 나팔수로서 여리고성의 파멸을 알리듯, 이미 시작된 끝에 대해서 알리는 사람들입니다. 곧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리고 "인자에게 속한 선택된 이들"이 승천을 시작으로 소집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7장의 이마에 인찍히는 사람들의 환상과 일곱 나팔 심판이 시간순으로 연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연구>에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인의 내용과 일곱 심판의 내용이 순차적으로 벌어진 선후관계는 아닙니다. 일곱 실 내용과 일곱 나팔 내용은 같은 장면을 보는 다른 카메라입니다. 전자가 이마에 인이 찍힌 신실한 이들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면, 후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의 상황을 비춰줍니다.


출처: http://jaeduggi.tistory.com/878?category=882370 [아, 우주는 겁나 우아하다!]


  그리고 나팔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나팔'로 번역되기도 하고, '희년'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희년은 이스라엘에 5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부채탕감의 날이에요. 이 날 뿔나팔이 길게 울립니다. 여리고성 앞에서 불려진 나팔이 패역한 도시에게 전하는 멸망의 소리였다면, 그 소리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가 도래했다는 기쁨의 소식이디고 한 것이지요. 예수께서 희년을 언급하신 구절 속에서 우리는 나팔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18,19, 개역한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런데 너희들은 무화과 나무로부터 이 비유를 배워라.

그것에 속한 한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그 잎사귀들이 나게 되면,

너희들은 여름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우리도,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본다면,

그것이 문들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일어나기까지 비껴가지 못한다.

하늘과 땅은 비껴갈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말들은 결코 비껴가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는 비유를 들어 지금까지 이야기의 핵심을 전달하십니다. 무화과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를 보고 여름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듯이, 이상의 모든 내용들을 보게 되면 예루살렘의 끝이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은 "이 세대"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언급하신 사건들에 재림이 포함될 수 없습니다.

  오는시대가 도래하지만, 옛 하늘과 옛 땅은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옛 하늘과 옛 땅 위에서 예수의 말들이 성취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로 이 말을 듣고 있는 제자들을 시작으로 말입니다.



  1. 호세아 13:16 - 사마리아 심판 나훔 3:10 - 테베와 니느웨 심판 시편 137:9, 이사야 14장 - 바벨론 심판 에스겔 32장 - 이집트 심판 [본문으로]
  2.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톰 라이트, p.5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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